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일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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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적으로 나는
권규미
나비가 나빌 확률 누가 봐도 백 프로니
꽃 또한 꽃일 확률 눈 감아도 자명하다
만물이 다 그일 확률은 진언처럼 단단한데
나는 지금 내게 몇 프로의 확률일까
시나브로 완연한 시간 속 잎새들을
모았다 흩었다 하는 나는 정말 누구일까
“나비가 나비일 확률 누가 봐도 백 프로”고 “꽃 또한 꽃일 확률 눈 감아도 자명”하다. 자연의 세계는 자명하다. 자명한 이유는 누구에게나 무관심하고 무감정하기 때문이다. 자연에 감정을 불어넣는 이는 인간뿐이다. 그러니 인간의 세계는 복잡하고 다양하여 자명하지 않다. 인간의 세계 안에서는 무제한인 경우의 꽃과 나비가 있다. 바다 위를 나는 나비, 숲의 나비, 장자가 꾼 꿈속의 나비도 있다. 수많은 은유와 상징의 나비가 있고 표본실에 박제된 나비도 있다. 온갖 색과 모양의 꽃, 피는 꽃, 지는 꽃, 낮에 보는 꽃, 밤에 보는 꽃, 바람에 흔들리는 꽃, 순수한 모순의 꽃, 온갖 은유와 상징의 꽃들이 있다.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보는 시선에 따른, 처한 처지에 따른, 생각과 감정과 느낌에 따른, 가치판단에 따른 이처럼 많은 자연을 만들어낸다.
“만물이 다 그일 확률은 진언처럼 단단”하지만 인간의 세계에서는 자명한 것은 없다는 그 말만이 진언이다. 그러니 온갖 내가 있다. 어릴 때부터 늙어 병들어 죽음을 앞둘 때까지 온갖 희로애락 속에 사는, “시간 속 잎새들을 모았다 흩었다 하는” 이 많은 나 중에서 참 나는 누구일까. 시간 역시 인간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모년 모월 모일 모시, 나누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니 필멸의 육신과 필멸이므로 더욱 무한을 그리는 정신, 그 혼돈의 사이에 참 나는 모든 순간 어디엔가에 있지 않겠는가.
맷 데이먼(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의 주연 배우)은 10년 전 MIT 졸업 축사에서, “I mean, what are the odds that you are the ones who are here today? (중략) I hope you’ll turn toward the problem of your choosing. I hope you’ll drop everything.”라며, 졸업생들에게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고 세계에 산적해 있는 문제를 직시할 것을 부탁했다.
시인 중의 시인이라 불리는 김종삼도, “나는 속으로 치열하게 외친다 / 부인터 공동묘지를 향하여 / 어머니 나는 아직 살아 있다고 / 세상에 남길 만한 / 몇 줄의 글이라도 쓰고 죽는다고 / 그러나 / 아직도 못썼다고”라 쓴 시 「어머니」의 시작 노트에서, “예순이 넘어서야 시에 대해 조금 눈뜨기 시작했다 함부로 써선 안된다 누군가 뭐라고 하겠지 이런 것도 시냐고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다 시 문턱에도 가 있지 못함을”이라고 그의 내면의 염결성을 고백했지만 고뇌하는 그 모든 순간에 섬광처럼 마주하는 참 나가 있었을 것이고, 또한 그처럼 당신이 궁구하며 찾아가는 ‘참–나’는 시인임을 보여주는 ‘시’라는 것이 있다.
갯벌 구름판
김양희
물 발자국 따라 조개 발자국 기어가고
조개 발자국 따라 새 발자국 걸어가고
푹 찍힌
새 발자국 따라
사람 발자국 난다
시인은 갯벌에서도 ‘나’를 발견한다. 내가 시인임을 발견하는 것이다. 시인은 “물 발자국 따라 조개 발자국 기어가”는 것을 발견하고 “조개 발자국 따라 새 발자국 걸어”간 것을 발견하고 “푹 찍힌 / 새 발자국 따라 / 사람 발자국 나”는 것을 발견한다. 이것은 자명한 자연의 발견은 아니다. 세상에 없는 이 풍경은 다만 시인의 상상력에서 촉발된 풍경이다. 이 발견으로 인해 시인은 참 나는 ‘시인’인 것을 발견하였다. 여기서 조개 발자국과 새 발자국과 사람 발자국은 각각 “기어가고” “걸어가고” “난다”의 점층법으로 표현되어 점점 자연과 사람이 서로 동화되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물론 초⸱중장에서 물속의 플랑크톤을 먹고 사는 것은 조개이고 조개를 먹고 사는 것은 새이므로 새는 조개 발자국을, 조개는 물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기는 하겠다. 그러나 종장의 비약에서 시의 모습은 드러난다. “갯벌” “물” “조개” “새” “사람”과 같이 이 시조에 등장하는 것들은 사실적인 물상이지만 그 내용은 단연코 ‘시’라 하겠다. 제목을 단순히 ‘갯벌’이라 하지 않고 ‘갯벌 구름판’이라고 한 것도 이 작품이 ‘시’임을 말해주고 있다. 아마도 이 시의 배경은 아주 맑은 날이며 조용한 갯벌에 흰 구름이 비쳐 보이는 날일 것이다. 아무리 시라고 해도 상상이 가닿을 수 있는 거리와 맥락을 가져야 함이 좋은 시의 한 요건이라고 하겠다.
