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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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인한 
스벵갈리(Svengali)의 거울





  겹겹 두려움을 껴입은 어둠 속 너는 무엇을 보느냐.
  거부할 수 없는 나의 눈짓에도 소스라쳐
  파도에 휩쓸리는 해파리처럼 너의 가녀린 사지는 떨고 있다.

  지난봄 어느 날
  유원지에서 빠져나간 샛길 끝자락 밀폐된 작은 승용차 안에서
  사흘 만에 비밀요원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처자식을 남겨둔 채 번개탄을 피우고 끝까지 비밀을 가져간
  사내의 신의에 보상이 내려지리라.​

  만약에 내게도 그런 선택이 불가피하다면
  나는 백합꽃 한가득 차에 싣고 그 속에서 한 오백 년
  잠들어도 좋으리.
  치사량의 백합 향기 그 황홀에 묻혀.

  죽은 네 어머니 목소릴 갖고 왔다. 들어볼래?
  너는 거울 앞에 서 보아라.
  거울 속 수은의 길을 꿈꾸는 듯 걸어가 보아라.
  한번 이 거울 속에 들기만 하면
  뒤돌아보면 재가 되는 세상이 나올 것이다. ​내가 꺼내줄 때까지​

  내 귓속에서 꾸물꾸물 기어 나오는 검은 구더기들
  목구멍을 열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개구리들.
  개구리 한 마리가 어깨에 올라 문득 슬픈 목소리로 말한다.
  흔들리는 붉은 연기 속 이 개구리가 네 어머니인 것을. ​

  지금 내가 갇힌 사각의 벽 속엔 거울이 없지만
  내 마음 속 굽이도는 나선의 층계를 내려가면
  정면에 면경이 걸렸고, 거기 젊은 아버지의 얼굴이 들어 있다.
  장터에서 유리전구를 와삭바삭 깨물어 먹던 아버지
  우리 아버지의 거역할 수 없는 목소리를 너는 들을 것이다. ​

  일곱 번 몸을 바꾼 스벵갈리의 목소리.
  이리 오라, 내 사랑이여.
  간절함만을 안은 채 무서워 말고 내게로 오라.

  연가시 유충이 귀뚜라미 머릿속에 들어앉아
  그리운 물 냄새를 맡는 것처럼.
  죽음 앞둔 코끼리가 머리 들어 바라보는 킬리만자로의 달처럼.

 

 

 

 

 

 

 

 

 

 

 

 

 

 

 

신작시_강인한.jpeg

강인한 |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입술』 『강변북로』 외 9권과, 시선집 『신들의 놀이터』 등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