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박완호 | ||
|---|---|---|---|


신작시
진천(鎭川)
커피숍 아르바이트 첫날
흰 와이셔츠가 없어서
친구 아버지 걸 얻어 입는 일.
스물한 살,
처음 입어본 와이셔츠는
교회 장로였던
친구 아버지의 마음씨처럼
하얗게도 늙었었지.
가난은 또,
전역한 다음 날
애인 만나러 가는 길
입을 게 없어서
할아버지 걸 빌려 입는 일.
서너 겹으로 접힌 허리춤을 가리려
여든 살 노인네의
흰 남방을 겉으로 내놓는 것.
웃는 애인의 눈에서 찔끔,
물기가 새어나게 하는
나도 덩달아 질끈,
눈을 감아버리고 마는.
거미
벌레를 삼킬 때면 거미는
성대를 집중적으로 씹어대는 게지.
입을 한껏 벌리고
하찮은 살덩이 대신
성대의 잔주름 속에 깃들어 있을
한낮의 공기를 흔들어대던 절정의 코러스를
뱃속에다 쌓아두려는 게지.
허공이 흔들릴 때마다
바람의 손가락이 튕겨내는
눈부신 소리들,
타고난 음악 수집가인 거미는
벌레들이 죽어가면서 내지른
노래의 끝마디를
기어이 연주하고 싶었던 게지.
살구나무에게 듣다
살구나무에 켜놓은 오 촉짜리 전등에
조금씩 빗방울이 듣기 시작합니다.
듣는다는 말은 얼마나 켕기던가요.
노란 등에 듣는 빗물은 노랗게,
파란 등에 듣는 빗물은 파랗게,
살구나무 가지를 건드리고 있을 때
色色이 켕기는 맘을 달래가며
살구나무 아래를 서성이는
내 귓가에 내리던 발자국 소리.
당신이었나요? 그날,
얼마나 먼 길을 돌아왔으면
퉁퉁 부은 발목을
살구나무 아래 묻던.
자선시
목련여인숙
환한 봄밤이었다 막차를 놓치고 찾아든 여인숙, 판자대기꽃무늬벽지로 엉성하게 나뉜 옆방과
천장에 난 조그만 구멍으로 반반씩 나눠가진 형광등 불빛이 이쪽저쪽을 오락가락할 때, 나는
김수영을 읽거나 만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했던 백석을 꿈꾸며 되지도 않는 시를 끄적거리다가
갑자기 불이 꺼지고 시팔, 속으로 투덜대며 원고지를 접고는 이내 곯아떨어졌을 텐데, 잠결에 들려온
옆방 여자가 내는 소리가 달밤의 목련꽃처럼 피어나는 걸 숨죽여 듣다가 그만 붉게 달아오른 꽃잎 하나를 흘리고야 말았지
아침 수돗가에서 마주친 여자는 낯붉히며 세숫대야를 내 쪽으로 슬며시 밀어주는데 나는 괜히
간밤 그녀가 흘려보낸 소리들이 내 방에 와선 탱탱하게 부풀었던 걸 들키기라도 한 듯 덩달아 붉어져서는
내 쪽에 있던 비누를 가만히 그녀 쪽으로 놓아주었다
염소 울음이 세상을 흔든다
새끼 염소가 죽었다.
난 지 사흘 만에 나선 첫 산책길
아카시아 향기에 취해 길을 잃었을까
누구의 귀에도 가닿지 못한
울음 한 조각 물고
똥통에 빠져 죽은
염소의 검은 등을 밟고
수의라도 덮어주려는 듯
구더기들 하얗게 몰려든다.
목덜미 털이 벗겨지도록
종일 새끼를 찾던 어미는
모르는 척 허겁지겁 밥그릇을 바닥까지 핥는다.
물기 젖은 염소의 눈길 가닿는
사발 속 허공
어미 염소의 허기가
세상의 저녁을 흔든다.
