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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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임채성 

 

 

 

 

구태냐고요? 첨단입니다

  

  

   

 

  지난해 세계는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세계 곳곳에서 기상 재해가 잇따르며 인류의 생존을 위협했다. 유럽은 용광로를 연상케 할 정도로 가장 뜨거운 여름을 기록했고, 최소 1만5천 명 이상이 온열 관련 질환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역대급 폭염과 가뭄, 기록적 폭우에 이어 폭설을 동반한 겨울 폭풍까지 나타났다. 파키스탄에서는 6월부터 계속된 폭우로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기고 1천700여 명이 숨지는 최악의 물난리를 겪었다. 파키스탄과는 반대로 아프리카에선 극심한 가뭄으로 식량 위기가 더욱 악화되었다.

  우리나라도 봄철 산불에 이어 여름 폭우까지 겹치며 많은 인적·물적 피해를 입었고, 또 슈퍼태풍 앞에서 가슴을 졸여야 했다. 이러한 극단적인 기상 재해의 원인으로는 단연 기후변화가 지목된다. 과학자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재해가 더 잦아지고 강력해지고 있어,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대응이 없다면 인류의 생존까지 위협받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2019년에는 영국 옥스퍼드사전이 ‘기후 비상(climate emergency)’이라는 단어를 ‘올해의 단어’에 선정하기도 했다. 기후에 대한 긴박성을 보여주며 사용 빈도가 1년간 100배나 늘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기후 위기 시대엔 문학의 고민도 깊어진다. ‘예측 불가능한 일’을 문학에선 ‘개연성이 떨어지는 일’이나 ‘판타지’로 여긴다. 하지만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 일상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남으로써 현실에 발 디뎌야 하는 문학도 피해갈 수 없는 화두가 되었다. ‘지금-여기’라는 동시대의 삶과 정서를 정형 율격에 실어 노래하는 ‘시절가조(時節歌調)’인 시조 또한 오래전부터 기후 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해오고 있다. 이러한 시조 문단의 관심은 고시조의 한 특성으로 거론되는 자연친화 세계관과도 맞닿아 있다. 기후는 자연조건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萬古)에 푸르르며,

   유수(流水)는 어찌하여 주야(晝夜)에 긋지 아니난고

   우리도 그치지 말아 만고상청(萬古常靑) 하리라 

- 이황 「도산십이곡」 중 제11수(『청구영언』) 

 

  조선 성리학의 태두인 퇴계 이황이 지은 이 시조에는 그의 자연관과 학문관이 잘 나타나 있다. 푸른 산과 흐르는 물처럼 늘 변함없는 삶을 살자는 의미다. 여기서 ‘상청(常靑)’은 두루두루 여러 의미의 해석이 가능하다. 고전시가 연구자들은 일반적으로 ‘학문 연마’의 속뜻을 이야기하지만, 선비로서의 ‘청빈한 삶’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변함없는 우의’, 좀 더 확장하면 무병장수에의 기원까지 유추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이면에는 변하지 않는 자연에 대한 믿음과 그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픈 자연과의 공존의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고시조에 나타난 이런 자연친화 세계관을 ‘음풍농월(吟風弄月)’로만 비판하는 편견의 눈에는 그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추구하는 생태학적 세계관을 읽어낼 수 없을 것이다. 생태학적 세계관은 인간은 물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생물학적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다양성을 옹호하며 공존의 법칙을 모색하는 철학적 성찰이기도 하다. 그것은 ‘음풍농월’로 대변되는 귀족들의 한가한 망중한이 아니라 ‘사람살이의 구체성’을 들여다보는 응시의 미학이다. 지금과 같은 기후 위기 시대에 자연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시인이라면 그는 최첨단을 지향하는 시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들끓는 적도 부근 소용돌이 물기둥에

   우우우 높새바람, 태평양이 범람한다.

   엘니뇨 이상 기온이 내안 가득 밀린다.

 

   날궂이 구름 덮인 심란한 나의 변방.

   이름 모를 기압골이 상승하고, 소멸하는…

   엘니뇨 기상 이변이 거푸 밀어닥친다.

 

   바닷가재, 온갖 패류, 숨이 찬 산호초에

   우리 친구 물총새 끝내 세상 뜨는구나,

   저마다 세간을 챙겨 브릉브릉 뜨는구나.  

