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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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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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식은 눈[雪]

 

 

 

 

늦은 점심을 위해

밥 한 덩이 솥에 깔아 불을 올린다

밥알이 탁탁 소리를 낼 때

물 한 그릇 붓고 기다린다

 

만리산 건너편 능선에

흐릿하고 묵직한 기운이 밀려온다

저 묵언의 검은 입속에는

수만 마리 은어 떼가

눈송이를 산란하고 있다

 

이파리 모두 떨어진 사과나무들

일렬로 늘어선 과수원

길을 따라 휘어진 길이

철조망 너머 사라진다

 

첫 눈송이 헤엄쳐 온다

수백 수천 흩날리는 과수원

꿈틀거리며 출렁이는

희고 자명한 시작 그러나

추억은 이내 얼어붙는다

 

식어버린 무쇠 솥에서

불은 밥알 둥둥 떠오른다

 

겨울 바다 한 장 달려와

첩첩한 능파(陵波)에 드러눕는다

그 한 자락을 베어

눈(目)을 덮는다

 

 

 

 

 

 

 

 

 

 

갈골 과원(果園)

 

 

 

 

늙은 사과나무는 생각한다

 

철조망 쳐진 이 비탈 과원

나는 어린 묘목으로 와

일생을 살았다

 

첫 꽃 피우던 봄을 기억한다

그때 내 몸이 키워낸 순정한 사과는

어린 손녀의 손에 따졌다

옥수수 알갱이 같던 입속에

시고 단 과즙으로 스미며 나는

아이를 소녀로 키워냈다

 

내 몸의 가지들은

사과를 따기 좋게 밑을 향해 잘려졌다

잘린 몸통을 굵고 튼튼하게 키우며

나는 해마다 많은 사과를 붉게 달았다

 

구불구불한 몸은 이제

함께 늙어온 주인이 새처럼 앉아도 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일로써 농부를 이롭게 했다

 

얼음물 먹은 비 뿌리며

11월이 지나가고 있다

거대한 붕새가 날개 펴듯

검은 구름은 한 계절의 시간을 덮는다

 

농부의 굴뚝엔 장작 타는 연기 피어오르고

나는 땅 위 일을 잊는다

뿌리에 목숨을 모아

깊은 숨으로 돌아간다

 

 

 

 

 

 

 

 

 

해바라기

 

 

 

 

앞마당에 해바라기가 있다

봄에 씨를 얻어 꽃이나 보자 심은 것

외줄 대궁으로 비바람 견디며

노란 꽃 피우고

검은 접시 혹은 부푼 보리빵 같은

얼굴로 발밑을 보고 있다

말라비틀어진 잎들은

찬바람 불면 파르르 몸을 떤다

내겐 그것이 마치

입에 건초를 물고

겨울이 오는 초원을 향해

갈기를 한번 흔드는 야생마처럼

쓸쓸하고 강인해보였다

식물의 목숨에 잠복해 있는

동물의 역동성을 발견하는

기이하고 놀라운 순간

낫을 들어 저 목을 쳐

몇 됫박의 씨를 얻고자 한

생각을 버리기로 한다

스스로 나고 소멸해가는

해바라기의 시간을 지켜보는 것으로

한 해의 이득을 삼기로 한다

하나의 열망을 향하여

전 생을 기여하고 타버린 얼굴

바람은 눈[雪]의 사막으로 달려가고 있다

마른 잎으로 갈기를 만들어

시간을 전송하는 외줄 대궁

순종하던 육신을 지팡이로 만들어

역풍으로 정신을 끌고 간다

나는 거부하기 위하여 열망했다

 

 

 

 

 

 

 


자선시


 

 

 

라벨의 볼레로를 듣는다

 

 

 

 

미명 아침

언 마당에 어치가 날아와

빨랫줄에 앉는다

 

손가락 푸는 피아니스트처럼

깃털 속을 문지르며

부리를 다듬는다

 

외줄 흔들던 어치

거꾸로 몸을 던진다

 

빨랫줄에 걸린 옥수수 세 자루

어치 부리가 마른 건반을 두드린다

 

찬 외줄 음계에

미명이 흔들리고

언 땅에 깔린 눈 알갱이

그림자들 깨어난다

 

조금씩 세게 빠르게

어치 부리는

침묵의 건반을 난타한다

 

이윽고 오선지 빠져나온 음표 하나

검은 굴속을 거슬러 올라간다

시린 목숨을 연주하는 외줄 음계

 

박명(薄明) 속으로 확장하며 폭발하는 리듬

거꾸로 매달린 어치 심장 울린다

 

 

 

 

 

 

 

 

무색[無色]

 

 

 

 

가령, 색(色)이 없다는 말은 그 안에 모든 색이 녹아들어

아무것도 제 색을 낼 수 없다는 말

 

나는 이런 것을 보았다

 

가뭇없이 문드러지는 꽃잎 위에 배롱나무는

자꾸만 새 꽃잎 떨구어 붉은 이불 덮었다

 

또, 어떤 어미 거위는 부화일이 한참 지난

곯아버린 알에서 제 뱃바닥의 체온을 거두지 않고

 

소나무 껍질 갉아먹던 염소가

검은 핏덩이 눈밭에 쏟아놓고

끝내 곁에서 어둠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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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주 | 경기도 여주 출생. 2005년 《내일을여는작가》로 등단.

