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 저자 | 송종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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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시간
분홍 한쪽 발을 남프랑스 언덕길에 남겨놓고 그녀는 타박타박 봄날의 끝을 걷고 있다 반질하게 닳은 그곳의 보도블록처럼 사람의 생애도 닳겠지만 지중해에 쏟아지던 그날의 달빛은 닳을 리가 없다 사진 속 분홍도 닳을 리가 없다, 나비처럼 사뿐히 떠 있는 분홍
그것이 꽃인 줄 알고 입술을 갖다 대는 햇살과 구름
길고 긴 복도 끝에서 단순해지는 11월의 창문들
잘못 누른 셔터에 갇힌 그녀의 오른쪽 발은 아직 허공에 떠 있고 기억 속에서 분홍은 점점 더 완강해진다, 확대된다, 두렵고 벅차고 의심으로 가득했던 봄날도 운무처럼 확산된다 노랑나비가 출몰하는 방 안
고요히 우주가 팽창하는 위험한 시간
세월처럼, 분홍이 몰려온다

송종규 ■
1989년 《심상》 등단. 시집 『고요한 입술』 『녹슨 방』 『공중을 들어올리는 하나의 방식』 등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년 09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