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현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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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분명
식탁 위에 올려놓았던 귤이 사라졌기에
나는 그를 찾았다
얼마 세간이 없고
유채색을 들이지 않은
독거의 집 안
전등알같이 환한 구(球)는 어디로 갔을까
모든 게 그대로인데
그를 떠올리면 침샘이 돌고
아직 나는 기억하고 있는데
그를 가진 적 없거나
방 한구석에 썩어가거나
분명했던 그가 증발하기도 한다면
한 그루 귤나무도 자랄 것 같다
싱그러운 귤 한 마리
떼굴떼굴 굴러다닐 듯하다
나도 떠난 빈집엔
진동하는 귤 향기
빈자리가 가장 짙다
낙화유수(落花流水)
끝내 너와 나의 일은 인간의 달력으론 적을 수 없겠다
한때 꽃은 물위로 달아오른 몸 던지고, 물은 뜨거운 꽃그늘 품었으나
꽃잎 와르르 무너지는 벚나무 아래서 우린 떨어질 줄 몰랐고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영원처럼 앉아 가을 강가를 구경했으나
사랑은 사랑이지 못하고 이별은 이별답지 않았으니
가지를 버리는 꽃잎처럼은, 뒤돌아보지 않는 강물같이는 힘겨웠으니
식어버린 몸은 마침내 마음을 띄워 떠내려 보냈으니
내 안을 유영하는 물고기들의 일은 잡다한 것이다
내 등을 떠미는 바람은 한갓된 것이다
꽃은 물이 흐르는 대로 내처 흐르고, 유수는 떨어진 꽃을 다시 틔우려는
그것은 끝끝내 인간의 달력 밖이라서 인력이 아니라서
지금 나는 꽃잎을 품고 얼어붙은 겨울 강처럼 엎드려 있네
그 강바닥에 꽃그늘 하나 못 박혀 송곳같이 깊어가네
영영 가라앉지 않는 마음 하나는 낙화유수도 싣고 가지 못하니
첫사랑에 대한 소고
새로 만든 배를 처음 물에 띄우는 진수식(進水式)에는
걱정하는 마음이 많다.
진수식에 온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으면 출항하지 않는다. 반드시 두 명 이상이어야 배를 띄운다. 같은 날 두 척의 배가 진수식을 올려서도 안 된다. 둘 중 하나는 재수가 없게 된다.
처음 배에 올라서는 휘파람을 불면 안 된다. 휘파람은 바람을 몰고 오기 때문이다. 배에서는 용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물속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 풍운뇌우(風雲雷雨)의 조화를 부리는 까닭이다.
옛 배꾼들은 폭풍우를 만나면 용왕의 노여움으로 알고 산 사람을 바다에 처넣는 공양을 했었다. 요즘은 그전에 희생물을 바치는 의미로 핏빛 포도주가 담긴 병을 뱃머리에 팽개쳐 깨뜨린다.
이상의 것들은 예측할 수 없는 바다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되었다. 안전과 풍어(豊漁)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이렇게 한 번 떠난 배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부모형제라 해도 되돌아와 태우지 않는다.
한편 위의 풍어와 동음이의어인 풍어(風魚)는 폭풍과 악어라는 뜻으로, 해상에서 만나는 재해나 해적을 이른다. 폭풍의 방향을 미리 안다는 물고기의 이름이기도 하다.
저 풍어(風魚)는 “널 끔찍하게 생각해.”와 “정말 죽인다.”의 끔찍과 죽음처럼 한 몸에 상반되는 뜻을 품고 있다. 그 사이에서 배꾼들은 불길한 미래를 미리 살아보는 것이다.
당신의 손을 잡았을 때 힘을 빼던 손아귀나 나의 말이 당도하기도 전에 흔들리던 눈빛 같은 걸 떠올리면, 풍어를 찾아 폭풍의 향방을 짐작하려고 등대같이 불을 켠 눈동자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 진수식의 경우 붉은색과 푸른색, 흰색과 검은색 등 울긋불긋한 여러 빛깔의 깃대로 만선을 이룬다. 돼지를 잡고 술을 받아, 무당을 데리고 연안이나 섬을 돌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진수식의 시작과 끝은 성황당에서 제의를 지내는 것이다. 예부터 성황당에 사랑을 발원하는 돌탑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믿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날들이 있어, 맹신이 맹신을 차곡차곡 받드는
시작하는 마음은 모두 미신이다.