묵선(墨線)
열여섯 무렵, 목수였던 아버지는 일을 마치고 와서도 금세 먼 길을 나서기라도 할 것처럼 연장주머니를 꽁꽁 묶어 부엌문 옆에 세워두곤 했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미처 동여매지 못한 주머니가 문바람에 엎어져 연장들이 내장처럼 바닥에 쏟아졌는데, 급하게 그것들을 주워 담다 그만 손바닥에 먹줄로 줄 하나를 긋고 말았습니다
그 줄에 발 묶인 아버지는 내 나이 서른둘이 지나도록 집을 나서지 못하다, 그해 여름, 편지 한 장만을 남겨두고는 때 이른 낙엽이 되어 백곡 산자락 깊숙이 스며들었습니다
비누칠에도 지워지지 않던 그 선이 여태 손바닥에 새겨져 있다가 그 손으로 몸을 만질 때마다 내 몸 여기저기에 묵선(墨線)들을 그어 온 것일까, 해가 바뀔 때마다 내 몸엔 줄이 자꾸 늘어갑니다
아이와 함께 몸을 씻다 문득 쳐다본 거울 속에서는 한 손에 먹줄을 든 아버지가 아이 몰래 내 이마에 황홀을 새겨 넣고 있습니다

박완호 | 199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 『내 안의 흔들림』 『염소의 허기가 세상을 흔든다』 『아내의 문신』 『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 『너무 많은 당신』 등이 있음.

진동의 역동성과 타자를 발견하는 방식
나는 시를 쓰면서 문단의 선후배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그중에서도 박완호 시인은 나에게 인간적인 따스함과 배려를 알게 해준 귀중한 친구이다. 나이도 같아서 더 공감대가 많기도 하고, 동인 활동을 함께하는 사이라서 박완호 시인을 가까운 곳에서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박완호 시인에 대해 한마디로 말을 한다면, 그는 시에 대한 열정이 강하고, 늘 기분 좋은 미소로 사람들을 대하고, 부지런하고 영혼이 맑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박완호 시인이 거느리는 미덕의 목록들을 보더라도 그는 얼마나 시와 삶을 잘 꾸려왔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박완호 시인을 좀 더 깊이 알게 된 것은 박 시인의 개인사를 알게 되면서였다. 내가 강의하는 시 창작 수업시간에 <시인과의 대화>란 코너를 만들어 박 시인을 초대한 자리에서였다. 바쁜 시간 중에도 박 시인이 흔쾌하게 수락해 준 덕에 나는 학생들과 함께 그의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강의 중 박완호 시인이 자신의 시를 학생들에게 읽어주면서 시에 얽힌 개인사를 풀어 놓은 적이 있었다. 자신의 비밀스러운 기억을 남에게 이야기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한 법인데, 박완호 시인은 시를 쓰려는 문학청년들을 위해, 시와 함께 자신의 아픈 상흔들을 용감하게 이야기해 주었었다. 박 시인이 어릴 적에 사고로 뜻하지 않게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와 무뚝뚝했던 아버지 이야기. 그리고 어린 나이에 동생을 돌보는 가장이 되어야만 했던 유년 시절의 고백이었다. 나는 박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깜짝 놀랐었다. 왜냐하면 평소에 박완호 시인에게서 그러한 상처의 흔적을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박완호 시인은 늘 그 선량한 눈과 마음으로 주변의 사람들을 껴안아 주는 시인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공식적인 지면에서 박완호 시인의 아픈 가족사를 굳이 운운하는 이유는, 이번 그의 대표작과 신작시에 시인의 아픈 가족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고통과 마주했을 때, 두 가지의 태도를 보이게 된다. 고통을 극복하든가 아니면 고통 앞에서 주저앉아 포기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박완호 시인의 경우는 전자일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타자의 고통을 수용하고 공감하려는 타자에 대한 배려와 연민의 태도가 전면에 드러나 있다. 그의 시에서 타자를 발견하는 방식은 타자와의 교감의 자리에서 진동이나 파동의 울림과 형식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진동이나 파동은 곧 역동적인 운동성으로 발현되어 주체를 해체하여 새로운 주체로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커피숍 아르바이트 첫날
흰 와이셔츠가 없어서
친구 아버지 걸 얻어 입는 일.
스물한 살,
처음 입어본 와이셔츠는
교회 장로였던
친구 아버지의 마음씨처럼
하얗게도 늙었었지.
가난은 또,
전역한 다음 날
애인 만나러 가는 길
입을 게 없어서
할아버지 걸 빌려 입는 일.
서너 겹으로 접힌 허리춤을 가리려
여든 살 노인네의
흰 남방을 겉으로 내놓는 것.
