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 저자 | 장무령 | ||
|---|---|---|---|
무르만스크*에서 심다
베란다의 화분이 거실을 본다
마지막 꽃 떨어뜨릴 힘을
수맥에 끌어 모을 때
갑자기 쏟아진 폭우처럼
길거리 한복판
한 번의 통곡과
방사선 같은 햇빛 스며드는
아침마다 욕조의 물이 빠지지 않는
불에 타오르는 세포들이 손톱 끝까지 전이되는
집,
망부석처럼 딱딱해지는
떨어진 손톱을 주우면서 더듬어가는 골목 안
성인용품 가게의 분홍 네온사인을 지나
새벽까지 문을 열던 우동 집 파란 플라스틱 의자에
남아 있는 흔적을 본뜨다
굶은 들짐승들이 문 앞으로 몰려들었다
목을 파고든 이빨이 혈관을 타고 꿈속으로 흘렀다
순록의 머리를 쓰고
얼어붙은 눈뭉치가 정수리에
망치처럼 내리 꽂히는
시베리아 자작나무 숲을
달려,
해 뜨지 않는 무르만스크 푸른 극야(極夜)
도살장 소처럼 해체된 몸을 걸어놓는다
오로라 시반**이 떠올랐다
화분이 나를 심는다
*Murmansk: ‘지구의 가장자리’를 뜻하는 사미어(語) 무르만(murman)이 어원으로도 추측, 러시아 최북단의 도시.
**屍班: 사람이 죽은 후에 피부에 생기는 옅은 자주색의 반점

장무령 | 충남 홍성 출생. 1999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선사시대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다』, 저서 『한국 현대시의 경물과 객관성의 미학』 등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