자선시
붙박이창
그것은
투명한 눈꺼풀
안과 밖의 온도 차로 흐려진 창가에서 “무심은 마음을 잊었다는 뜻일까 외면한다는 걸까” 낙서를 하며 처음으로 마음의 생업을 관둘 때를 생각할 무렵 젖는다는 건 물든다는 뜻이고 물든다는 건 하나로 섞인다는 말이었다, 서리꽃처럼 녹아떨어질 그 말은. 널 종교로 삼고 싶어, 네 눈빛이 교리가 되고 입맞춤이 세례가 될 순 없을까 차라리 나는 애인이 나의 유일한 맹신이기를 바랐다
잠든 애인을 바라보는 묵도 속에는 가져본 적 없는 당신이란 말과 곰팡이 핀 천장의 야광별에 대한 미안함이 다 들어 있었다 그럴 때 운명이란 점심에 애인이 끓인 콩나물국을 같이 먹고, 남은 한 국자에 밥을 말아 한밤에 홀로 먹는 일이었다. 거인의 눈동자가 이쪽을 들여다보는 듯 창밖은 깜깜, 보풀 인 옷깃 여미며 서둘러 떠나갔을 애인의 거리는 막막하고 사물들은 저마다의 풍속으로 어둠에 잠기는데
어디서 온 것일까
환기한 적 없는 집안의 먼지들은
매음녀를 기억하는 밤
—부동은 또다른 흔들림을 위한 단잠에 불과할 뿐
허공에 한번 피었던 것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말하자면 우리가 어젯밤 귀를 맞대고 들었던 어느 섬나라 재즈 가수의 노래와 그 술집을 가득 메웠던 웃음소리들 말하자면 우리가 서로에게 던진 캐치볼 같은 고백과 가까스로 세이프 한 역전 주자처럼 뿌듯하게 부푼 마음들 이것들이 하늘로 올라가 더러는 백색왜성이 되고 더러는 붉은 울음을 긴 꼬리로 흘리며 이 땅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는 생각 이런 상상마저 우주 한쪽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고 느끼는 밤이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이국의 여자 귀신을 믿게 되는 것이다
필리핀의 한 낡은 호텔에는 여귀가 산다 언제부터 그가 끄물거리는 복도의 전구 빛을 양탄자 삼아 떠돌았는지 알 수 없다 잃어버린 온기를 찾는 것인지 외로움이 깊으면 겁이 되는 법인지 거미줄에 걸린 양 이 행성에서 체크아웃하지 못하고 이방인의 곁을 맴돈다 “수음으로 시간을 달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라고 속삭여주거나 “무명 극단의 ‘나무 1’이 되고 싶다”라고 일기를 적는 이방인의 겨드랑이를 밤 내 데워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중에 피어난 상처들에게 별자리의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다 땅과 하늘을 오가는 바람의 따듯한 혈맥
너는 내가 읽은 가장 아름다운 구절이다
풍문처럼 떠도는 생은 없다고 믿는다
*생과 생 너머를 담고도 남을 듯한 손바닥만 한 뿔테안경 거기 인공 호수처럼 박혀 있는 포용과 배반이 함께 서린 눈동자 복 많다는 두둑한 살집의 코를 가졌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굳게 밀봉한 입술 사이로 화농 같은 언어들이 터져나온다, ‘세계사시인선 15’ 속 그녀의 얼굴. 시인 이연주는 등단한 해 첫 시집을 내고 이듬해 자살했다. 이 시의 부제는 이연주의 「신인의 말」(『작가세계』 1991년 가을호 별권)에서 인용했다.
벤치
내 방에는 벤치가 있다
안에 있는 바깥이고 겉을 둘러싼 속이다
외출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어제의 마음과 오늘의 마음이 달라서
우리는 매일 죽고 다시 난다
벤치는 늘 죽은 나로 비좁다
왜 그러고 살아
그러고 사는 게 아니라 살려니 그러는 거지
나였던 나와 나였었던 나의 담소는 마른 화초처럼 권태롭다
다행히 그들은 음악을 애호하는 취향이 같다
남향의 집에는 귤빛 볕이 가득하고
벤치의 나와 나는 서로 어깨에 기대 선잠에 든다
나와 내가 장난인 듯 벤치를 집밖으로 들어 옮기려 한다
하지만 벤치는 식물성이고 뿌리가 깊다
우리 중 누군가 몰래 물을 주고 있다
나로서의 기억도 잊은 오래된 나는, 오늘도
“네가 있어서, 나는 내가 찾아 헤매던 것이 너인 줄 알았다.”
