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 저자 | 박영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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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러지는 오리
오리가 허둥거리며 빙판을 걷는다
허둥대는 악몽은 읽을 수 없다
호수 가를 돌며 손뼉을 치는 사람들
접었다 펴는 오리 날개는 읽을 수 없다
물 위를 날 듯 걷는 오리는 읽을 수 없다
자맥질하는 오리는 읽을 수 없다
부리로 물고기 쪼는 오리는 읽을 수 없다
오리 목구멍을 미끄러지는 물고기는 읽을 수 없다
오리가 들어간 수면을 센다
스물 스물다섯 서른 호흡이 꽤 길다
수면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앞 문장에서 알 수 없다
오리를 삼켰다 음 파 하고 뱉는 수면
하루에도 수십 번 호수가 토하는 오리
수면이 토한 오리는 읽을 수 없다
어제 읽지 못한 오리는 오늘도 못 읽은 오리
오리 밖으로 미끄러진 오리가
오류에 풍덩
여태 읽은 오리는 모두 오리무중이다
오리는 오리를 더 미끄러져야 읽을 수 있다
빙판에서 계속 미끄러지는 악몽을 꾼다

박영기 시인
박영기 | 경남 하동 출생. 2007년 《시와사상》으로 등단. 시집 『딴전을 피우는 일곱 마리 민달팽이에게』가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