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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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최지인 

몇 가지 요구

 

 

 

 

 

 

  폭력배가 두려우면 거리에 나오지 말라 공표하다. 바다에서 익사한 채 발견된 사체는 며칠 전 실종된 사람으로 추정되다.

 

  깨어 있어라

  아니면 우리의 다음이 될 것이다*

 

  * 홍콩이공대학(香港理工大学) 한쪽 벽:

  BE AWARE or BE NEXT!

 

  (함부로 판단하거나

  노래해선 안 될 노릇 나는

  홍콩에 간 적도

  홍콩 사람들과 대화한 적도

  홍콩의 속사정도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잘못되었다 무엇이

  군인에게 죽일 권리를 주는가

  안다

  내가 믿는 것 모두

  허상일지도

  안다

  네 잘못이 아니라는 걸

  얘야,

  그냥 생긴 대로 살아도

  괜찮단다)

 

  귀하는 본국의 치안에 기여한 바가 크므로 이 상을 드립니다

  손뼉, 손뼉들

 

  평화시장 앞길

  온몸에 휘발유 끼얹은 스물두 살 재단사가

  불이 되어

  외친 말

 

  달리 얘기하면 나를 미워한다는 건

  일종의 신앙이었다

 

  술 취한 선배는

  유리잔을 비우고

  야, 너 그렇게 살지 마

  소리쳤다

 

  점점 사라질 것이다 나는

  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서

  아침에 세 알

  취침 전 일곱 알

 

  우울하기 때문에

  그것은 잘못처럼 아름답다

 

  우리는 적당히 취할 수 있는

  합정역 뒤편

  그리운 금강산에서 한잔했다

 

  얼마나 나쁘고 엉망인지에 대해 나는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대고

  폭우가 몰아치고

  경계를 넘나들고

 

  오랜만에 길에서 만난 사람을 못 본 척 지나쳤다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맨날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잠만 자니까

  오늘 뭐 해

  오늘 뭐 할 거야

  내일 뭐 해

  더 이상 묻지 마

  모르겠지 너는 

 

  어느 여대 교수가 술자리에서 얘기한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너희가 하는 거 다 의미 없어

  해봤자 헛수고라고

  딱하기도 하지

 

  종착역이 뒤덮여 있었다

  구름 속처럼

  안개로

 

  십자가 네온사인 희미하고

  나란히 걷는 세 사람의 뒷모습 희미하고

  세상이 희미하고

  꿈만 같아서

  선명한 건

  바닥에 나뒹구는 낙엽 담배꽁초 가로수 갈라진 뒤꿈치 상자로 집을 짓는 웅크리고 웅크리다 공이 되어버린 사람들 비상등을 켜고 서행하는 자동차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가만 서서

  이렇게 희미하다면

 

 

 

 

 

 

 

 

 

 

 

 

신작시_최지인.jpeg

최지인 ■

2013년 《세계의문학》 등단. 시집 『나는 벽에 붙어 잤다』, 동인 시집 『한 줄도 너를 잊지 못했다』가 있음. 창작 동인 〈뿔〉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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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년 0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