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 저자 | 고명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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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 소음
아이가 쌀빛의 미음을 삼킨다 마음속 풍경은 언제나 소리가 없다 누 떼가 달려도 옥수수밭이 힘차게 스쳐도 누렇고 까맣고 육중한 흔들림일 뿐 세상은 젖은 앞머리처럼 고요하고 아이가 울 때마다 입속에서 쌀알이 갈린다 종일 어항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소리를 끈 TV 화면에 이마를 대고 아이가 아파서 몸을 비트는 모습을 본다 도요 도요 창밖의 나뭇잎은 반짝거리고 나는 물고기처럼 조용히 물을 삼키고 가슴속 옥수수들이 누렁니를 꺼낼 때 일어서라 사랑아 오늘은 힘을 내볼까 리본을 상상하며 발가락에 힘을 줘볼까 돼요 안 돼요 돼요 안 돼요 도요 도요 괜찮아요 바람 많이 불고요 작은 손을 잡고 기도를 올리면 아이는 실눈을 뜨고 자막만 한 세계를 본다 새들이 하늘을 파먹고 있어요 주님, 이 모든 걸 보고 있나요 나를 보는 너를 보는 게 서로 아파서 병원은 과일을 들고 찾아가는 곳 과수원은 무른 이마로 가득하다네 아이가 누워서 햇살인 듯 천장을 볼 때 나는 녹색 의자 위에서 눈을 감았다 드릴을 들고 수박만 한 머리를 뚫을 때 과즙이 흐르는 손목처럼 하찮게 빛나는 기도를 하고 싶었다

고명재 ■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년 08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