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오선지 위의 시어들
 
오선지 위의 시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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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지상 
완결여부 연재중 

 

 

 

 

오선지 위의 시어들 7

— 안도현 시 「사랑」 : "그리하여 내 무덤가에는 소금처럼 하얀 그리움만 남도록"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죄짓는 일이 되지 않게 하소서 

나로 하여 그이가 눈물짓지 않게 하소서 

사랑으로 하여 못 견딜 두려움으로 

스스로 가슴을 쥐어뜯지 않게 하소서 

사랑으로 하여 내가 쓰러져 죽는 날에도 

그이를 진정 사랑했었노라 말하지 않게 하소서 

내 무덤에는 그리움만 

소금처럼 하얗게 남게 하소서 

    

 

  우산을 잃어버렸다. 장마는 지나갔다고 했으나 연일 장마였던 날, 가랑비였다가 폭우였다가 어쩌다가는 곧 무지개가 찬란할 것 같은 하늘을 기대하며 나선 길이었다. 버스를 탔고 지하철로 갈아탔고 커피숍에 들러 달달한 냉커피를 마셨고 다시 버스를 탔고 낮술 같은 이른 저녁을 약속한 곳은 선술집이 늘어서 있는 골목이었다. 고기를 구웠고 소주를 마셨고 또 마셨다. 어디서 잃어버렸을까 나의 우산은. 미처 어두워지기 전의 술자리는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간 창가였다. 한바탕 바람이 일었고 순식간의 빗줄기가 골목의 초입에서 끝까지 경주하듯 몰아쳤었다. 빗소리가 참 좋았다는 기억이 있다. 창가를 후려친 빗줄기는 유리창에 방울로 맺혀 떨어졌다. 나는 빗방울의 개수를 헤아리며 그만큼의 술잔을 들이켰었다. 거기에 두고 왔을까 나의 우산은.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간간이 하늘은 청명했었고 우산을 접고 걸었던 시간이 더 많았으니까. 귀갓길의 버스 안은 몹시 북적였다. 축축해진 몸들이 서로 부대끼고 간간이 배설해내지 못했던 야릇한 욕망의 향기가 풍기는 듯도 했다. 체향(體香)은 견딜 만했는데 비척거릴 공간은 없었다. 손잡이 하나에만 중심을 의지하면서는 사람이 사는 마을의 한편에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내가 대견해지기도 했다. 버스에서 내린 심야의 거리에 다시 비가 내렸다. 내 손에 펼칠 우산이 없다는 건 그제야 알았다. 비를 피할 방법은 없었다. 하여 빗줄기를 피할 생각은 애초에 하지 못했다. 내버려 두어도 좋은 시간이었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졌고 손끝과 옷자락으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몇 걸음 걷지 않아도 내 몸은 충분히 젖어 있었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라는 구절을 생각해 냈다. 오규원의 시여도 좋았으나 임영태의 소설도 좋았다. 나는 삶의 고단함에 충분히 젖어 있으니 다시 삶의 고통에 젖지는 않을 거라 여기며 아주 가끔씩 찾아오는 잡상(雜想)의 즐거움을 탐닉하기도 했을 것이다. MBC 베스트 극장에서 동명의 드라마를 방영한 적이 있었다. 임영태의 소설을 극화한 작품이었는데 지금은 중견 배우인 김상중이 주인공을 맡았었고 나는 그 작품의 음악을 담당했었다. 오래전의 일이다. ‘물밀듯’이라는 수사에 걸맞게 빗줄기는 거셌다. 배수구로 쏟아져 들어가는 빗물의 속도는 내 걸음보다 열 배는 더 빠른 듯했다. ‘어디서 잃어버렸을까 나의 우산은’을 몇 번이고 곱씹으며 천천히 걷다가 잠깐 멈추어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체기 있는 배를 쓸어내리듯 가슴을 훑고 금세 사라진 말 한마디를 무심코 중얼거렸기 때문이다. 

   “어디서 잃어버렸을까 나의 사랑은”.

