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강영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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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당신의 총구에서 장미가 피어나네
당신이 이름 붙인 장미를 위해 장미가 피어나네
줄기에 매달린 잎사귀만 보면
줄장민지 사철장민지 분별할 수 없네
담장을 버린 장미가 담장을 넘네
이름을 버린 장미가 경계를 넘네
이름을 버린 장미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별할 수 없네
당신도 한때 붉게 피는 순수를 사랑했잖아
이름 따위엔 관심 없는 국경선처럼
누구보다 장미를 사랑했잖아
아무리 외쳐도
당신은 장미를 모르는 얼굴
당신은 당신이 만든 장미만을 고집하네
내면의 어떤 장미가
두 손에 피를 묻히고 검은 복면을 두르게 했나
눈구멍을 파는 장미들
눈구멍이 파인 장미들
장미의 내부에서 전쟁이 시작되네
색깔이 다른 장미처럼
장미의 외부에선 붉은 꽃잎이 흩날리네
색깔이 같은 장미처럼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영락한 이름뿐’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
당신을 파괴하지도 구원하지도 않는데
가시가 피워 올린 신(神)의 이름이
피를 흘리네
모가지를 떨군 장미의 이름은
차마 말할 수 없네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중에서.

강영은 | 2000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녹색비단구렁이』 『최초의 그늘』 『풀등 바다의 등』 『마고의 항아리』 등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