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양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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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프리즘 속에서 갈라지며 (상)
1
폭우 속에서 비명을 지르면 젖은 비명이 되는 걸까
앵무새는 우리들의 말을 곧잘 따라하곤 하였으나 그것은 우리가 복제한 또 다른 슬픔
과거는 인간을 잊지 않는다, 이 말은 우리들의 신조
세상 사람들은 과거를 잊은 듯 보이는데
원은 모든 것이 운명이라고 믿었다 죄는 시간을 따라 흐르기 때문에
죄를 지으면 미래에 괴로울 거라고,
그 말을 엘리도 윤도 영도 믿었다
몬데는 무엇을 믿었을까
이제 나는 우연을 믿고 싶다
그때쯤 우리들은 네 평 남짓한 방에서 모여 살았다
어느 날 우리 중 누군가가 천사와 악마에 대한 게임을 제안했다
— 죽어본 적 있어?
있다고 대답한 친구들은 모두 악마 코인을 받고
함께 잔을 기울였다
당신의 머릿속은 망가진 퍼즐 같네
나는 당신이 잃어버린 마지막 조각
그래서 나는 숨어버렸지
미안해 나는 숨어버렸네
나는 어항의 열대어들이 떼로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몸을 흔들며 들어내는 물의 꼬리
아이들은 울지 않아요
단지 숨을 쉬는 것뿐
당신에게 숨이 필요하다면
당신에게 숨이 부족하다면
열대어에게도 패턴이 있을까
그들도 그런 걸 이해하고 움직이는 걸까
— 쟤, 벌써 뻗어버렸잖아.
— 코인을 봐. 악마가 잔뜩 쌓여 있어.
취기에 못 이겨 엘리가 바닥에 엎어진 채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우리들의 게임은 중단되었고
나와 몬데는 어느 코인도 받지 못했다
백색의 천사 코인
흑색의 악마 코인
천사와 악마, 천사를 닮은 악마, 악마를 닮은 천사, 천사를 죽인 천사와 악마를 살린 악마, 그리고……
2
망치질하는 소리에 잠을 깬 늦은 오후, 윤은 우리의 현관에 ‘방공호’라 적힌 팻말을 걸었다 영은 방공호라는 단어가 자신을 숨고 싶어지게 만든다며 울부짖었고 나는 그런 모습이 낯설었다
방공호는 원이 기르는 식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밤이면 서로의 팔다리가 뒤엉키는 줄도 모르고 잠들었지만 화분을 끌어안은 채 깨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방공호보다 숲을 원했는지도 모르지만
때때로 몬데는 늦은 새벽까지 돌아오지 않았고 우리 중 누구도 그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러나 갈증에 깬 어둠 속에서…… 몬데가 가만히 선 채로 잠든 우리를 내려다보는 걸 나는 보았다
“뭐하는 거야?”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너희 전부를 보고 싶었어.”
더 이상 그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다
3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골목이었고 괴한들에게 얻어맞고 있었다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몬데는 얻어맞는 나를 힐끗 보며 골목을 지나쳐 갔다
나는 손등을 물어뜯는 데에 재주가 있었다 언젠가 선생이 내게 말했다
— 견딜 수 없을 때는 손등을 물어뜯으면 돼.
— 어째서?
— 손등을 견디는 게 더 어렵다는 걸 알게 되거든.
그 외에도 나는 견딜 때마다 생각을 멀리 보낼 줄 알았으며, 대체로 그 생각들은 눈알을 하늘에 띄워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것과 비슷했다 생각을 멀리, 더 멀리 보낼수록 머릿속에는 더러운 영상이 흘렀는데 나는 그것을 끄집어내 누구에게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언젠가 나의 눈알들이 적란운과 함께 떠다닐 때의 일이었다
지명을 알 수 없는 어느 초원에서
사람들이 한 마리의 양을 둘러싸 죽도록 패는 것을 보았다
아이는 눈가를 훔치고 있었는데
그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이걸 먹을 거예요?” 아이는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양은 말뚝에 묶인 채 비명을 지르고
피를 흘리고 나면 사람의 내부는 무척 따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방공호로 돌아오면 깨어 있는 누군가가 붕대를 감아주었고 사랑한다 말해주었다
4
축하해, 소리 내어 말하고 나면
우리의 축하는 사소해지고
촛불을 불기 전에
없는 소원마저 만들어 빌면서
말하면 안 돼
그것을 말하면 안 된다고 중얼거린다
앵무새는 우리의 축하를 복제하는데
처음 생각해낸 이는 누구일까 어둠 속에서 축하하는 방식을
어항에 비친 촛불 때문에
열대어는 불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누군가는 숲이 타오른다고 말하지만
촛불이 꺼지자
우리들은 완전한 어둠 속에 있었다
이제 우리들은 같은 얼굴 되었네
애인에게서 귀 하나를 잘라간다면
오직 하나의 사랑을 들을 거라 착각하지만
우리들은 하나의 귀를 달고 모든 사랑을 들었다네
어둠 속에서
흑색의 천사 코인
흑색의 악마 코인

양안다 ■
2014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작은 미래의 책』 『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 동인 시집 『한 줄도 너를 잊지 못했다』가 있음. 창작 동인 ‘뿔’로 활동 중.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년 0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