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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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황유원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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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그 풀이 뚝, 뚝

끊기는 소리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왼손으로만 피아노를 치던 피아니스트의 굽은 오른손은

불어오는 바람에 서서히 펴져

나무처럼 자라오른다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이제는 한가한 게 어떤 건지도 잘

모르게 된 나는

저 양들을 보며 비로소 무언갈 깨달아 간다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연주는 얼마나 놀라운가

풀 한 포기 없는 방을 풀밭으로 만들어놓고

천장을 본 적 없는 하늘빛으로 물들이는 이 연주는,

머릿속을 점령한 채 계속 날뛰는 무가치한 생각들을

스르르 잠들게 하는 이 연주는!

 

음악은 연주와 더불어 잠이 들고

양들도 이젠 다들 풀밭에 무릎 꿇은 채 그만

잠이 들어

풀 뜯는 그 모습 더는 보여주지 않지만

나는 이제 한동안 음악 없이도 양들이 한가로이 풀 뜯는 모습

머릿속에 그릴 줄 알게 된다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나는 그 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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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hafe können sicher weiden>, 바흐의 “사냥 칸타타” BWV 208 중에서.

 

 

 

 

 

 

 

 

 

 

 

 

 

 

 

 

 

 

 

 

신작시-황유원.jpeg

황유원​ ​​■

2013년 《문학동네》 등단.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 『이 왕관이 나는 마음에 드네』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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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