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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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임채성 

 

 

 

 

봄을 마중하다

때를 맞춤하다

  

  

   

 

 

  2월은 겨울과 봄, 두 계절이 공존하는 달이다. 추운 겨울인데 마음에는 벌써 봄이 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매화와 같은 이른 봄꽃을 볼 수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은 이미 1월부터 전해졌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바이오소재연구소에 따르면, 겨울의 한가운데인 음력 섣달(12월)에 피는 납매가 지난 1월 20일 경남 진주에서 처음 개화했다고 한다. 지난 5년간 1월 말~2월 초·중순 사이에 꽃을 피웠던 납매가 올해는 24절기의 마지막인 ‘대한’에 첫 꽃망울을 터뜨린 것이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약 1주일 정도 빠른 개화라고 한다.

  납매(臘梅)는 음력 12월을 뜻하는 한자 ‘랍(臘)’을 붙인 이름이다. ‘랍’이 ‘납’으로 표기되는 것은 두음법칙에 의해서다. 꽃잎의 형상이 '밀랍(蜜蠟)'을 닮았다고 해서 '납매(蠟梅)'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국이 원산인 납매는 납매과의 낙엽교목으로 높이 2∼4m 정도까지 자란다. 납매의 학명은 Chimonanthus praeco인데 Chimon은 겨울, anthus는 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겨울에 피는 꽃’이라는 뜻이다. 꽃은 잎이 나오기 전에 2㎝ 정도 크기로 피는데, 향기가 좋아 영어로는 윈터스윗(winter sweet)이라고 불린다.

  통상 2월에서 3월 사이에 피는 매화는 겨울 속의 봄을 상징한다. 추위를 잘 견딘다 하여 우리 선조들은 매화를 절개와 지조의 상징으로 여겼다. 특히 눈 속에 핀 설중매(雪中梅)는 그 자태가 옥같이 곱고 아름다워 ‘매화 중의 매화’로 받들었다. 고려의 시인 이규보는 그의 시 「매화」에서 “눈을 두르고도 천 송이 또 단장하고 / 봄 앞서 살짝 한 번 봄을 미리 꾸미네(帶雪更粧千點雪 先春偸作一番春)”라고 노래했다. 또 고려말의 우국지사였던 목은 이색은 “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가 / 석양에 호올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라는 시조를 통해 매화를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표현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신흠은 그의 수필집 『야언(野言)』에 들어있는 칠언절구를 통해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라는 명구를 남겼다. 신흠의 이러한 매화관은 퇴계 이황에게로 이어졌다. 퇴계는 ‘진정으로 매화를 아는 사람(眞知梅者)’이라 스스로를 칭하며, 마지막 순간에도 매화분에 물을 주라고 당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문화권에서 매화는 매우 각별한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중국은 ‘미녀와 정절’의 상징으로, 일본은 ‘에로티즘’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반면 한국의 매화는 사군자로 일컬어지는 ‘매난국죽’ 중 맨 앞자리를 차지할 만큼 ‘아치고절(雅致高節)’로서 우러러 칭송하였다. ‘오상고절(傲霜孤節)’의 국화, ‘세한고절(歲寒孤節)’의 대나무와는 또 다른 관점에서 숭상된 것이다. 또한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여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겨울의 벗‘으로 마음에 두었다.

  그 때문에 선조들은 수많은 시·서·화(詩·書·畵)를 통해 매화의 고결함을 노래했다. 백매, 홍매, 황매, 청매 등 색깔에 따른 분류와 더불어 매화 그림자가 창문에 비치는 것을 매창(梅窓), 어둠 속에 은은하게 퍼지는 매화 향기를 암향(暗香), 매화를 감상하는 것을 탐매(探梅)라 했을 정도로 매화와 관련된 표현도 다양했다.

 

어리고 성긴 매화 너를 믿지 않았더니

눈 기약(期約) 능히 지켜 두세 송이 피었구나

촉(燭) 잡고 가까이 사랑할 제 암향(暗香)조차 부동(浮動)ㅎ더라

 

빙자옥질(氷姿玉質)이여 눈 속에 네로구나

가만히 향기 놓아 황혼월(黃昏月)을 기약하니

아마도 아치고절(雅致高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ㅡ 안민영「매화사(梅花詞)」 부분

 

  조선 후기의 가객이자 『가곡원류(歌曲源流)』의 편찬자인 안민영의 연시조 작품이다. 1870년(고종7) 안민영이 스승인 박효관과 함께 기생 및 가객들과 더불어 놀며, 매화에 붙여 노래한 전체 8수 중 제2수와 제3수이다. 영탄의 노래라 하여 「영매가(咏梅歌)」 또는 「영매사(咏梅詞)」라고 부르기도 한다. 안민영이 자신의 시조 180수를 수록하며, 작품마다 창작 동기와 날짜, 장소 등을 소상히 밝혀놓은 『금옥총부(金玉叢部)·6』에는 이 작품에 대한 배경도 실려 있다.