웃는 애인의 눈에서 찔끔,
물기가 새어나게 하는
나도 덩달아 질끈,
눈을 감아버리고 마는.
―「진천(鎭川)」 전문
시의 내용상 ‘진천(鎭川)’은 시적 주체가 청년기 시절을 보냈던 지명임을 알 수 있다. ‘진천’은 시적 주체의 삶이 가난이라는 거대한 벽과 마주 서야 했던 곳이다.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 동네 친구 아버지의 옷을 빌려 입고 가야만 하는 상황이다. 또한 군대 전역 후 애인과의 첫 데이트에서도 마땅한 옷이 없어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의 옷을 입고 나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서너 겹으로 접힌 허리춤’을 감추며 할아버지의 옷을 입고 나가야만 했던 가난 속에서 ‘스물한 살’의 청년의 마음은 ‘하얗게도 늙’어 버렸을 법도 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시적 주체의 연인은 눈과 마음이 깊고 곡진한 사람이라, 전역 후 처음 만나는 시적 주체의 아픔을 함께 위로해주고 있다. 이와 같이 ‘진천’은 시적 주체에게 가난의 아픔으로 얼룩진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적 주체의 가난함의 서사가 기록된 ‘진천’이 음울하거나 절망적이고 비극성으로만 채색된 곳은 아니다. 시적 주체가 ‘커피숍 아르바이트’나 ‘애인’과의 데이트 때 입고 나간 ‘흰 와이셔츠’와 ‘남방’은 친구와 이웃과 가족의 응원과 배려의 온기가 묻어 있다. 이때 와이셔츠와 남방은 결핍을 드러내는 대상이 아닌, 타자의 온기를 온몸으로 감각하고 소통하는 관계의 장으로 확장되고 있다. 또한 ‘애인’의 ‘찔끔’ 흘리는 눈물과,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시적 주체의 행위 역시 ‘눈’이라는 감각기관을 통해 소통의 연대감을 형성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시적 주체의 몸을 통해 감각되는 타자와의 소통은 곧 촉각을 통한 만남이며, 촉각을 통해 주체와 타자의 경계가 무너져 주체가 해체되고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목도할 수 있다.
이러한 몸을 통한 타자와의 소통 행위와 새로운 주체의 탄생은 「목련 여인숙」과 「묵선(墨線)」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환한 봄밤이었다 막차를 놓치고 찾아든 여인숙, 판자대기꽃무늬벽지로 엉성하게 나뉜 옆방과
천장에 난 조그만 구멍으로 반반씩 나눠가진 형광등 불빛이 이쪽저쪽을 오락가락할 때, 나는
김수영을 읽거나 만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했던 백석을 꿈꾸며 되지도 않는 시를 끄적거리다가
갑자기 불이 꺼지고 시팔, 속으로 투덜대며 원고지를 접고는 이내 곯아떨어졌을 텐데, 잠결에 들려온
옆방 여자가 내는 소리가 달밤의 목련꽃처럼 피어나는 걸 숨죽여 듣다가 그만 붉게 달아오른 꽃잎 하나를 흘리고야 말았지
아침 수돗가에서 마주친 여자는 낯붉히며 세숫대야를 내 쪽으로 슬며시 밀어주는데 나는 괜히
간밤 그녀가 흘려보낸 소리들이 내 방에 와선 탱탱하게 부풀었던 걸 들키기라도 한 듯 덩달아 붉어져서는
내 쪽에 있던 비누를 가만히 그녀 쪽으로 놓아주었다
―「목련 여인숙」 전문
「목련 여인숙」에서 시적 주체는 막차를 놓치고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기거하게 된다. 그런데 이 여인숙의 방 구조가 심상치 않다. 하나의 방을 꽃무늬 벽지가 발린 판자대기로 나누어 두 칸의 방으로 개조한 기묘한 곳이다. 오직 “천장에 난 조그만 구멍으로 반반씩 나눠가진 형광등 불빛”이 두 개의 방을 처연히 밝히고 있을 뿐이다. 환한 봄밤 시적 주체가 쉽게 잠들지 못하고 시를 긁적거리고 있을 때, 맞은편 방에서 불을 꺼버린다. 이내 두 개의 방은 암흑천지가 되어버린다. 갑자기 꺼져버린 불빛에 시적 주체는 황망해하며 잠을 청하고 있다. 그런데 잠결에 얇은 벽의 건너편에 기거한 여자의 오묘한 소리를 접하게 된다. 긴 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후, 아침에 얼굴을 대한 젊은 두 남녀는 간밤의 어색함을 감추기라도 하듯, 세숫대야와 비누를 서로에게 밀어주고 있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시에서, 시적 주체와 옆방 여자는 형광등과 소리라는 매개를 통해 서로의 욕망을 이미 감지하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여인숙의 꽃무늬 판자대기 벽에도 불구하고, 나와 옆방 여자는 하나의 형광등 불빛에 의해 서로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판때기로 방이 나뉘어 있지만 봄밤 젊은 두 청춘의 욕망의 열기는 스스로 자발성을 드러내어 운동성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형광등’이 지니는 상징성과 ‘비누’가 지니는 존재의 가변성을 통해 나와 옆방 여자의 경계가 무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박완호의 시에서는 타자와의 소통이 주체를 해체하여 주체를 재구성하고 있다. 이때 타자와 주체의 소통의 방식은 ‘소리’로 전해지는 청각적 전율이거나, 파동 혹은 움직임을 통한 촉각으로 드러나고 있다.
