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지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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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결여부 | 연재중 | ||
오선지 위의 시어들 3
— 복효근 시 「목련에게 미안하다」
어디엔가 늘 대신 매 맞아 아픈 이가 있다
황사먼지 뒤집어쓰고
목련이 핀다
안질이 두렵지 않은지
기관지염이 두렵지도 않은지
목련이 피어서 봄이 왔다
어디엔가 늘 대신 매 맞아 아픈 이가 있다
목련에게 미안하다
꽃 피는 춘삼월은 거짓이었다. 혹한에 버금가는 칼바람이 불어 꽃눈을 흔들었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 이제야 실눈을 비볐던 꽃몽오리는 켜던 기지개를 멈추고 다시 겨울 속으로 숨었다. 바람은 꽃에게 양해를 구했을까. 어둠과 같은 동면(冬眠)에 지쳐 섣불리 개화를 감행한 꽃들 위로 눈발이 흩날렸다. 냉기가 스며들자 향기를 뿜어야 할 꽃술은 굳게 입을 닫았다. 울긋불긋 막 피어난 꽃송이 위로는 하얗게 눈발이 쌓였다. 옷을 두툼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은 그 광경에 황홀해했다. 꽃의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봄 눈발과 눈발에 환호했던 사람들은 꽃들에게 용서를 구했을까.
오래전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유언은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사랑하십시오.”였다. 한국 사회의 큰 어른을 보내는 사람들의 눈물 속에 그 말은 차분하게 녹아들었다. 비로소 사람들은 용서하기 시작했다고 여겼다. 나는 추기경께서 한 말씀만 더 해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생각했다. “용서를 구하십시오.” 용서할 일이 많지 않았다. 그보다는 용서를 구해야 할 일이 훨씬 많았다. 그저 미안하다 한마디 하면 될 것을 고개 빳빳이 들고 외면했던 일도, 마땅히 발 디뎌야 할 곳을 온갖 핑계를 구실로 피했던 적도 있었다. 남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을 챙기며 마치 내 능력인 양 우쭐댔던 날들도, 별것 아닌 품을 들여놓고 대단한 일을 도와준 것처럼 뻐기던 때도 많았다. 돌이켜 보면 죄다 남사스러운 일이었고 모두 용서를 구해야 할 일이었다.
재일조선인들의 삶에 마음을 내놓은 적이 있었다.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란다」(허남기 시)라는 시를 노래로 만들어 발표했고, 우리 동포들이 애창해 주셨다. 2007년 도쿄도의 극우 도지사에 의해 학교를 빼앗길 처지에 놓였던 도쿄 제2 초급학교(에다가와 조선학교)를 방문했을 때는 운동장 한구석의 그네에 앉아 조용히 용서를 구한 적이 있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우리 말과 글과 얼을 잇기 위해 분투하는 동포들의 삶이 애처롭다가 이내 경이로웠고 “조국통일”이라는 글자가 모든 생활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그이 들의 신념 앞에선 부끄러웠다. 잘살든 못살든 내 나라라고 부를 수 있는 땅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동포들의 소원이 가슴을 찔렀다. 나는 그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내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다. 사실 내가 용서를 구할 일은 아니었다. 그들의 삶과 고통에 눈감았던 우리 혹은 조국이 무릎 꿇어야 할 일이었다. 그때 시인의 구절을 떠올렸었다. 그들이야말로 나 대신 우리 대신 매 맞아 아픈 사람들 아닌가. 에다가와 조선학교로 맺은 인연은 지금도 열심히 활동 중인 〈조선학교와 함께 하는 몽당연필〉로 이어졌다.
늦은 겨울 동백이 아련하니 놀러 오라는 벗들의 기별이나 매화철 꽃향기를 상상하며 엉덩이를 들썩이기도 했으나 해마다 봄은 「목련에게 미안하다」를 떠올리며 맞았다. 봄철의 강연이나 공연의 서두를 이 시로 열었고 목련이 피어야 봄이라고 우겼다. “어디엔가 늘 대신 매 맞아 아픈 이가 있다”는 구절을 떠올리면 내가 맞이하는 봄날이 경건해졌다. 목련을 기다리며 골목길 산책에 나설 때면 꽃망울을 터트리는 목련의 개수를 헤아렸다. 그 숫자만큼 미안하다 미안하다를 중얼거리기도 했다. 미안해지는 것의 숫자만큼 경건해진다는 것을 알만한 나이도 됐다.
상반(相伴)이란 말을 좋아한다. 서로 짝. 넘치면 덜어내고 모자라면 채워주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하면서 울분을 토해낸 적이 있었다. 많이 가졌다면 누군가로부터 빼앗은 것이니 최소의 염치가 있어야 하고 모자란다면 누군가에게 빼앗긴 것이니 당당하게 내놓으라고 요구해야 한다는 게 나의 상식이었다. 지금도 유효하다. 나의 염치와 요구가 무엇인지를 셈해볼 여지도 없이 겨울을 견뎌왔다고 여길 때쯤 목련이 피었다. 정신을 퍼뜩 차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요즘은 “계몽되었다”는 말이 유행인 듯하다. 주인에게 총칼을 들이민 머슴을 두둔 하기 위해 그 머슴의 머슴이 내뱉은 말이다. 그치들의 가슴속에 시인의 이 구절이 박혔었다면 비상계엄이니 내란이니 하는 살벌한 말들은 애시당초 없었을 것이다. 목련에게 미안한, 칼바람을 용서한 꽃들에게 미안한 시절이다. 일몰의 빛깔이 좋은 때를 골라 골목을 서성거린다. 목련에게 계몽되기로 작정한 시간이 왔다.
이 노래는 시노래 가수 박경하 씨와 우리 동네 합창 모임 〈꿈꾸는 합창단〉이 불러주셨다. 허락도 못 받고 시를 빌려와 선율을 붙여 발표를 했는데도 일언반구 섭섭한 말씀을 내비치지 않는 시인께 미안하다. 작곡가에게 가장 훌륭한 이는 자신의 노래를 불러주는 사람. 좋은 선율이라고 장담하지도 못하는 노래를 기쁘게 받아주신 가수들께도 미안하다. 종종 나는 그분들께 계몽당한다. 그리고 다시 경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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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상 l
가수. 작곡가. 작가. 1991년 〈통일은 됐어〉 〈내가 그대를 처음 만난 날〉로 작품 활동 시작. 음반 《사람이 사는 마을》 《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 《위로하다 위로받다》 《기억과 상상》 《기억과 상상》 《그리움과 연애하다》 《나의 늙은 애인아》 등, 산문집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스파시바 시베리아』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대한민국 도슨트—포천』이 있음. 시노래 운동 모임 〈나팔꽃〉 동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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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호(VOL.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