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 저자 | 하재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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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환유적인
텅 빈 지상을 향해 전속력으로 낙하하는
가랑잎을 보고 달마티안이 활짝 웃는다
높은 음에 도달했지만 무대 위의 무희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계속 사망 중이다
얼굴이 지워진 가면이 여기저기에 뒹군다
누군가가 떡시루 위에 앉아서 졸고 있다
셀 수 없이 노새가 이끄는 수레바퀴가
세상 끝에서 사람의 아우성을 짓밟는 동안
별똥별이 지고 철새 떼는 멀리 날아갔다
너와 나는 안개 속에서 거미줄을 기웠다
겨우 한 뼘을 기어오르는데도 애를 먹었다
달포해포 길에서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다
여인이 서럽게 울 때 청소차가 덜컥 지나갔다
달팽이 뿔엔 무지개 대신 이슬이 맺혔다
검은 반점이 무수하게 은행나무에 박혔다
이것은 시간이 빚은 거리 풍경이 아니다
푸른 술병에서 튀어나온 유치한 참언이다
앓고 있는 짐승의 애처로운 심연이 보인다
채무 미납 서류들은 어디에 숨겨 두었을까
간밤에 잠깐 우물에 빠진 올빼미를 만났다
너는 지금 날개를 아예 잃어버린 거니?
밤마다 들리는 건 고요를 찢는 방울 소리다

하재일 ■
1984년 《불교사상》 등단. 시집 『아름다운 그늘』 『타타르의 칼』 『코딩』 『동네 한 바퀴』 『달마의 눈꺼풀』, 청소년시집 『처음엔 삐딱하게』(공저) 등이 있음. 〈만해불교문학상〉 〈시흥문학상〉 수상.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년 1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