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 저자 | 김일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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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화장대
빛이 낸 길을 따라
먼지들이 화장대에 가라앉는 오후야
당신의 화장대에는
다종의 화장품 샘플들로 풍성도 했었군
샘플이 될 수 없는 우리들의 삶
빛으로 채워진 우리의 무대는 없을 테니
다만 그림자로 빛나기를
어떤 색을 바른다 해도
그림자는 언제나 같은 색조고
색조들로 만발한 봄이
세상을 물들일 때가 온다 해도
그림자는 어두워
꽃과 나무들 곁에서 선명하겠지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는 것들 곁을 살며
샘플들도 풍성해서 당신의 화장대는
당신의 얼굴을 지키고 있었던가
내가 물려받은 구석진 유산
그 오래되고 그늘진 가구 위에 당신은
샘플을 모아다 놓고 바르며
그럭저럭 주름이 져 가고
나는 당신을 얻어 바르며
해맑은 오후의 그림자 쪽으로
기울어 왔었네
이제 봄은 주름진 세포들마다 스며들고
당신에게 가기 위한 오랜 걸음들 옆으로
일어서는 연두색 나무들
그 그늘 아래서 나는 열매 같은 노래를
만들어 불러 보리

김일영 ■
200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가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년 07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