  스승인 박효관이 매화를 매우 좋아하여 손수 새순을 가리어서 책상 위에 올려놓았는데 그즈음 몇 송이가 벙글어 그윽한 향기가 방 안에 떠다녔다. 이로 인해 매화사를 지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매화를 보며 풍류를 즐긴 곳은 서울 종로구 필운대 근처 ‘운애산방(雲崖山房)’이었다. 인왕산 아래 경복궁의 서쪽이라 하여 ‘서촌’이라고도 하고,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이라 하여 ‘세종마을’이라고도 부르는 곳이다. 이곳에서 박효관이 풍류방을 만들어 제자들을 가르치자, 고종의 아버지이자 최고 권력자였던 흥선대원군이 그에게 ‘운애’라는 호를 지어 주었고, ‘운애산방’이란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안민영의 「매화사」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제2수이다. 너무 어리고 가지도 성글어 반신반의하던 차에 약속대로 눈(싹)이 자라 꽃을 피운 것이 사랑스러워 촛불을 들고 가까이하자 은은한 향기로 반겨준다는 것이다. 중장의 “눈 기약”은 ‘꽃눈을 피우겠다는 기약’과 ‘눈이 내릴 때 피어나는 기약’의 중의적인 의미로 읽힌다. 이어지는 제3수에서는 엄동설한을 이기고 피어나는 매화의 고결한 품성을 나타내고 있다. ‘빙자옥질(얼음같이 맑고 깨끗한 살결과 구슬같이 아름다운 자질)’이나 ‘아치고절(아담한 풍치와 높은 절개)’은 모두 매화에 대한 별칭이자 시적인 은유이다.

  「매화사」는 노랫말과 악곡이 적절하게 조화된 연시조로 도학적 이상을 내세운 조선 전기 사대부들의 연시조와는 차별점이 분명하다. 매화를 노래한 작품은 수없이 많지만, 이 시조만큼 매화의 속성과 뜨거운 애정을 잘 그려낸 작품도 드물다는 것이 학자들의 중론이다. 강건한 나무들도 꽃을 피우지 못하고 찬바람에 움츠리고 있는데, 아직 어리고 미덥지 않은 약한 가지에서 꽃망울이 터지며 향기를 퍼트리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울까. 촛불 아래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 그 향기를 좇아 꽃을 살피는 가객들의 모습은 봄을 마중하는 상춘객의 표본이지 싶다.

  이처럼 오랜 세월 우리의 생활·문화와 함께해온 연유로 2007년 문화재청은 전국의 고매 4곳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강릉 오죽헌 율곡매(천연기념물 제484호), 구례 화엄사 매화(천연기념물 제485호), 장성 백양사 고불매(천연기념물 제486호), 순천 선암사 선암매(천연기념물 제488호)가 그것이다. 율곡매는 딸의 이름을 매창으로 지을 정도로 매화를 사랑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손길이 깃든 매화로 알려져 있다. 화엄사 경내 암자인 길상암 앞 대숲에 자리한 구례 화엄사 매화는 자연적으로 자라난 탓에 ‘들매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불매는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을 기리자는 뜻으로 결성한 고불총림의 기품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선암매는 백매와 홍매 2그루를 중심으로 20여 그루의 매화가 조화롭게 군락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 중 백양사 고불매와 선암매(일부)는 붉은 꽃이 피는 홍매화로 유명하다. 한편 홍매화의 대표로 일컬어지는 꽃은 화엄사 각황전과 원통전 사이에 있는 매화다. 가람 지붕보다 높이 서서 꽃이 붉다 못해 검붉다고 하여 흑매화(黑梅花)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흰꽃이 피는 백매화가 은일(隱逸)과 고절(高節)을 상징한다면, 홍매는 그 화려한 자태로 말미암아 겨울을 뚫고 일어서는 기상과 열정을 품은 아름다움의 화신처럼 느껴진다. 불교에서는 보이는 꽃을 화(花), 보이지 않는 꽃은 화(華)로 구분한다. 보이는 꽃과 보이지 않는 꽃들이 함께 어우러져 불심과 자비심을 일깨움으로써 피안(彼岸)의 화엄세계로 이끈다는 것이다. 이름 있는 고찰마다 오래된 매화 한두 그루 정도는 있는 걸 보면, 결국 유교든 불교든 궁극적인 이상은 한 점으로 수렴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이런 봄날 꽃이 되어