열여섯 무렵, 목수였던 아버지는 일을 마치고 와서도 금세 먼 길을 나서기라도 할 것처럼 연장주머니를 꽁꽁 묶어 부엌문 옆에 세워두곤 했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미처 동여매지 못한 주머니가 문바람에 엎어져 연장들이 내장처럼 바닥에 쏟아졌는데, 급하게 그것들을 주워 담다 그만 손바닥에 먹줄로 줄 하나를 긋고 말았습니다
그 줄에 발 묶인 아버지는 내 나이 서른둘이 지나도록 집을 나서지 못하다, 그해 여름, 편지 한 장만을 남겨두고는 때 이른 낙엽이 되어 백곡 산자락 깊숙이 스며들었습니다
비누칠에도 지워지지 않던 그 선이 여태 손바닥에 새겨져 있다가 그 손으로 몸을 만질 때마다 내 몸 여기저기에 묵선(墨線)들을 그어 온 것일까, 해가 바뀔 때마다 내 몸엔 줄이 자꾸 늘어갑니다
아이와 함께 몸을 씻다 문득 쳐다본 거울 속에서는 한 손에 먹줄을 든 아버지가 아이 몰래 내 이마에 황홀을 새겨 넣고 있습니다
―「묵선(墨線)」 전문
「묵선(墨線)」이란 작품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아버지-나-아들’ 三代의 연대감을 형성하는 것은 아버지의 연장통에서 연유하는 ‘묵선(墨線)’이다. ‘열여섯 무렵, 목수였던 아버지’가 연장통을 정리하다 손에 묻은 묵선은 나를 어루만지던 아버지의 손에 의해 나에게도 그어진다. 이 묵선이 나의 몸에서 계속 자라는 이유는, 일찍 고인이 되신 아버지에 관한 나의 그리움과 슬픔이기에 나의 몸을 울리는 진동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아이와 함께 몸을 씻다가 문득 아버지가 아이 몰래 내 이마에 다시 그 황홀한 선을 새기는 것을 보고 있다.
이 시에서 목욕탕의 광경에서, 아버지가 내 이마에 새기는 선과 내가 아이와 함께 몸을 씻는다는 것은, 아버지가 나에게 해주었듯 나 또한 손으로 아이의 몸을 씻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나의 행위는 아이의 몸에도 아버지의 손에 새겨졌던 묵선이 그어져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때 아버지와 나를 통해 아이에게 전해지는 묵선의 진동은 아버지와 나와 아이의 경계에 균열을 가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몸에 문신처럼 새겨진 묵선은 멈춰 있거나 고정된 속성의 선이 아니라 역동성을 지닌 떨림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러한 떨림은 변주되고 확장되어 타자의 목소리를 조명하는 운동성으로 확장되고 있다.
새끼 염소가 죽었다.
난 지 사흘 만에 나선 첫 산책길
아카시아 향기에 취해 길을 잃었을까
누구의 귀에도 가닿지 못한
울음 한 조각 물고
똥통에 빠져 죽은
염소의 검은 등을 밟고
수의라도 덮어주려는 듯
구더기들 하얗게 몰려든다.
