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민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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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대백과사전
괴수: 괴이하게 생긴 미지의 짐승.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짐승으로 키, 몸무게, 조상님, 본가, 친척, 천적, 울음소리 따위의 몇몇 글자들에 해부되고 박제되는 운명을 운 좋게 피해갔다. 하지만 그 때문에 괴수는 학계 종사자 및 동물원 조련사 등등 뭐든지 길들이려는 사람들의 질투를 산다. 질투가 입에서 입으로 부풀려지며, 괴수는 쓸데없이 거대한 몸짓으로 사람들을 해치는 요물로 오해 받는다. 반경 수천 킬로미터 나무 한 뿌리 없는 흉물 민둥섬으로 굳어버린 대왕오징어 크라켄이 그러하고, 사람 내장을 비비 꼬아 만든 현으로 바이올린을 켠다는 세기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가 그러하다. 유럽에서 수천 킬로미터 너머 지구 반대편까지, 수백 년 시공을 가로지르는 몸짓이 사람들 뇌리에 깊숙이 뿌리박히는 와중에도, 괴수는 모두에게 외면당하는 것이다.
괴짜: 훗날 괴수의 몸짓이 인류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판단될 때, 위인전에서 농담 반 아부 반으로 어린 괴수를 부르는 이름. 이때부터 괴수의 몸짓이며 행동거지는 하나하나 미화되기 시작한다. 달걀을 품은 에디슨의 엉덩이만 봐도 그러하다. 달걀만 한 크기로 아프리카 저 오지까지 환하게 밝히는 전구를 낳지 않았던가. 그러나 괴짜들을 흉내 낸다고 다 괴짜로 불리는 건 아니다. 어린 괴수만이 괴짜로 불릴 자격이 있다고, 위인전의 뒤 페이지들은 속삭인다. 만약 괴수가 되지 않은 채 괴짜가 되려다간, 당신의 비범함을 내비치는 대신 당신의 부모에게 엉덩이나 내비치며 맴매를 맞을 것이다!
괴발개발: 괴수의 비범함은 탐이 나는데, 자기 맘대로 움직여주질 않는 그것들을 길들여 보려고, 높으신 분들이 날림으로 급조한 괴수들의 둥지. 하지만 고양이 발, 개 발이나 들어갈까 괴발개발은 괴수들에겐 한없이 비좁기만 하다. 어떤 괴수는 괴발개발에 몸도 마음도 꽉 끼여서는, 괴발개발이 생겨난 틀대로 괴발개발하게 자라나는 경우가 많다. 괴발개발 들어선 신도시에서 자라나며 괴발개발 들어선 학원마다 뺑뺑이 돌고 괴발개발 실적 채우기 바쁜 모 대학 연구소며 모 기업에 기웃거리다 괴발개발 구조조정으로 잘려나간, 입시생 시절 모의고사 치를 때마다 괴수라고 불렸던 내 친구가 그러하다.
괴뢰: 괴발개발에 괴수들이 죽어나갈 때마다, 괴수를 죽인 범인으로 누명이 씌워지곤 하는 것들. 들끓는 여론을 언제나 한 큐에 잠재우곤 한다. 빨갱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한반도에 서식하는 괴뢰는 대개가 빨간색이다. 괴뢰는 괴수만큼이나 쓸데없이 거대한 몸짓으로 사람들을 해치는 요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핵미사일을 만든다고 생떼를 부려서 전 세계가 골머리를 앓는다.
괴작: 괴발개발에도 미처 들어가지 못하던 괴수들이 아무 관심도 받지 못하고 뿌직뿌직 싸질러댄 똥. 그 냄새가 하도 지독하여 사람들마다 귀를 틀어막고 코를 틀어막고 말을 틀어막지만, 어떤 괴작은 오랜 세월을 거쳐 발효되고 보석화되어, 그 말, 그 향취 하며, 오색찬란하게 비추어지는 진가가 대대손손 빛을 발하기도 한다.
괴도: 괴작도 남기지 못한 괴수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어둠 속을 걸어갈 때 불리는 이름. 그림자만 내비치며 보석을 훔치는 괴도의 솜씨에 감탄한 몇몇 사람들, 모든 괴도를 마치 의적인 양 여기저기 칭송하며 빛을 비춘다. 여기저기 드리우는 빛에 작아지는 괴도의 그림자는 보다 은밀하게 보다 침묵하며 보석을 훔칠 뿐이다.
괴담: 어떤 괴도는 정말로, 훔친 보석으로 빈자에게 선의를 베푼다. 자연히 가진 자들일수록, 괴수도 괴수의 그림자만 내비치는 괴도도 험담하고만 싶을 거다. 험담하는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며, 괴수들의 일대기는 뜬소문으로 허무해지고 헛소문으로 맹랑해지고 믿거나 말거나 심심풀이 땅콩이 되기 마련! 그러나 심심풀이 땅콩으로 오독오독 삼켜지면 어떤가? 오독이 되고 또 오독이 되고 괴담은 괴수 못잖게 괴스러운 모양새로 사람들의 말 속에 뿌리내린다.

김민우 | 2015년 『현대시』로 등단.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