  경계는 늘 모호했고 나의 인지 능력은 예민하지 못했다. 배롱나무꽃 영글면 가을이 온다 했지만 단풍이 내려야 가을이었고 환절기면 늘 앓고 지나가는 잔기침의 신호에도 첫눈을 맞아야만 겨울인 줄 알았다. 사는 날은 언제나 슬픔이었으나 이것이 기쁨이었을까 하는 순간도 많았다. 슬픔의 뿌리는 이별이었는데 그것이 표면으로 드러날 때쯤이면 곧 낙엽처럼 떨어지는 그리움이 감싸주었다. 상실로부터 이어지는 절망 또한 큰 슬픔의 줄기였으나 망각이라는 도구가 있어 숨 쉴 수 있었다. 기쁜 것과 슬픈 것은 늘 공존했고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의 구분조차 명확지 못했다. 그저 나는 인간이며 그저 나는 늙어가고 있다는 상황 인식만으로도 나의 정체성은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니 사랑인 줄 어찌 알았겠는가. 그러나,

 

  사랑도 지나치면 사랑이 아니라고 수많은 작별을 무감한 듯 지나쳤던 날들을 돌이키며 이별이 지나도록 이별인 줄 몰랐던 어느 한순간을 떠올리면 “어디에 두고 왔을까 나의 사랑은”, 얇은 유리가 된 흠뻑 젖은 몸의 한구석에 돌처럼 떨어진 이 말을 나는 어쩌다가 되뇌게 되었을까. 발걸음이 느려지고 가슴 한편에 금이 선명히 간 환절기의 비오는 저녁,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우산을 찾듯 어디에 두고 왔는지도 혹은 존재했었는지도 모르는 사랑의 기억 속에 서성거리며 시 한 줄을 떠 올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 무덤가에는 소금처럼 하얀 그리움만 남게 하소서”.

 

  “불행아”의 작곡가 김의철의 기타 소리가 명징했던 2001년 봄 샘터파랑새극장, 그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 부르는 양희은의 목소리는 더없이 쓸쓸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죄짓는 일이 되지 않도록” 살과 살을 부대끼며 움직일 틈 없이 관객이 들어찼는데도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비좁은 극장의 틈 사이를 그녀의 노래가 시가 되어 파고들었다. 노래가 절정으로 가는 순간이었다 “사랑으로 하여 못 견딜 그리움에 스스로 가슴 쥐어뜯지……” 반주는 계속되었으나 노래가 멈추었다.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던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다시 하겠습니다”. 노래를 녹음한 후에 처음 부르는 무대라고 했다. 노래에 익숙지 않아 가사를 잊었을 거라 여겼던 나의 생각은 잘못이었다. 처음부터 그녀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고 속울음을 참으며 거기까지 불렀으나 결국 울컥 터져 나오는 속내를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촉촉해진 그녀의 눈빛을 확인하며 관객들은 하나둘씩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노래는 무사히 끝났고 절정을 지나간 슬픈 노래는 끊이지 않는 박수로 마무리되었다.

  안도현 형이 지은 시의 원제는 ‘사랑’이다. 노래가 되면서는 ‘사랑 - 당신을 위한 기도’가 되었다. 시에 음표를 얹는 과정에서 원문이 다소 바뀌었다. 바뀐 노래 가사를 원문으로 이해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시인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다. 이 노래는 양희은 30주년 기념 음반(2001년)에 처음으로 수록되었다. 이후 일본을 주 무대로 하는 팝페라 가수 휴(HUE)와 후배 가수 허영택의 음반에도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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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AcCDv9t1W2g?si=U6T1x3rHJxONl3Wp 

  

사랑 당신을 위한 기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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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상  l

가수. 작곡가. 작가. 1991년 〈통일은 됐어〉 〈내가 그대를 처음 만난 날〉로 작품 활동 시작. 음반 《사람이 사는 마을》 《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 《위로하다 위로받다》 《기억과 상상》 《기억과 상상》 《그리움과 연애하다》 《나의 늙은 애인아》 등, 산문집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스파시바 시베리아』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대한민국 도슨트—포천』이 있음. 시노래 운동 모임 〈나팔꽃〉 동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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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호(VOL.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