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대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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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에서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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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볼 수 없을 때는 바람의 줄기를 헤아립니다 국숫발처럼 쏟아지는 바람 중 어느 한 줄기는 당신과 이어져 있을 것입니다 햇살이 내 살을 만질 때면 어떤 기척이 왔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의 작은 미동이 내게 전달된 것이겠지요
꽃을 보기 위해 세수를 합니다 신앙이 아니어도 아름다움에 대한 예의는 필요합니다 영업을 하러 가는 사람처럼 나는 준비합니다 나는 꽃에게 가장 좋은 살을 보일 것입니다
당신 앞에 선 듯 꽃 앞에 선 나는 몇 가지 표정을 지어보입니다 거짓말을 할 수는 있지만 살의 말을 숨기기는 어렵습니다 살의 떨림과 살의 향기를 그대로 노출합니다
당신이 살로 왔을 때 꽃으로 반응하던 내 살의 떨림을 어떻게 기록할 수 있을까요?
살이 말하고 살이 듣습니다 입술보다 먼저 눈동자보다 빨리 살은 소통합니다
당신이 꽃 피어서 나는 웃습니다 |
그러나를 수신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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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는 것만으로도 결은 발생합니다 숨결이거나 물결이거나 바람결이거나 한번 일어난 결은 번져서 끝까지 지워지지 않습니다
나의 파장과 당신의 파장이 만나는 순간을 파도가 쳤다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주파수가 맞으면 소리가 나오는 라디오처럼 당신의 신호를 기다립니다
그러나라는 당신, 당신의 그러나
당신의 기척이 내게로 전해질 때 나는 몸 밖으로도 핏줄이 흐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호흡에 나의 호흡이 묻혀갈 때 우리들의 심장은 서로를 흉내 내며 뛰었지요 보이지 않더라도 전파처럼 전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잠시 지지직거리며 나는 나에게 몰두합니다 이미 온 감기처럼 내 안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당신을 찾아내었을 때 나는
어린 당나귀처럼 마구 나를 흘리고 싶어 견딜 수 없습니다 |
마음의 호랑에서 코끼리 떼가 쏟아질 때
당신에게서 문득 파닥이는 꽃을 받았습니다
5초간,
감정의 국경을 침범하지 않을 방법을 연구합니다
당신이 내민 꽃 떼를 받지 않을 수 없어서 나는 이름에 갇힌 죄들을 모두 풀어 버렸습니다
이러다 꽃에 물리면 온통 당신의 향기가 독처럼 퍼질 것입니다
지금 떠나시렵니까?
나의 마음은 충분히 방목 중입니다
자선시
혈액이 흐르는 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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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의 순도는 친밀도와 비례합니다 공식입니다만 공식적인 것엔 도금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가까이 사는 나무의 잎들은 빈번히 접촉하지만 서로의 영양분을 공유하지는 않습니다
틈 될 때 커피 한잔하자는 말보다는 언제 잠깐 몸 좀 빌려 쓰자고 하는 게 낫습니다 택배 차량에서 잠시 만났다 헤어지는 화물들처럼 우리는 만나고 이별합니다 몸만 사용하는 게 가능하지 않다면 느낌은 혈액이 흐르는 외투일 것입니다 느낌을 벗고 만날까요 어떤 경우에도 느낌을 전당포에 맡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가슴 뛰는 설렘 속에는 이미 괴로움이 발생했습니다 그림자는 향기를 복사하지 못합니다 마음은 바빠서 몇 생을 후딱 딴살림 차렸다가 돌아오기도 합니다 시소의 양 끝에 놓인 듯 오르내리는 느낌들을 바라봅니다 |
감정의 적도를 지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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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를 지난 적은 있지만 주소지로 두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바람이 한 댓잎을 스치는 순간처럼 순식간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머뭇거림은 감정의 적도라 불러야 합니다 느낄 수는 있어도 머물지는 못합니다
그대에게 묻습니다 그때 그 순간을 아바나의 말레이시아라 불러도 되겠습니까 벗어둔 브래지어에 담긴 호수의 물결이라고 기억합니다 노랑이었습니다 그대의 혀에서는 물푸레 물푸레 수많은 잎들이 돋았습니다
기억의 퍼즐은 한 번도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오답만으로 채워진 사랑도 가능하리라 믿으며 감정의 좌표를 바라봅니다 어떤 위도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폭풍이 일어납니다 그대를 잃어버렸으나 사랑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오래전의 그날을, 그 밤의 설렘을 지금으로 데려오는 건 호안끼엠 호수에서 잃어버린 단추를 찾아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날의 입술과 숨결과 커다란 나뭇잎과 물에 젖은 망사 같은 공기만 떠오릅니다 나는 사랑의 지도를 완성할 수 없습니다 극을 향해 달려가기도 했습니다만 나를 떠나지는 않았습니다 감정의 적도는 굵은 허리를 도는 훌라후프처럼 여전히 움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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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창작과비평》 등단. 시집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귀가 서럽다』 『물 속의 불』 『상처가 나를 살린다』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장편소설 『청앵』, 산문집 『탐진강 추억 한 사발 삼천 원』 『이름만 이삐먼 머한다요』 『그리운 사람은 기차를 타고 온다』가 있음. 〈조태일문학상〉〈육사시문학상 젊은시인상〉〈전남문화상〉 등 수상. |

몸/살의 존재론과 사랑에 관한 시적 사유
ㅡ 이대흠의 신작시 읽기
인간의 실존을 논하면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화두는 사랑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물론 신과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가장 핵심적 화두는 사랑이다. 인간이 생물학적인 존재라는 것을 감안해보면 사랑은 필연적으로 성적인 욕망과 연결되어 있다. 사랑을 통한 몸/살의 존재론은 이러한 지점에서 탄생한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 현존재의 근원적 존재 방식을 실존으로 정의한다. 몸/살을 통한 사랑의 존재방식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실존의 형태이다. 그런데 몸/살로 인지하는 사랑은 낯설고, 그것을 인지하는 주체에 따라 감각의 실체는 각각 다르게 인식된다. 그만큼 몸/살이 인지하는 감각의 범위는 넓다.