라는 문장의 뒤를 잇지 못한다
이제 나는 거의 벤치와 하나가 되었다
벤치의 발치에 누워 빤한 운명을 긍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지 않은 때가 있었던가.
내일이면 벤치는 더욱 비좁겠지만
우리는 모두 벤치를 사랑할 것이 분명하다
그가 벤치에 앉기 전 잃어버린 문장은 무엇이었을까
벤치는 열린 결말처럼

이현호 시인
이현호 | 2007년 『현대시』 등단.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가 있음.

뒷모습을 보는 마음
2008년 여름, 현호를 처음 만났다. 젊은 작가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자리였다. 회의가 끝나자 현호는 내게 따로 술을 마시자고 했다. 마포역 앞 길가에서 맥주를 마셨다. 빠르게 취해가고 있는 우리 사이로 퇴근길에 오른 직장인들이 더 빠르게 스쳐갔다. 현호는 동갑내기 시인을 처음 만난다며 반가워했고 나는 현호에게 나이는 같지만 내가 한 해 늦게 등단을 했으니 존대를 해야 하느냐고 물은 기억이 있다. 광장과 자취, 시와 유년 같은 것을 두고도 이야기했다. 주로 내가 물었고 현호가 답했다. 우호적이지 않지만 호의를 감추지 못하는 사람. 결국에는 말을 실컷 할 거면서 처음에는 과묵한 사람. 이런 것들이 현호의 첫인상이었다.
며칠 후 현호에게서 연락이 왔다. 함께 함양에 가자는 말과 함께. 친한 선배가 문학상을 수상하는데 우리 또래의 시인들도 많이 올 테니 여행을 겸해서 다녀오자는 것이었다. 사당역에서 함양으로 가는 대절 버스가 출발하기로 했다. 현호는 버스 출발 시간이 다 되어 가도록 오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현호밖에 없었으므로 나는 미리 타고 있던 버스에서 내렸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멀리서 현호가 걸어오고 있었다. 뛰지도 않았다. 물론 현호가 출발 시간에 늦은 것은 아니었다. 다시 버스에 올라타니 딱 정시가 되었다. 이후 함양에서 있었던 1박 2일은 할 이야기가 많다. 그렇지만 하나같이 즐거운 것이어서 빼고 덜어내는 것이 어렵다. 그 이야기만으로 지면을 다 채울 수는 없으니 대신 함양에서 돌아온 그날 밤부터 이어 적기로 한다.
안양의 어느 번화가에서 함양에서 만난 선배들과 뒤풀이가 있었다. 문제는 취한 현호가 집에 가지 않으려 한다는 것에 있었다. 취한 현호는 꼭 종이인형 같았다. 온순했고 가벼웠으며 잘 구겨질 것 같았다. 함양에서부터 여정을 함께했던 시인 서효인 형은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택시를 타거나 여관방을 구할 돈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함께 24시간 사우나에 가주었다. 하지만 현호는 사우나에 들어오자마자 꼭 가야 할 곳이 있다고 했다. 몇 번을 만류해도 굽히지 않았다. 누구를 만나러 가느냐는 우리의 질문에 현호는 “지금 멀리서 울고 있는 사람이 있어.”라는 말을 남기고 돈 한 푼 없이 먼 새벽길을 나섰다. 며칠 후 나는 현호가 발표한 신작시를 오래 읽었다.
재채기 같은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견딜 수 없는 이물감과 스스로 목을 꺾는 목련의 창백한 진실.
―「꽃의 온도」 부분(『실천문학』, 2008년 가을호.)
2008년 늦여름에 처음 읽은 현호의 작품 「꽃의 온도」는 그의 첫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에도 수록되어 있다. 다만 다른 점은 “견딜 수 없는 이물감”이라는 문장이 “목을 옥죄는 이물감”으로 고쳐졌다는 것이다.
재채기 같은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목을 옥죄는 이물감과 스스로 목을 꺾는 목련의 창백한 진실
―「꽃의 온도」 부분(『라이터 좀 빌립시다』, 문학동네, 2014.)