 

피어 있지 않는다면

 

그 꽃 아래 누워서

 

탐하지 않는다면

 

눈보라

 

소름 돋게 건너온

 

사랑인들 뜨겁겠느냐  

ㅡ 김영재 「홍매」 전문

 

   꽃은 그리움이라고 했다. 일 년을 기다려왔던 그리움이 마침내 결실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 인내의 결실이 꽃이고, 그리움의 시간이 빛깔과 향기로 승화된다는 이야기다. 김영재 시인의 「홍매」는 이러한 그리움의 이미지를 사랑으로 응축해놓고 있다. 봄을 맞는 시인의 가슴은 태양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부풀어 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순간이 온 것이다. 활짝 핀 홍매 앞에서 맥동하는 뜨거운 기운을 느끼는 순간, 시인은 어느새 홍매와 하나가 된다.

  이러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자연관은 안민영의 「매화사」와는 또 다른 형태의 생명사상으로 진화한다. 순환하는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되 그 자연을 딛고 일어서는 적극적인 생명의 의지가 생동하는 봄의 활력으로 뜨겁게 분출하는 것이다. 짧은 시편 안에 가정법과 반어법, 설의법과 영탄법 등 다양한 수사법을 섞어 놓은 기교 또한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는 듯한 평이한 시어들에 특별한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홍매’라는 강렬한 구상의 이미지를 ‘뜨거운 사랑’이라는 추상적 관념으로 바꿔놓는 시인의 심미안을 훔치고 싶어진다. 

 

젖도 덜 뗀 어린 것이 아우를 보았던가

 

이월 숲 아랫도리는 여전히 까칠해도

 

보란 듯 우듬지 쪽은 핏물이 하마 돈다 

 

꽃샘이 뒤미처 와 눈을 자꾸 흘기더니

 

날[日] 수도 늘 모자라 무녀리만 같은 너를

 

자투리 천 조각 이어 감침질로 안고 간다 

ㅡ 이승은 「다시 이월」 전문

 

  매화가 눈 속에서 꽃망울을 터트리듯 겨울을 밀어내고 봄을 올리는 자연의 어기찬 노역이 빛나는 2월은, 한편으로 1년 중 가장 불완전한 달이기도 하다. 조급증에 사로잡힌 어미에게서 배태된 무녀리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다른 달보다 이틀이나 사흘이 빠진 ‘모자란 달’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일관성도 없어서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윤년에는 하루가 늘어나기도 한다. 그 법칙을 해마다 기억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언제나 새해 달력을 보고 나서야 그런 사실을 깨닫지만 절뚝거리는 느낌마저 떨쳐버릴 수는 없다. 이승은 시인도 이런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젖도 덜 뗀 어린 것”인 1월의 “아우”이자 “날 수도 늘 모자라 무녀리만 같은” 달이 ‘2월’이다. 추위에 움츠러든 “아랫도리는 여전히 까칠해도” “우듬지 쪽은 핏물이 하마 도”는 ‘정중동’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조각보를 만들 듯 봄(3월)을 향해 “자투리 천 조각 이어 감침질로 안고 가”는 것이다. ‘겨울’이라는 굄돌을 빼어내고 가슴속에 ‘새봄’을 채워 넣으려는 갈망의 표현이리라. 2월에는 24절기 가운데 첫 번째 절기인 입춘(立春)과 두 번째 절기인 우수(雨水)가 들어있다. 그러니 입춘은 봄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한 해의 시작으로서 앞으로 맞이할 계절을 제대로 보내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 ‘준비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본다면 2월은 단순히 모자란 달이 아니라 다른 어느 달보다 더 큰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역동적인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 * *

 

  풀과 나무가 봄을 기다리듯 사람들 역시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인생도 사계절과 닮았기 때문이다. 경제불황, 취업난, 국론분열 등 각종 고난과 시련의 한파가 몰아치고 있지만 결국 봄은 오고야 말 것이다. 그렇기에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미리 봄을 준비하면서 계획을 세우기에 좋은 시간이 2월이다. 봄을 마중하는 매화는 이미 피었다. 마스크를 벗으며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나아가는 첫발을 떼었듯이 지난해보다 더 나은 하루하루가 가득하길 봄을 기다리는 마음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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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성 ㅣ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등단. 시조집 『세렝게티를 꿈꾸며』 『왼바라기』 『야생의 족보』, 시조선집 『지 에이 피』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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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