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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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진임 

 

 

 

 

달과 별과 시조

  

  

   

 

  하늘의 달과 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인들의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 왔다. 달과 별을 바라보며 시인들은 사랑과 그리움과 꿈과 회한을 동시에 노래해 왔다. 조선 후기의 이정진은 북두성과 달을 길잡이 삼아 항로를 열어가는 배의 모습을 재현한 바 있다.

 

   북두성 도라지되 달은 밋쳐 아니 졋네

   가는 배 엇마예리 밤이 님의 깁허셰라

   풍편수성침(風便數聲砧) 들니니 다 왓는가 하노라

 

   *

 

   북두성은 자리를 옮겼으되 달은 미처 지지 않았구나

   가는 배는 갈길이 얼마인지 밤은 이미 깊었구나

   바람결에 다듬이질 소리가 두서너 번 들려오니 다 왔는가 하노라.

 

  시적 화자의 항로는 고달픈 인생길의 비유일 것이다. 오로지 북두성과 달을 바라보며 홀로 나아가는 외로운 시적 화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마침내 종장에 이르러 바람결과 다듬이질 소리가 등장한다. 그 기호들은 시적 화자가 사람 사는 동네에 가까웠음을 보여준다. 초장의 북두성과 달, 중장의 배와 밤의 이미지가 도모하던 고독과 고달픔이 종장에 이르러 마무리된다. 결국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의 인정을 찾아 시적 화자는 어두운 밤, 긴 여로를 거쳐왔음을 알 수 있다.

  현대 시인들이 달과 별을 바라보며 펼치는 상상력의 세계는 더욱 깊고도 넓다. 서정을 재현하는 데에 요긴한 소재로만 달과 별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 양상을 통하여 삶에 대해 고찰하고 철학적 사유를 전개한다. 그 방식은 사뭇 새롭기만 하다. 류제하 시인의 「낮달」이 그러하고 김태경 시인의 「북극성」이 그러하다. 먼저 류제하 시인의 「낮달」을 보자.

 

   아아, 있었구나 늬가 거기 있었구나

   있어도 없는 듯이 그러능 게 아니여

   내 너를 잊었던 건 아니여 결코 아니여

 

   정말 거짓말 아니여 정말

   해쓱한 널 내가 차마 잊을까

   뉘 있어 맘 터억 놓고 나만 돌아서겠니

 

   암, 다아 알고 있어 늬 맘

   행여 눈물 비칠까 도사리는 안인 거

   울면서 씨익 웃음짓는 늬 심정 다 알아 나

 

   정말이여 나, 설운 게 아니여 정말

   조각난 늬 아픈 델 가린다고 모를까

   이렇게 흐느끼는 건 설워서가 아니여

- 류제하, 「낮달」

 

  류제하 시인은 낮달의 존재가 지닌 양가성을 노래한다. 류제하 시인이 낮달의 정체를 궁구하는 과정은 로고스 중심주의 사고의 틀을 흔드는 것이면서 동시에 언어의 본질을 심문하는 것이기도 하다. 류제하 시인은 있다와 없다 사이, 정말과 거짓말 사이, 울음과 웃음 사이의 모든 경계들을 지우고 있다. “정말 거짓말 아니여 정말” 구절을 보자. 정말은 거짓말을 선행하거나 후행하면서 정말과 거짓말이라는 반대말은 서로를 부축하고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다. “울면서 씨익 웃음짓는”구절에서는 울다와 웃다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두 상대되는 말이 서로 겹쳐짐을 볼 수 있다. 시적 화자는 흐느끼면서도 “설운 게 아니여 정말,”“설워서가 아니여”라고 거듭 다짐하고 있다. 있는 것이면서 없는 것이고 정말이면서 거짓말이고 울면서 웃는 것……. 낮달은 그처럼 오묘한 양상으로 존재하면서 멀거니 대낮 하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낮달의 존재가 지시하는 복합성과 애매성은 또한 시어의 정체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든다. 시의 언어는 미묘한 것이어야 한다. 법률의 언어가 가능하면 명료하고 정확해야 하는 것이라면 시의 언어는 그 대척점에 놓이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면서 저것이어야 하고, 이것인가 하면 저것 같기도 하고, 딱히 이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저것이라고 의미를 확정하기도 어려운 그런 말이 더욱 시적이다. 우리가 애매성, 혹은 모호성이라고 번역하곤 하는 ambiguity는 시의 필수적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시의 언어는 어두운 밤, 담벼락에 비친 달빛 같은 것이어야 한다. 시어도 그 달빛 같은 것이라 여겨진다. 달빛처럼 미묘하고 복합적이고 함축적이어야 한다.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고 나면 싱겁기만 하다. 너무 밝지도 않고 너무 어둡지도 않고 은은하면서도 환해야 한다. 달빛 머문 자리를 선으로 표해 놓고 뒷날 해가 뜨고 난 뒤에 가보면 알 수 있다. 달빛의 정체는 얼마나 함축적이며 미묘한 것인지를…​​​​​​​…​​​​​​​. 밤에는 있음이지만 낮이 되면 없음이라고도 보이는 것이 그 달빛의 흔적이다. 어둠을 배경으로 지니고 있을 때에는 밝고 형체도 분명한 듯하지만 그 어둠이 사라지고 나면 참으로 싱겁고 어이없게 허여멀건해 보이는 것이 달이다. 그래서 낮달은 참으로 별나게 보이는 대상이다.

