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오선지 위의 시어들
 
오선지 위의 시어들
Extra Form Output
저자 이지상 
완결여부 연재중 

 

 

 

오선지 위의 시어들 5

— 이용악 시 「그리움」 :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白茂線)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워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벌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저녁 식탁을 힐끗 배회하던 벌레는 막다른 길이라는 걸 알았는지 서둘러 벽과 벽 사이를 날았다. 식구들은 기겁을 했고 각자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잡아, 잡아.” 벌떡 일어난 나는 벌레의 뒤꽁무니를 따라 몇 걸음을 뛰기까지 했다. “찰싹!” 벌레가 날갯짓을 잠깐 멈춘 그새 틈을 타고 나는 손바닥을 힘껏 부딪쳤다. 소리가 아주 명징하고 경쾌했다. 세계 최고(最古)의 오케스트라 노보시비르스크 필하모닉의 엔딩 연주 뒤에도 이런 박수를 쳐본 적은 없었을 만큼. 벌레가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두 마리였다. ‘러브버그’. 목적한 바 전리품을 획득한 나는 의기양양해 있었다. 벌레는 내가 잡았으니 누가 쓰레기통에 버리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는 다시 식탁 의자에 앉았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순간 나는 벌레가 집에 들어온 것은 문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란 것을, 그래서 나의 잘못이 일정 부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하나인 줄 알았던 벌레의 몸체가 둘이 되어 떨어졌을 때 이들의 결별을 강요한 주체가 나였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벌레는 생의 날갯짓을 멈추었고 엉성한 몸뚱이만 잠시 꿈쩍일 뿐이었다. 두 마리가 된 벌레의 시선이 서로를 보고 있었다는 것은 결국 휴지를 든 내가 잔해를 집어 들면서야 알았다. 나는 그저 나의 영역에 무단으로 들어온 침입자를 간단하게 처리했던 것뿐이었으므로 뻔뻔해질 이유가 있었다. 나는 더욱 뻔뻔하게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어쩌면 그리움이란 이별이라는 폭력을 망각해 내기 위한 자구책인지도 몰라”. 무심코 내뱉은 말에 화들짝 놀랐다. 나무의 뿌리가 중력의 중심을 향해 파고드는 이유는 열매를 위해 버린 꽃에 대한 그리움을 지워 내기 위한 몸부림일 거라는 생각에 멈춰서는 잠시 숨을 골랐다. 이윽고 그리움이란 내가 겪어왔던 숱한 증세 중 도대체 완치할 수 없는 유일한 질병이 아닌가 하는 자각에 이르러서는 망각될 수 없는 이별의 흔적들이 실뿌리처럼 돋아나 온몸 구석구석을 휘젓는 것이다.

 

   편지도 없이 우체국으로 간다

   그곳은 무뚝뚝하게 눈 맞추는 직원도 없고,

   쾅쾅 찍어대는 스탬프 소리도 없고, 우표도 팔지 않는 곳.

   발신인도 수신인도 없는 나뭇잎 하나 골라

   지문만 찍어 우체통에 넣을 것이다

   

   ‘나는 아직 잘 있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나는 아직 당신을 기억해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혼잣말이 된 나의 안부는 저녁 햇살처럼 사라지고

   하여 이 편지는 당신에게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당신, 당신이라고 불렀던 숱한 인연들

   그중에 보고 싶다 말했던 이들이 몇이나 될까.

   억새는 바람에 흔들려 출렁이고 산 하나가 출렁이고.

   빨간 우체통도 햇살과 함께 저물어 간다.

   산 하나가 저물어 간다.

 

   내 삶에서 가장 멀리 있는 우체국

   저녁 숲에 은밀한 나만의 우체국

   ‘이제 문 닫을 시간입니다’.

   그제서야 저녁 숲으로 편지를 보낸다

   마지막 손님이다.

