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 저자 | 이규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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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아주 느리게
어느 것을 잊고 싶어?
언제까지나 잊고 싶지 않은 것
―지드―
반쯤 짓뭉개진 몸을 끌며
인도 한가운데까지 기어온 지렁이가
다시 돌아가기엔 멀고
나아가기도 아득한
바로 그곳에서
사라졌다
흐,
다행이라는 생각
누구나 보고 싶지 않은 건
보지 않을 수 없는 제 허무일 것이다
이유가 길면 우리는 더 비참해진다는 걸 알아
네가 사라졌던 그 여름 쪽을 향해
내가 안도했듯이
그렇다 해도 잊고 싶은 건 결국 잊히지 않는 것이므로
돌아갈 수도 없고 또
나아갈 수도 없는 저
벗은 햇볕 속을
느리게 아주 느리게 기어가고 있는, 지상의 춤같이

이규리 시인
이규리 |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등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