시집으로 『인디언 女子』,

산문집으로 『나는 숲 속의 게으름뱅이』

『고고춤이나 춥시다』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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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란의 한철을 보내고

 

 

 

우리는 그때 광란의 한철을 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 깊은 치악산의 금대리 골짜기에서. 어찌 잊겠는가? 발가벗은 채로 사나흘을 보내도 사람 하나 만날 수 없는 곳. 산골 마가리에서 술을 먹기 시작하면 며칠을 퍼마시고, 계곡에서 몸을 풀면 온갖 적막으로 소름이 돋던 시절이었다. 그해 가을날 정용주 시인의 산중 결혼식은 영원히 잊지 못할 한 장면이리라. 가을 햇살 아래 계곡물을 네 번이나 건너 도착한 결혼식장(그가 살던 농막), 이윤학 시인은 전날 도착해 벌써 술에 취해 있었고 정병근 형, 함민복 형, 고영 시인이 산길을 올라오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동행한 박완호 시인과 터벅터벅 올라가던 산길. 가을날 오후였다. 신부 손에는 온갖 들꽃들이 잘 갈무리되어 들려 있었다. 떡에서는 김이 피어올랐다. 잘 익은 머리 고기에 막걸리를 마시면서 농담과 진담과 덕담과 악담이 오갔다. 돌이켜보니 아름답고도 쓸쓸한 시간들이었다. 치악산을 떠나 다시 먼 봉화로 그는 떠났다.

 

사실 이번 작품들은 봉화로 간 후에 처음 보는 시편들이다. 공간의 변이는 작가들에게 심각한 의식의 변화를 수반케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작가 자신의 심리를 공간에 의탁했을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공간의 변이는 삶의 관성 혹은 구심력으로부터 작가를 떼어놓는다. 다른 말로 하자면 새로운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그가 치악산 자락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잘 알고 있다. 자신에게 부과된 삶의 기원을 송두리째 부정하며 찾아 들어온 치악산 자락에서 그는 혼자 글을 썼고 살아냈다. 십여 년을 수도승처럼 더러 광인처럼 살던 공간으로부터의 이탈이 그의 시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자못 궁금했다. 어쩌면 이런 시각으로 그의 시를 들여다보는 일은 잔인한 일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지금 막 머릿속을 지나간다. 세 편의 시를 통해 그의 의식 전체를 살피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의식의 단초만 확인할 뿐이다.

 

 

늙은 사과나무는 생각한다

 

철조망 쳐진 이 비탈 과원

나는 어린 묘목으로 와

일생을 살았다

 

첫 꽃 피우던 봄을 기억한다

그때 내 몸이 키워낸 순정한 사과는

어린 손녀의 손에 따졌다

옥수수 알갱이 같던 입속에

시고 단 과즙으로 스미며 나는

아이를 소녀로 키워냈다

 

내 몸의 가지들은

사과를 따기 좋게 밑을 향해 잘려졌다

잘린 몸통을 굵고 튼튼하게 키우며

나는 해마다 많은 사과를 붉게 달았다

 

구불구불한 몸은 이제

함께 늙어온 주인이 새처럼 앉아도 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일로써 농부를 이롭게 했다

 

얼음물 먹은 비 뿌리며

11월이 지나가고 있다

거대한 붕새가 날개 펴듯

검은 구름은 한 계절의 시간을 덮는다

 

농부의 굴뚝엔 장작 타는 연기 피어오르고

나는 땅 위 일을 잊는다

뿌리에 목숨을 모아

깊은 숨으로 돌아간다

―「갈골 과원(果園)」 전문

 

 

 

 

