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 저자 | 김선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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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의 석양
햇빛이 스러지는 쪽을 향해 걸었다
석양에 얼굴을 묻고
얼굴이 지워질 때까지
검고 붉은 지평선은 둥글게 휘고
지금은 잠든 마음이 깨어나는 시간
빛나는 것을 떠올릴 때마다
어둠이 다가오는 시간
남은 저녁의 반을 너에게 내어줄게
없던 일도, 있던 일도 아니었으니
손을 뻗으면 움츠러드는 잎들
입을 대면 사라져버리는 입술
안에서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들
밖에서 안으로 흘러드는 것들
돌아보면,
뒤돌아보지 않기 위해
뒤돌아보는 내가 있다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는
숲이 있다
들판을 달려가는
네가 있다
너는 가볍게 어깨를 떨며
이제 그만이라고만 말했다
그건 끝이 없으니 시작도 없었던 말,
눈 속의 이끼처럼
푸르게 얼어붙은 말,
죽어가던 말
말은 묻는 것
물은 젖는 것
우리는 어두운 웅덩이에 발을 묻어두고
각자의 석양을 향해 걸어갔다
허물어진 어깨와
붉은 얼굴이 안 보일 때까지
슬플 일도, 기쁠 일도 없는 쪽으로
너머가 환하다

김선재 | 2006년 《실천문학》에 소설, 2007년 《현대문학》에 시 등단. 시집 『얼룩의 탄생』, 장편소설 『내이름은 술래』, 소설집 『그녀가 보인다』 등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