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 저자 | 이화은 | ||
|---|---|---|---|
비밀의 방
선생님은 집을 그리라고 하는데
나는 늘 방을 그렸다
집 없는 방이 도화지에 가득했다
내 방이 필요했다
눈물을 보관할 방 울음을 숨길 방
누에고치의 밀폐된 방
까닭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부끄러웠다
길바닥에서 흘레붙는 개를 보듯,
내 눈물에서 정액 냄새가 났다
이불을 머리꼭대기까지 뒤집어쓰고
수음을 하듯 혼자 눈물을 흘렸다
창밖으로 봄이 지나가는데
내 사춘기는 젖은 빵처럼 이불 속에서
시름시름 흘러갔다
한 방 가득 식구들의 숨소리가
벌떼처럼 공중으로 날아다녔다
폭설이 내려 집이 완전히 지워지던 날
방만 남은 방 속에서 나는 붉은 눈물을 쏟았다
언니는 눈물을 몸이라고 했다

이화은 | 1991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이 시대의 이별법』 『나 없는 내 방에 전화를 건다』 『절정을 복사하다』 『미간』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