사 과나무의 일생을 그리고 있는 이 시에서 그의 일생을 읽는 것이 어쩌면 부질없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존재 방식에 관한 그의 인식은 살필 수 있다. 어린아이를 소녀로 키워내고 함께 늙어온 주인을 자신의 등걸에 앉히는 장면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전형이다. “나는 나의 일로써 농부를 이롭게 했다”는 구절은 이타적인 동시에 자족적인 실존으로서의 사과나무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의 진수는 뒷부분에 있다. “검은 구름은 한 계절의 시간을 덮는다”는 구절은 지금 그의 현 상태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땅 위 일을 잊는다”는 고백은 보다 본질적인 내면의 고백에 해당한다. 땅 위는 나무뿌리의 입장에서 보자면 꿈이 현현하는 장소이다. 어둠 속에서 한 계절을 침잠하고자 하는 그의 자세는 조금은 어둡다. 그러나 깊다. “뿌리에 목숨을 모아/깊은 숨으로 돌아간다”는 구절은 그의 치악산 초기 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아마 혹한의 한철을 보내고 있으리라. 가만가만 숨을 조절하면서 거대한 뿌리로 자신의 생명을 전하고 있을 터이다. 봉화로 떠난 한 사과나무에게 때늦은 인사를 전한다. 그곳은 여전히 춥지요.

 

견인주의자로서 그의 모습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에게 시간의 개념은 현실과 환상 사이에 존재한다.

 

 

만리산 건너편 능선에

흐릿하고 묵직한 기운이 밀려온다

저 묵언의 검은 입속에는

수만 마리 은어떼가

눈송이를 산란하고 있다

―「식은 눈[雪]」 부분

 

 

 

 

밀려오는 눈발을 그는 “저 묵언의 검은 입속에는/수만 마리 은어떼”라고 명명하고 있다. “묵언의 검은 입속”은 앞의 시 「갈골 과원(果園)」의 “검은 구름”의 그것과 일치하는 의미망을 가진다. ‘묵언의 검은 입속’이나 ‘검은 구름’ 모두 깊은 어둠으로 채색되어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그는 ‘검다’라는 색으로 치환하여 인식하고 있다. 검은 시간 속에서 그는 “깊은 숨으로” 돌아가고 “수만 마리 은어떼가 눈송이를 산란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어쩌면 그는 이 지상에는 없는 것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깊은 땅속으로의 침잠이나 환상적인 눈송이와의 조우는 침잠의 시간 혹은 자신만의 환상 속에서 만나는 그의 내면 풍경과 거의 일치한다. 아마 광인과 같은 그의 또 다른 내면을 제거하면 그의 모습은 견인주의자 바로 그것일 터이다. 침잠과 견인주의는 잘 어울린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보다 복잡한 의미망을 지닌다.

 

 

 

 

하나의 열망을 향하여

전 생을 기여하고 타버린 얼굴

바람은 눈[雪]의 사막으로 달려가고 있다

마른 잎으로 갈기를 만들어

시간을 전송하는 외줄 대궁

순종하던 육신을 지팡이로 만들어

역풍으로 정신을 끌고 간다

나는 거부하기 위하여 열망했다

―「해바라기」 부분

 

 

 

봄부터 씨를 심고 키워온 해바라기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서 자신의 내면적 욕망을 확인할 수 있다. 시에서 소멸에 대한 치열한 인식은 사라지는 육체성을 정신으로 치환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적 욕망을 한껏 부풀리고 있다. 해를 바라보고자 하는 하나의 열망으로 인하여 타버린 해바라기의 얼굴은 시인 자신의 초상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육신과 정신의 관계가 순종과 역풍이라는 유비적 추론으로 전환하는 지점에 그의 시가 놓여 있다. 이 지점에서 그의 문학이 어쩌면 ‘역풍의 정신’을 구현하고자 몸부림친 것은 아닌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시의 마지막 행에서는 ‘역풍의 정신’을 실현하는 시인의 육성을 듣게 된다. 그의 시에서 ‘거부’와 ‘열망’의 역설이 깊을수록 낭자한 상처를 목격하게 된다. 그의 시와 삶 곳곳에 난 상처들은 바로 이 역설의 칼날이 긋고 간 흔적들이다. 한 줄 서간으로 이 글을 마친다.

 

“여전히 형이 칼을 베고 누워 잠을 잘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칩니다. 고단한 삶이겠거니 생각도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운명이라면 한 줄기 연민도 덧없는 일일 것입니다. 늦은 인사를 다시 한 번 전합니다. 이 여름 무엇을 열망합니까? 하여 무엇을 거부할 것입니까? 계곡에 불던 역풍을 맞으며 술잔을 들던 어떤 날이 있었지요. 맞습니다. 형의 시처럼 ‘추억은 이내 얼어 붙’습니다. 계곡에 물이 불어 오가도 못하던 어느 날 마가리에 피어오르던 안개도 모두 얼어붙었습니다. 우리는 ‘끝내 곁에서 어둠으로 물들어’(「無色」에서) 갈 것입니다. 아아 이것이 우리의 열망입니까?”

 

 

 

 

글 · 우대식 |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 『단검』 『설산 국경』, 산문집 『죽은 시인들의 사회』 『시에 죽고 시에 살다』 등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