시가 제의(祭儀)의 노래나 무가(巫歌), 노동요 등에서 기원하여 서사시나 메시지를 갖고 있는 시들도 그 뿌리가 깊다고 하겠으나 예술적, 미학적으로 시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순수시란 것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갯벌 구름판」은 내가 시인임을 발견하고 있는 시조이다.
구절초
서연정
조촐한 눈동자로 돌무덤을 지킨다
가녀린 마디마디 바람의 소슬한 칼
희비극 새겼으련만 여미는 빛 해맑다
「구절초」는 의미를 추구한 「확률적으로 나는」과 순수 서정의 「갯벌 구름판」 사이 「갯벌 구름판」 쪽에 가까운 어디에 있다.
다시 김종삼의 시 2편을 인용하고 싶다. 한 편은 1951년 한국전쟁 때 피난지 대구에서 발표한 등단작인 「돌각담」이고, 또 한 편은 1984년 <고려원>에서 펴낸 시집 『평화롭게』에 실린 「서시」이다.
廣漠한地帶이다기울기
시작했다잠시꺼밋했다
十字型의칼이바로꽃혔
다堅固하고자그마했다
흰옷포기가포겨놓였다
-「돌각담」 부분
헬리콥터가 지나자
밭이랑이랑
들꽃들이랑
하늬바람을 일으킨다
상쾌하다
이곳도 전쟁이 스치어 갔으리라.
-「서시序詩」 전문
시는 시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헤집기보다는 전체적인 조화가 먼저이지만 구태여 짚어본다면 「돌각담」은 “흰옷포기가포겨놓였다”에서 짐작하듯 돌무지무덤이다. 돌각담의 모양처럼 사각형으로 시행을 배치했다. 그리고“十字型의칼”에서 보듯 당시 “한국전쟁에 대한 애도의 시”라는 해설이 있다. 여기서 십자형의 칼은 쌓은 돌과 돌의 이음새가 십자형으로 뚫린 곳일 것이다. 꺼밋하던 그곳에 “바로” 반짝 햇살이 드는 모양이다. 이것이 더욱 시적인 시선이 되겠으나 혹은 실제 칼이 십자형으로 꽂혀있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칼의 모양은, 혹은 그 돌각담은 “견고하고자그마”하다.
시조 「구절초」에서도 “돌무덤”이 보인다. 구절초가 지키는 돌무덤이다. 구절초가 지키는 돌무덤이라면 역시 그리 큰 모양의 무덤이라고 연상되지는 않는다. 여기서는 “바람의 소슬한 칼”이 구절초의 가녀린 마디마디를 긋는다. 시 「돌각담」과 시조 「구절초」에서 모두 “칼”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돌각담」의 칼은 햇살이며 「구절초」의 칼은 바람이다. 마디마디 바람의 칼금으로 인하여 희비극이 새겨진 구절초는 그러나 해맑다. 돌무덤의 희비극을 자신의 희비극처럼 새기고 무덤을 지키고 있는 구절초의 모습은 마치 「서시」에서 “전쟁이 스치어 갔으”련만 “헬리콥터가 지나자” “상쾌한” “하늬바람을 일으키”는 “들꽃”과도 같이 맑고 무구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악기”(김종삼, 「풍경」)이다. 세이렌의 노래가 아닌 “엄청난 고생되어도 /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 고귀한 인류이고 / 영원한 광명이고 / 다름 아닌 시인”(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인 사람들이 이끄는 평화의 노래를 부르는 악기인 것이다.
영혼에 세례를 주는 순결한 순간이 당신에게 스친다면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악기가 어떤 음률을 연주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조금은 설레어도 좋을 것이다.

김일연 l
1980년 《시조문학》 천료. 시조집 『빈 들의 집』 『서역 가는 길』 『저 혼자 꽃 필 때에』 『달집태우기』 『명창』 『엎드려 별을 보다』 『꽃벼랑』 『아프지 않다 외롭지 않다』 『너와 보낸 봄날』 『깨끗한 절정』 『향긋한』, 시조선집 『먼 사랑』 등, 일역 시조집 『花の崖(꽃벼랑)』, 영역 시조집 『All The Daughters of The Earth(세상의 모든 딸들)』, 동화집 『하늘 발자국』, 시평집 『시조의 향연』이 있음. 〈한국시조작품상〉 〈고산문학대상〉 〈한국단시조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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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호(vol.1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