- 윤금초 「엘니뇨, 엘니뇨」 전문

 

  윤금초 시인은 ‘엘니뇨’라는 기상이변을 소재로 생태계 파괴의 극단적 심각성을 제기하고 있다. ‘엘니뇨’는 태평양 동쪽(페루와 칠레 앞바다)에서 일어나는 해수 온난화 현상을 가리키는데 폭염과 가뭄, 한파 등 기상이변을 일으키는 주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엘니뇨로 인한 기상이변은 이미 오래전부터 관측되어 왔다. 1876 ~1878년과 1896~1902년 강한 엘니뇨에 따른 가뭄과 기근으로 중국·인도·브라질에서만 최소 3천170만 명에서 최대 6천13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한다.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18세기 프랑스혁명도 엘니뇨가 원인이라는 주장이 있다. 프랑스혁명이 진행됐던 1789~1793년 사이 엘니뇨가 강하게 발생했다. 그 영향으로 유럽 전역이 흉작에 시달렸고, 굶주림에 지친 프랑스 국민들이 봉기하면서 혁명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엘니뇨’란 말이 처음 등장한 때는 1892년이라고 한다. 페루해군 함장이었던 카밀로 카릴로(Camilo Carrillo)가 페루 리마에서 열린 지리학회에서 뱃사람들이 이곳에 흐르는 따뜻한 해류를 '엘니뇨'라 부른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엘니뇨를 광범위한 지역의 이상기후 현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1893년 찰스 토드(Charles Todd)라는 과학자가 인도와 호주에서 가뭄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에 주목하면서부터였다. 20세기 과학자들은 엘니뇨 현상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그 결과 엘니뇨 현상으로 태평양의 에너지 분포가 바뀌고 대기의 흐름에 변화가 생겨 비를 내리는 전선이 서태평양 지역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이상기후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엘니뇨’라는 말이 대중에게 일반화된 것은 1960년대 말부터라고 한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경제개발’에 목을 매던 시기라 기상이변이나 환경 문제보다는 당장의 먹고 사는 민생고 해결에 더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시기에 윤금초 시인은 과감하게 환경 문제를 시조 소재로 도입한 것이다. 1983년 『네 사람의 얼굴』(윤금초 외 3인 공저, 문학과지성사)을 통해 처음 발표된 것을 감안하면 이 작품이 얼마나 선구적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겠다. 기존의 시조 스타일과는 확연히 다른 자연관을 표출함으로써 현대시조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 것이다. 

 

   제철공장 블록담은 가시줄로 관을 썼다

   녹슨 시간들이 빗물에 녹아내려

   핏자국 마른 상처로 얼룩지며 신음한다.

 

   관리층 미학자는 죽은 벽을 살리려고

   담을 돌아가며 장미를 꺾어 심어

   번지는 이상기류를 꽃을 피워 눅이렸다.

 

   화부의 분노 같은 불길은 활활 솟고

   주물공 타는 아픔이 쇳물로 끓을 때도

   장미는 키가 자라고 연방 잎을 토해냈다.

 

   노사간이 등을 돌린 적막한 빈터에는

   줄기마다 꽃망울이 울을 돌아 맺히더니

   용광로 타던 불꽃을 옮겨 담아 피어난다. 

- 정해송 「제철공장에 핀 장미는」 전문 

 

  한편, 생태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생명의 다채로움을 선보여온 정해송 시인은 현대 공업화 사회의 단면을 대비적인 색채로 그려낸다. 신은 자연을 창조했지만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산업화 이후 도시로 인구와 자본이 몰리면서 자연이 설 땅은 점점 사라져 가는 반면, 인간에게서 멀어져 낙후와 고립이 심화된 지역은 오히려 자연이 건강해지는 아이러니를 낳는다. 소음과 공해, 물질만능주의에 따른 계급갈등이 일반화된 현대 공업사회는 사람들로부터 정신의 안식처를 앗아갔다.

  이 작품에서 정해송 시인은 제철공장과 장미의 대비를 통해 주체와 세계 사이, 화자와 타자 사이, 대상과 대상 사이의 관계를 조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여기서 ‘장미’는 여러 알레고리의 집합체이나 표면적으로는 제철공장이라는 삭막한 인공물에 자연의 피를 돌게 하는 생기 수혈의 기능을 수행한다. 이처럼 현대시조가 고시조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자연과의 서정적 조응이 아니라 자연을 통한 비판적 세계관의 형상화라 할 수 있다. 즉 ‘자연물’이 중심제재로 기능하되, 서정적 조응을 넘어 생태계 파괴와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으로 사유의 폭을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물질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지향하는 생태학적 세계관은 본디 자연의 일부인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 회귀로의 귀소본능에 불을 지핀다. 현대시조에서 주목하는 자연물은 고전시가에서 보이던 낭만적 대상이 아니라 돌아가고 싶은 생활 터전으로서의 자연이며, 지속 가능성을 담보한 유토피아의 보루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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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성 ㅣ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등단. 시조집 『세렝게티를 꿈꾸며』 『왼바라기』 『야생의 족보』, 시조선집 『지 에이 피』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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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