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박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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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중매에 미안해서
우리는 눈꽃처럼 겁쟁이라서
터울대 걷노라면 슬픔이 기쁨을 이기고 누르지만
돌아앉아 마주할 때 여지없이 미소가 발을 디민다
홍대 앞 가던 길 버스 안에서
청각장애 아주머니가 온몸으로 찾아준 장갑 한 쪽을
돌아오는 길에 끝내 잃어버리고 말았다
우리 나이는 장갑 챙기느라 다른 걸 다 잊어버려ㅡ
혼자되어 돌아온 여동창 아이가
눈길에 던지던 말이 소박맞아 밤길로 내려앉는다
찬 길에 슬며시 잡아준 손이 쑥스러웠는지
늙은 아이는 끝내 그 한 마디뿐이었고
붉게 언 손이 차라리 덜 쓰리던 기억
끝내 지키지 못한 어느 택(宅)의 한쪽이라도 되는 듯
되돌아보고, 뒤돌아보고
없는 걸 알면서도 길 위에 서서 한 번 더 보고
풀 죽어 늘어진 추운 겨울날
얼어붙어 바라보는 뿌연 빌딩 숲
꽃이 지는 이유만으로 붉어지는 낯빛만으로
겁쟁이라 해서 미안하다 산모퉁이 바위 뒤
눈꽃은 녹고 눈꽃은 흐르고 이 수줍음 다하기까지
얼마나 먼 길을 달려왔을 것인데
얼마나 길 위에서 제 언 손 보듬고 눈물 보따리 그러안고
소리 없이 녹으며 서 있었을 텐데

박철 | 서울 출생. 단국대 국문과 졸업. 1987년 『창비』 등단. 시집 『김포행 막차』 『밤거리의 갑과 을』 『새의 전부』 『너무 멀리 걸어왔다』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험준한 사랑』 『사랑을 쓰다』 『불을 지펴야겠다』 『작은 산』 등이 있음. 〈천상병시상〉〈백석문학상〉 수상.'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년 1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