박기섭 시인이 낮달을 두고 쓴 산문을 읽어보자.

 

   하늘에는 하현의 낮달이 지나간다. 구만리창천, 그 아득히 높고 먼 길을 가다 말고 문득 오동나무 가지에 내려 앉는 달. 오동꽃의 잔향이라도 훔쳐 맡는 것일까. 낮달의 정서는 아무래도 허기에 가깝다. 핏기 잃은 낯빛이 허천난 그리움의 정회를 더하는 까닭이다. 그런 날, 오래 불 켜든 오동꽃이 이울기라도 한다면 어쩔 텐가. 날은 이미 저물어 저녁 상머리 숭늉 그릇도 헤식은 것을. 헤식은 숭늉 그릇에 이 산 저 산 떠돌며 먹피를 쏟던 뻐꾸기 울음만이 남는다. 그 울음의 잔뼈만이 남는다.

 

  우리 시대 시인들에게 낮달은 새로운 사유의 세계를 열어 보인다. 의미로 충만한 존재는 시인에게 상상력을 통하여 채워 넣어야 할만한 빈 공간을 허여하지 않는 모양이다. 박기섭 시인은 낮달의 존재 양상을 허기의 표현으로 읽는다. 그리움도 지쳐 핏기 잃은 낯빛이라 읽는다. 낮달은 그처럼 우리의 경직된 사고를 무장해제시키면서 경계 너머에서 한세상을 바라보게 만들고 있다. 우리 시대 시인이 북극성을 바라보는 눈길도 새롭다. 김태경 시인이 그린 「북극성」을 보자.

 

   저 치명적인 아름다움

   가닿기 어려웠지

 

   힘들 땐 기대라던

   차갑고 따뜻한 말

 

   그 말에 기대를 품고

   공전을 반복했지

- 김태경, 「북극성」

 

  아주 먼 곳에 홀로 떨어져 앉은 북극성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그려내면서도 공전이라는 시어를 도입함으로써 김태경 시인은 대상과 주체의 위치를 새로운 방식으로 표기한다. 텍스트는 생략과 함축의 미학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북극성을 바라보면서도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주체의 모습은 “치명적인”이라는 시어에서 드러난다. 그 표현은 북극성에 가까워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궤도를 벗어날 수도 없는 어떤 별의 운명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서사를 함축하고 있는 시어가 바로 공전이다. 초장에선 북극성이 외롭고도 고고한 존재로 등장한다. 그리고 종장에선 공전을 반복하는 주체의 운명이 드러난다. 초장과 종장을 매개하고 있는 중장의 “차갑고 따뜻한 말”이라는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표현에 유의해보자. 한편으로는 연결과 상생에의 희망이,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가닿기 어려운” 존재로서의 북극성의 정체가 동시에 드러나 있다. 그리하여 “차갑고 따뜻한 말”이 유희에 그치는 것을 막아준다.

  고시조의 세계에서 여로의 끝은 인가가 모여 있는 동네였다. 북두성 바라보며 나아가던 밤 항로는 마침내 풍편수성침(風便數聲砧) 들리는 곳에서 마무리되곤 했다. 그러므로 시적 화자에게는 따뜻한 마을로 들어설 일만 남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우리 시대엔 모두 홀로 길을 나선다. 별들은 공전을 반복한다. 지향하는 대상과의 거리가 결코 좁혀질 것 같지 않다. 달이라면 낮달이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 되기에 더욱 적합해 보인다. 봄밤의 개를 짖게 만들곤 하던, 그런 휘영청 밝은 달은 이미 이울었고 시간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 낮달이 빈 하늘가에 머문다. 그 허전함과 미묘함과 서글픔을 시인들이 노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세기로부터 21세기까지, 시조 형식은 그처럼 달라진 시대의 이질적 서정의 편린들을 여전히, 알뜰히 담아내고 있다. 전통의 힘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참고문헌

    김천택 편, 홍문표 강중탁 역주, 『청구영언』(명지대학교 출판부, 1995) 19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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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임 ㅣ

2004년 《문학사상》 평론 등단. 연구서 『비교문학과 텍스트의 국적』 『Narratives of the Vietnam War by Korean and American Writers』, 평론집 『두겹의 언어』 『세이렌의 항해』 등이 있음. 현재 평택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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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