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 저자 | 이면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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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는 고구마를 좋아한다
갈대숲엔 고구마 없고 고라니 있다
붉은 고구마는 고라니도 좋아한다
두 바퀴로 저녁 갈대숲 막 건넌 노인
찐 고구마 먹는 내내 고라니와 함께 간다
석양에 잠긴 갈대숲 암컷 고라니
갈대 새순 시퍼렇게 올라오면
세상에 내놀 목숨 품고
고라니는 고구마 대신 갈대 줄기를 씹는다
튼튼한 이빨 사이 마른 갈대 바스라지는 소리
고라니가 주린 배로 건너는 바로 그 하늘
다저녁때 혼자 천천히 무얼 먹을 때 노인은
북통처럼 텅 빈 배를 생각한다
제 배를 우물처럼 들여다보는 검은 눈도 따라온다
오늘 저녁은 찐 고구마와 함께 고라니다
캄캄해지면 냇가로 나갈
가느다란 네 다리를 떠올리며

이면우 ■
1991년 시집 『저 석양』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저 석양』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십일월을 만지다』가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년 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