이 글의 서두에서 인간 실존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사랑을 거론한 것은 이대흠 시인의 신작시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된 것이 ‘몸/살을 통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육체적이면서 감각적 사랑을 연상하게 해주는 이러한 화두는 이대흠의 시에서 보다 폭넓은 진폭을 보여준다. 이대흠 시인이 최근에 발표한 시들을 보면 시인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사랑이다. 시인이 가장 최근에 발표한 시 「사랑이여 나는 지금 부족함으로 무장했습니다」(시산맥 2020년 가을호)를 읽어보면, 그의 사랑은 부족함(결핍)에서 기인한 것이고 그가 최근에 사랑에 관한 시들을 쓰는 것은 시인의 가슴 속에 “뱉지 못한 말들이 별자리처럼 각인되어 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시인이 사랑에 대한 결핍을 느끼는 것은 “내가 당신께 가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당신에게 가버려서”이다. 즉 시인이 느끼는 결핍은 허전한 마음의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시인의 마음이 당신께 가버린 이유는 단지 마음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사랑에 대한 마음의 출처는 몸이기 때문에, 마음으로 느끼는 결핍은 필연적으로 몸을 통한 감각으로 연결된다.
당신을 볼 수 없을 때는 바람의 줄기를 헤아립니다
국숫발처럼 쏟아지는 바람 중 어느 한 줄기는 당신과 이어져 있을 것입니다 햇살이 내 살을 만질 때면 어떤 기척이 왔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의 작은 미동이 내게 전달된 것이겠지요
꽃을 보기 위해 세수를 합니다
신앙이 아니어도 아름다움에 대한 예의는 필요합니다
영업을 하러 가는 사람처럼 나는 준비합니다 나는 꽃에게 가장 좋은 살을 보일 것입니다
당신 앞에 선 듯 꽃 앞에 선 나는 몇 가지 표정을 지어보입니다
거짓말을 할 수는 있지만 살의 말을 숨기기는 어렵습니다 살의 떨림과 살의 향기를 그대로 노출합니다
당신이 살로 왔을 때 꽃으로 반응하던 내 살의 떨림을 어떻게 기록할 수 있을까요?
살이 말하고 살이 듣습니다
입술보다 먼저 눈동자보다 빨리 살은 소통합니다
당신이 꽃 피어서 나는 웃습니다
― 「에서의 산책」 전문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적 주체인 ‘에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의하면 에서는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이 낳은 쌍둥이 아들 중 첫째로 쌍둥이 동생인 야곱의 형이다. 이삭은 활달하고 남성적인 성격으로 들에 나가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이다. 그는 사냥에서 돌아와 시장할 때에 동생 야곱이 끓이고 있는 팥죽이 먹고 싶어서 장자의 권리를 동생에게 팔아먹고 아버지의 장자축복권도 동생에게 빼앗긴 바 있는, 결핍과 자유로움의 아이콘이다.
이대흠 시인이 그의 시에 ‘에서’를 등장시킨 것은 아마도 에서의 이러한 속성 때문일 것이다. 이 시에서 산책을 하면서 에서가 찾고 있는 ‘당신’은 신앙적인 차원에서는 그가 믿는 신이지만, 이 시에서는 살로 와서 꽃으로 피는 어떤 존재로 설정되어 있다. 1연에서 인간의 감각으로 인지되지 않는 신은 ‘바람의 줄기’로 헤아리거나 ‘햇살’로 어렴풋이 그 존재를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인은 2연에 와서 당신을 꽃으로 피어나는 존재로 은유함으로써, 선명한 몸을 지닌 존재로 변용한다.