- 졸시 「저녁 숲으로 편지를 쓴다 — 명성산 빨간 우체통」

 

  눈 녹은 시퍼런 물에 내장을 꺼내 흔들어도 씻기지 않을 평생의 질병을 고작 이 정도의 언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나의 능력을 탓할 때 마다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시가 있었다.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저 북쪽엔”. 해방의 환희가 뜨거웠던 그해 여름을 지나 잉크병 얼어드는 낯선 땅 서울 종로의 골방에서 맞이한 혹한의 그리움, 호롱불 아래 소근대며 스며들었던 사랑하는 이의 체온을 못내 이겨내지 못하고 쏟아낸 이용악의 시편을 오래도록 사랑해왔다. 느릿느릿 달리는 백무선 협궤열차의 기적 소리가 온 마을을 흔들면 함박눈 사부작 나리는 철길을 달려 산언덕을 올랐던 함경도 경성 소년 이용악의 애절한 사향가(思鄕歌)를 나는 80년대 후반에서야 들을 수 있었다. 월북 시인, 해금 시인으로 이름조차 알 수 없었던 세월이 너무 길었다. 88년 월북 시인 해금 이후 나온 그의 시집 『오랑캐꽃』을 사들고 으쓱거렸던 청년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는 사실이 그립다. 노래는 시를 마음에 품고도 오랜 시간이 더 흘러 만들어졌다. 아마 90년대 후반쯤 될 것이다. 굳이 창작 과정을 되짚어 보면 이렇다. 첫 음정을 솔(G)로 잡았다. 작곡을 하면서 전주까지를 함께 고려했는데 ‘중얼가요’를 전문으로 하는 내 목소리에는 그 음이 가장 무난했다. 그러니까 전주의 선율은 “솔도 레 미도 라도 미” 가 되는 것이다. 피아노의 하얀 건반을 따라 음을 두드렸다. 간은 맞는데 고기 맛이 느껴지지 않는 설렁탕 맛. 사실 연주자 한 명 없이 휘젓는 지휘자의 우스꽝스러운 지휘봉 같은 허전함이 있었다. 피아노의 검은 건반을 사용하기로 했다. 검은 건반 4개를 사용하는 음계는 좀 더 묵직하고 품위가 있어졌다. 나도 이 노래를 사랑하지만 나보다 더 사랑한다고 여기는 벗이 세 명 더 있다. 하나는 서울에서 음향을 고르는 이인데 그는 “눈이 오는가 북쪽에”하는 도입부를 가장 사랑한다. 대하극의 서막을 자신의 목소리로 여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고 했다. 또 하나는 청주에서 중화요리를 만드는 이인데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위에”를 가장 사랑한다. 함경도 무산이 고향인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그의 목소리를 떨리게 한다. 마지막 하나는 순천에서 강아지를 치료하는 이다. 그는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저 북쪽에” 그 대목을 가장 사랑한다. 아직 만나지 못하고 화해하지 못하고 서럽게 핏발진 눈길만 주고받는 반도의 현대사를 이 구절만으로도 상쇄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나도 이 노래를 읊조린 적이 있었다. 러시아령 핫산, 두만강 철교가 내려다보이는 타국의 언덕에선 철교 너머 북녘의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이 보였다. 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전하지도 못할 노래를 속으로만 불렀었다. 나와 함께 이 세 명의 벗이 함께 “그리움”을 부르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 틀림없이 술잔이 두어 순배 돌아가는 자리일 것이고 불콰해질 것이고 각자 사랑하는 그리움의 구절을 주사(酒邪)부리듯 흥얼거릴 것이다. 하나가 둘로 쪼개져 널브러지는 폭력을 당하고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우리가 한스러울 것이고 분단이라는 거대한 폭력앞에 그리움이라는 유일한 방패를 들이밀었던 시인의 고단한 삶이 또한 그리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노래는 마무리되지 못할 것이다. 아직 그리움을 강요하는 이별, 분단이라는 폭력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 https://youtu.be/fJs0rVfa5fU

그리움1.jpg

그리움2.jpg


  

이지상.jpg

이지상  l

가수. 작곡가. 작가. 1991년 〈통일은 됐어〉 〈내가 그대를 처음 만난 날〉로 작품 활동 시작. 음반 《사람이 사는 마을》 《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 《위로하다 위로받다》 《기억과 상상》 《기억과 상상》 《그리움과 연애하다》 《나의 늙은 애인아》 등, 산문집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스파시바 시베리아』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대한민국 도슨트—포천』이 있음. 시노래 운동 모임 〈나팔꽃〉 동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

2025년 6월호(VOL.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