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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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은상 

 

  멜랑꼴리아

 

 

 

  그 왕은 몽상가였다. 그의 유일한 일과는 궁전 높은 곳에 올라 별자리에 잠기는 일이었다.

  지구의 기울기에 앉아 바라보는 황도 십이궁, 왕은 자신의 천문학 위에 저녁의 왕궁을 세우는 중이었다.

  왕이 언제부터 별의 노래에 잠기는 몽상가가 되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벙어리를 결심한 후부터

  흉흉한 말들이 왕궁을 둘러싸고 싹을 틔웠다. 신하들은 삼삼오오 모여 선왕의 악행을 수군거렸고

  왕비는 잠든 왕의 코에 손가락을 대고 생명과 왕위를 염탐했다. 왕은 밤에만 깨어 있었으므로

  누구도 왕이 무엇을 먹고 배고픔을 견디는지 알지 못했다. 곧 낮의 세계는 왕의 나날에 악령을 깃들게 했다.

  기도와 주문 그리고 예언이 엉켜 왕궁을 흘러 다녔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전혀 모른다는 듯이

  어쩌면 자신의 일과는 무관하다는 듯이 왕은 매일 밤의 세계를 찾아가 몽상에 몰두했다.

  궁수자리에서 쏜 화살이 물병자리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왕은 말의 세계가 형언할 수 없는

  단단한 침묵을 완성했다. 왕은 황홀했다. 아무도 피 흘리지 않았으므로 자신에 대한 용서를

  가장 큰 전리품으로 얻었다. 칼의 형식이 필요하지 않은 저녁의 왕궁, 이제 왕에게는

  인체 중 혀가 가장 거추장스러운 부속이었다. 왕은 칼로 자신의 혀를 잘라내 몽상가의 문장(紋章)으로

  왕실 문 위에 걸었다. 혀를 본 사람들은 모두 경악했다. 혀가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겠다는 듯이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혀의 수다에서 누군가는 저주를, 누군가는 신탁을 엿들었다.

  혀에 대한 숭배와 배척이 엉켜 서로에게 피를 요구하자, 왕국의 몰락을 점치는 소문이 국경을 뛰어넘었다.

  그러나 적보다 무서운 적은 불행을 앞세운 상상력에 있었다. 왕궁을 잃은 병사들은 강도로 돌변했고

  백성들은 하나 둘 왕국을 등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횃불을 든 긴 이주행렬이 뱀의 긴 꼬리로

  왕에게 일렁였을 때, 왕은 자신의 내면 깊숙이 숨겨둔 낡은 하프를 꺼내 연주하기 시작했다.

  고요히 정적을 태우던 단 하나의 촛불, 스스로 울리지 않고서는 자신의 선율을 주장하지 못하는

  고열(高熱)이 있었다. 나는 아직, 그 왕국을 떠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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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상 | 200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