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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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진명 

수치도 자랑도 없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전국 확산 와중에

청탁 시 두 편 보낸 것 교정지가 왔다

앞의 시에서 한 곳

뒤의 긴 시에서 세 곳 수정이 필요했다

큰 수정은 아니고

좀 더 적확한 표현으로 바꿀 필요가

멀뚱히 차일피일 답변하지 않았다

그대로 통과하라는 뜻으로 알겠지 하고 말았다

 

한때는 애지중지

원고 보내 놓고 다음날 바로 메일로 전화로

거기 이렇게 고쳐주세요 넣고 빼고

거기는 이렇게 바꿔주세요 넣고 빼고

사흘 후까지도 거기 한 행을 이렇게 고쳐 두 행으로요

(잘한다 두 행을 한 행으로 쌈 쌀 능력은 없지)

잘 놀았지 잘 놀아먹었지

재미있었을까 그때

 

대의에 지장없다라기보다는

(뭔 대의씩이나 다른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으니 그냥 그대로)

그깟 낱말 몇 개 바꿔치기에 너 죽고 나 사나

표현 좀 매끌 갈아붙였다고 너 죽고 나 사나

수정하지 않아 멀쩡해지지 않으면 그러면

나 죽고 너 사나

그래 그럼 나 죽고 너 살아라

호 이건 좀 재미있는 일

 

국민들 외출 자제 위생수칙 부탁이 애원만 같아

외출 자제 내리 두 달여 책 좀 보고 지내는데

바깥 어디는 홍매가 활짝 피어버렸다고

화들짝 홍매 사진 전송이 오고

그때 마침 읽고 있던 소설 속의 참으로 요사한 문장

 

ㅡ​ 꽃이란 두려운 것이다. 왠지 께름칙한 것이다

 

도적질과 살인으로 먹고사는 산적놈이

산속 벚꽃이 방창할 때만 되면 기묘한 불안으로 쇠약해진다는

이 요사스러운 문장에서 늘어지도록 혼미 중이었지

 

낱말 수정 자구 수정 쪼그라진 글 리듬 한 박 두 박

뒤로 갔다 앞으로 나갔다 수치스럽기만 하고

히 수치스럽다는 것도 사실 말만 알지 뜻은 잘 몰라요

 

그냥 이즈음 아니 오래되었군요

 

소설 속 험준한 산속 괴이한 산적놈처럼

뽀얗게 흰 꽃 내리는 안개 같은 속에서

기묘한 불안에 접붙여져 쇠약해지고나 싶은

 

수치도 없이 자랑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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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_이진명.jpeg

이진명 ■

1990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세워진 사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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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년 0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