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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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백겸 

애석해라, 부귀를 햇빛 한 줌과 바꾸다니

 

 

 

  알렉산더의 정복 여행 같았던 일생의 항해-추억의 바다에는 콤플렉스(complex)의 사건들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네

  삼각파도처럼 높은 발작성 심방세동의 파고가 멈춘 새벽이 좋구나

  황금빛 불티의 생각들이 장작 불길처럼 어둠으로 사라지고 있는 새벽이 좋구나

  살아있는 새벽이 좋구나

  138억 년을 날아온 태초의 별빛-얼음 같은 별빛들이 파란 입술을 오들오들 떨고 있는 소나무 가지에 내려와 있네

  태양의 딸인 파랑새가 생명의 나무를 박차고 날아가는 새벽이 좋구나

 

  은퇴 백수의 「자미두수(紫薇斗數)」에 뜬 신살(神殺)들이 빈 수레의 바퀴처럼 소리를 내며 굴러가는 중

  명궁(命宮)에 뜬 별들은 천상(天相)과 자미(紫薇)였는데 시와 음악과 형이상학을 좋아하는 몽상가의 운명이었지

  은퇴 백수는 태양이나 칠살(七殺)의 에너지로 세상을 정복하는 고교 동창들을 선망의 눈으로 쳐다보았지

  운명은 제가 좋아하는 게임의 회로를 돌아간다는 생각

  세계를 정복하고자 했던 알렉산더 대왕이 자신을 정복한 디오게네스를 방문했을 때의 에피소드가 생각나네

 

  알렉산더 대왕이 정치가와 철학자들의 알현을 원했는데 디오게네스는 가지 않아 알렉산더는 호기심이 생겨 디오게네스가 거주하는 집으로 갔다는 얘기

  디오게네스는 일광욕을 하고 있었는데 대왕이 오는 것을 보고도 옆 눈질만 살짝 하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는 얘기

  알렉산더가 "나는 알렉산더다"라고 말하니 디오게네스는 조용한 목소리로 "저는 디오게네스입니다"라고 말했다는 얘기

  알렉산더가 "내가 무섭지 않느냐?"라고 물으니 디오게네스가 "폐하는 선한 사람인가요?" 라고 물었고 알렉산더가 "그렇다"라고 대답하니   디오게네스가 "제가 왜 선한 사람을 무서워해야 합니까?"라고 대답했다는 얘기

 

  이어지는 알렉산더 대왕과 거지 철학자의 수작도 그리스의 맑은 하늘 아래 흰 구름처럼 흘러가면서 역사에 남은 유명한 대화가 되었다

  디오게네스: “폐하께서는 지금 무엇을 가장 바라십니까”

  알렉산더: “온 그리스를 정복하길 바라네”

  디오게네스: “그 다음에는 또 무엇을 가장 바라시겠습니까”

  알렉산더: “아마도 소아시아 지역을 정복하기를 바라겠지”

  디오게네스: “그 다음에는요”

  알렉산더: “온 세상을 정복한 제국이 목표가 될 걸세”

  디오게네스: “그 다음에는 또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알렉산더: “그렇게 하고 나면 나도 좀 쉬면서 즐겨야겠지”

  디오게네스: “이상하군요, 그러시다면 왜 지금 당장 좀 쉬면서 즐기시지 않습니까”

 

  알렉산더가 쓴웃음을 지으며 내가 지금 당신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물었다지

  그다음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

  디오게네스는 두려움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었는데 목숨 이외에는 잃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라나

  알렉산더가 인도 원정의 말라리아로 33살에 죽었지만

  술통을 굴려가며 방랑과 구걸로 개 같은 생계를 유지한 견유(犬儒)학파 철인 디오게네스는 89세까지 건강하게 살았다는 철학사 기록

 

   인생은 너무 빨리 지나가지

  에어버스는 파리에서 뉴욕까지 논스톱으로 날아가지

  하늘에는 천억 태양이 중력장에 갇혀 팔랑개비처럼 돌아가고 있지

  지구 생태계 목숨들도 태어나거나 죽는 게임을 계속하면서 긴 시간과 짧은 시간의 회로를 팔랑개비처럼 돌아가고 있지

 

  중국인들의 행복은 ‘수부귀공명(壽富貴功名)’이기에 수명으로만 보면 디오게네스 판정승이지만 은퇴백수는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가 되고 싶지

  염라대왕에게 은퇴백수의 내세 커리큘럼을 수명은 디오게네스만큼 부귀공명은 알렉산더의 영토만큼 디자인하도록 부탁해보고 싶지

  윤회 학교 유학생이 지구의 물질세계-말쿠트(Markuth)로부터 귀국하면 경험과 지식의 전리품으로 당신의 하늘 왕국- 케테르(Kether)를 화려하게 할 수 있다고 제안해보고 싶지

 

  오호라

  황도(黃道)의 검은 별들이 폭풍 같은 리듬을 쏟아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흘러갔는데 은퇴 백수가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걸어갔던 순간은 단 한 번뿐

  은퇴 백수가 태어나는 순간과 죽는 순간이 하나인 스페이스(space)의 앙코르와트 궁전에 「마하바라타(Mahābhārata)」의 전사처럼 창을 잡고    전차를 몰아 폭풍처럼 질주했던 순간도 단 한 번뿐

  은퇴 백수가 아테네의 디오게네스처럼 등불을 들고 눈앞이 캄캄해진 세상으로부터 빛을 향해 걸어갔던 순간도 단 한 번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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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겸 ​■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거울아 거울아』 등, 시론집 『시의 시뮬라크르와 실재(實在)라는 광원』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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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년 0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