“견딜 수 없”음도 지나 그것이 “목을 옥죄는” 것이 될 때까지 현호의 삶과 시가 어떤 이물감들을 견디고 통과해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현호와 현호의 시를 생각할 때마다 시인 박인환과 그의 작품을 떠올리곤 했는데 이러한 나의 오랜 습관이라면 그간 현호의 시간을 자의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다.
나는 10여 년 동안 시를 써 왔다. 이 세대는 세계사가 그러한 것과 같이 참으로 기묘한 불안정한 연대였다. 그것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성장해 온 그 어떠한 시대보다 혼란하였으며 정신적으로 고통을 준 것이었다.
시를 쓴다는 것은 내가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것이었다. 나는 지도자도 아니며 정치가도 아닌 것을 잘 알면서 사회와 싸웠다.
신조치고 동요되지 아니한 것이 없고 공인되어 온 교리치고 마침내 결함을 노정하지 아니한 것이 없고 또 용인된 전통치고 위태에 임하지 아니한 것이 없는 것처럼 나의 시의 모든 작용도 10년 동안에 여러 가지로 변하였으나 본질적인 시에 대한 정조와 신념만을 무척 지켜 온 것으로 생각한다.
―박인환, 「선시집 후기」 부분. 『선시집』, 산호장, 1955.
현호가 등단을 하고 시를 쓴 지 10년도 지났다. 그사이 그는 첫 시집을 냈고 두 번째 시집 원고와 산문집 원고를 엮고 있으며 취직과 퇴직을 번갈아 했다. 여러 가지 변한 것이 있지만 본질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여전히 시를 쓰고 있고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가난을 불편해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불행보다는 다행에 가까운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다행스럽게 여기는 것은 고풍(古風)과 이국(異國)과 모던과 환유 속에서 고작 마음의 남루 하나를 끄집어내곤 하는 현호만의 시적 노력과 시인으로서의 노릇이 점점 창연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상의 것들은 예측할 수 없는 바다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되었다. 안전과 풍어(豊漁)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이렇게 한 번 떠난 배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부모형제라 해도 되돌아와 태우지 않는다.
한편 위의 풍어와 동음이의어인 풍어(風魚)는 폭풍과 악어라는 뜻으로, 해상에서 만나는 재해나 해적을 이른다. 폭풍의 방향을 미리 안다는 물고기의 이름이기도 하다.
저 풍어(風魚)는 “널 끔찍하게 생각해.”와 “정말 죽인다.”의 끔찍과 죽음처럼 한 몸에 상반되는 뜻을 품고 있다. 그 사이에서 배꾼들은 불길한 미래를 미리 살아보는 것이다.
―「첫사랑에 대한 소고」 부분
걱정이 불안으로. 그 불안이 미래와 불길을 거쳐 제의와 믿음으로. 그러고는 종내 맹신으로 가닿는 과정을 진수식(進水式)을 빌려와 이야기한다.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믿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날들이 있어, 맹신이 맹신을 차곡차곡 받드는//시작하는 마음은 모두 미신이다.”라는 진술이 자리하고 있는데, 거기까지 읽고 다시 제목을 보면 “첫사랑에 대한 소고”라 적혀 있다. 배를 처음 물에 띄울 때의 광경과 자신을 처음 타인에게 띄울 때의 상황을 연결 짓는 매서움이라니. 눈가를 두 번쯤은 비볐다. 한 번은 안도였고 두 번째는 경외였다.
얼마 전 나는 부산에서 현호와 만났다. 지역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는 행사였다. 긴 코트를 입고 온 현호를 보자마자 “너 박인환 같아”라는 말을 숨기지 못하고 건넸다. 강연이 끝나고 나는 부산에 처음 왔다는 현호와 차 한 잔도 하지 않고 헤어졌다. 먼 길을 혼자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산 서면의 복잡한 골목으로 현호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나는 박인환의 서간문을 떠올렸다.
저는 부산에 방을 얻어서 내려온 것도 아니며, 무엇을 하러 왔는지 도무지 모릅니다. 그저 어떤 불안 때문에 내려온 것 같은데, 그 불안의 정체는 언제까지나 신비로운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은 인식 못하고, 보지 못하고, 우리의 생명이 종막을 지을 것 같습니다.
―박인환, 「이정숙에게」 부분. 『세월이 가면』, 근역서재, 1982.
글 · 박준 | 1983년 서울 출생. 2008년 『실천문학』 등단.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있음. 〈신동엽문학상〉 수상.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년 1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