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 저자 | 정병근 | ||
|---|---|---|---|
고구마 줄기를 벗기는 여자
세상의 할 일을 다 모은 듯
길가 배전반 옆에 쪼그려 앉아
고구마 줄기를 벗긴다
인생의 오랜 결론처럼 고개를 처박고
손톱 밑의 때 같은 생각을 할까
침 뱉는 풍속처럼 차들은 쌩쌩
우리 아이를 찾아주세요
실종 당시 사진이 붙은 전봇대 밑에서
캡 모자에 마스크를 둘러 쓴
저 얼굴을 목격하고 싶다
고구마 줄기로 시작하는 죄들이
줄줄이 불려 나와 차례를 기다린다
잘 팔려요? 집은 어디세요?
관원처럼 다가가서 추궁해볼까
잔털이 많은 뒷목덜미가 뽀얗다
머리를 드는 법도 없이
그 자리가 세상의 모든 자리인 듯
옹크린 몸이 블랙홀처럼 까마득해진다
온 힘이 손톱 끝에 모아진다
지문을 가르며 무수한 금들이 번진다

정병근 ■
1988년 《불교문학》 등단. 시집 『번개를 치다』 『태양의 족보』 『눈과 도끼』 등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년 1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