목덜미 털이 벗겨지도록
종일 새끼를 찾던 어미는
모르는 척 허겁지겁 밥그릇을 바닥까지 핥는다.
물기 젖은 염소의 눈길 가닿는
사발 속 허공
어미 염소의 허기가
세상의 저녁을 흔든다.
―「염소 울음이 세상을 흔든다」 전문
「염소 울음이 세상을 흔든다」는 태어난 지 사흘 된 어린 염소의 죽음과 이를 슬퍼하는 어미 염소의 슬픔이 진중하게 드러나고 있는 작품이다. 이때 새끼 염소를 위로하는 방식과, 새끼 염소를 잃은 어미의 슬픔 역시 ‘흔들림’과 같은 진동과 파장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누구의 귀에도 가닿지 못한/울음 한 조각 물고/똥통에 빠져 죽은” 새끼 염소를 위무하는 것은 다름 아닌 ‘구더기’이다. 비천한 존재인 ‘구더기’들은 마치 “염소의 검은 등을 밟고/수의라도 덮어주려는 듯” “하얗게 몰려”들고 있다. 이러한 ‘구더기’들의 꿈틀거리는 모습은 살아 있는 몸이 죽은 몸을 위로하는 행위이며, 몸과 몸의 촉각적인 마주침은 이질적인 두 개의 몸이 합일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또한 새끼 염소를 잃은 어미 염소의 슬픔이 ‘허기’로 드러나고 있다. 이때 ‘물기 젖은’ 어미 염소의 눈길이 가닿는 사발 속 허공과 ‘허기’는 세상의 저녁을 ‘흔드’는 진동과 파장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진동과 파장은 세계의 은폐된 진실을 들추어내는 운동성으로 발현되어 주체가 대상을 통제하고 대상을 응고화시키는 초월적 주체가 아닌 대상과 함께 호흡하고 타자의 고통을 공유하고 수용하는 연민의 시학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시인의 시적 세계관은 시 「거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벌레를 삼킬 때면 거미는
성대를 집중적으로 씹어대는 게지.
입을 한껏 벌리고
하찮은 살덩이 대신
성대의 잔주름 속에 깃들어 있을
한낮의 공기를 흔들어대던 절정의 코러스를
뱃속에다 쌓아두려는 게지.
허공이 흔들릴 때마다
바람의 손가락이 튕겨내는
눈부신 소리들,
타고난 음악 수집가인 거미는
벌레들이 죽어가면서 내지른
노래의 끝마디를
기어이 연주하고 싶었던 게지.
―「거미」 전문
시 「거미」에서도 ‘거미’가 ‘벌레’를 잡아먹을 때, 집중하는 것은 바로 ‘성대’이다. 왜냐하면 “성대의 잔주름 속에 깃들어 있을/한낮의 공기를 흔들어대던 절정의 코러스”를 취하기 위해서이다. 벌레들의 생명은 곧 ‘한낮의 공기’를 ‘흔들어대던’ 소리와 진동으로 자신의 존재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벌레들이 마지막으로 내지른 소리를 통해 번져오는 ‘흔들림’과 파동은 곧 타자의 외침을 주체의 자리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특히 이 시에서는 의미적 국면 이외에도, 형식적으로 ‘∼는 게지’와 ‘∼던 게지’ 등 통사 구조의 반복을 통해 안정적인 리듬감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리듬감이 확보는 ‘벌레’가 지닌 울음에 방점을 찍어 타자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이를 강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박완호 시인의 시세계에서 ‘울음소리’로 드러나는 청각과 ‘흔들림’으로 발현되는 촉각은 비천한 타자의 지워진 목소리를 환기시키고 강조하고 있으며, 이러한 진동과 파장은 세계의 은폐된 부조리를 들추는 운동성으로 구현되고 있다. 이러한 진동과 파열음은 곧 주체와 타자의 경계를 지우는 방식이며, 그 진동은 곧 역동성으로 이미지화하여 주체의 자리에 균열을 가하여 주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역동성으로 전이되고 있다.
글 · 서안나 | 1990년 『문학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푸른 수첩을 찢다』 『플롯 속의 그녀들』 『립스틱 발달사』, 평론집 『현대시와 속도의 사유』, 연구서 『현대시의 상상력과 감각』, 동시집 『엄마는 외계인』이 있음. 〈서쪽〉 동인. 한양대, 추계예대 출강.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