이 시에서 화자가 꽃으로 현현된 당신을 만나는 방법은 ‘살’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숨기기 어려운 ‘살의 말’을 “살의 떨림과 살의 향기를 그대로 노출”하는 방법으로 당신과 만나는 것이다. 이것을 시인은 “당신이 살로 왔을 때 꽃으로 반응”하는 방식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시인은 “살이 말하고 살이 듣습니다 / 입술보다 먼저 눈동자보다 빨리 살은 소통합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사랑의 가장 본질적인 소통 방식이 살(육체)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철학자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로고스보다 더욱 근원적인 것이 아이스테시스(aisthesis)라고 밝힌 것과 연관지어 이해하면 그 의미가 더욱 명확해진다. 아이스테시스란 그리스어로 ‘감각’을 뜻하는데, 이는 참된 실재의 인식으로서의 ‘감각’이 각 사물 개체에 대한 올바른 지각 방법임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대흠 시인이 추구하는 ‘살’의 미학이 보다 깊은 철학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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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는 것만으로도 결은 발생합니다 숨결이거나 물결이거나 바람결이거나 한번 일어난 결은 번져서 끝까지 지워지지 않습니다
나의 파장과 당신의 파장이 만나는 순간을 파도가 쳤다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주파수가 맞으면 소리가 나오는 라디오처럼 당신의 신호를 기다립니다
그러나라는 당신, 당신의 그러나
당신의 기척이 내게로 전해질 때 나는 몸 밖으로도 핏줄이 흐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호흡에 나의 호흡이 묻혀갈 때 우리들의 심장은 서로를 흉내 내며 뛰었지요 보이지 않더라도 전파처럼 전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잠시 지지직거리며 나는 나에게 몰두합니다 이미 온 감기처럼 내 안의 깊은 곳에 숨어있는 당신을 찾아내었을 때 나는
어린 당나귀처럼 마구 나를 흘리고 싶어 견딜 수 없습니다 ― 「그러나를 수신하는 방식」 전문 |
알베르 까뮈는 그의 저서 『반항하는 인간』에서 인간이 부조리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는 창조적인 반항을 강조한 바 있다. 위에서 인용한 이대흠의 시는 ‘그러나’로 표상된 ‘당신’과 ‘나’와의 관계를 통해서 반항하는 인간으로서 자신의 실존을 들여다보고 있다. “있다는 것만으로도 결은 발생합니다”는 시인의 진술은 관념적 존재가 아닌 실재적 존재인 ‘몸’에서 ‘결’이 태어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나’의 대척점에 있는 또 다른 나로서 ‘그러나라는 당신’을 상정하고, 이원화된 이 두 주체가 만남으로써 진정한 ‘나’가 탄생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것은 화자가 화자 자신에게 몰두함으로써, 즉 “이미 온 감기처럼 내 안의 깊은 곳에 숨어있는 당신을 찾아”냄으로써 가능해진다.
여기서 시인이 찾아낸 ‘반항하는 인간’으로서 ‘나’는 “어린 당나귀처럼 마구 나를 흘리고 싶어 견딜 수 없”어하는 ‘나’이다. 이러한 철학적 존재론을 시인은 “당신의 호흡에 나의 호흡이 묻혀갈 때 우리들의 심장은 서로를 흉내 내며 뛰었지요”라고, 몸을 통한 사랑의 방식으로 진술한다. 이는 사랑이야말로 부조리한 삶 속에서 진정한 존재를 찾아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시인이 이미 터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에게서 문득 파닥이는 꽃을 받았습니다
5초간,
감정의 국경을 침범하지 않을 방법을 연구합니다
당신이 내민 꽃 떼를 받지 않을 수 없어서 나는 이름에 갇힌 죄들을 모두 풀어 버렸습니다
이러다 꽃에 물리면 온통 당신의 향기가 독처럼 퍼질 것입니다
지금 떠나시렵니까?
나의 마음은 충분히 방목 중입니다
― 「마음의 호랑에서 코끼리떼가 쏟아질 때」 전문
사랑은 몸의 작용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움직임이다. 화자는 “당신에게서 문득 파닥이는 꽃을 받았습니다”고 말한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감정의 국경’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이 시의 ‘꽃’이 실제의 꽃이 아니라, 사랑하는 감정으로서의 꽃임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꽃을 받는 일은 가슴 벅찬 일이지만, ‘감정의 꽃’을 선뜻 받아들이는 일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화자는 “당신이 내민 꽃 떼를 받지 않을 수 없어서 나는 이름에 갇힌 죄들을 모두 풀어 버렸”다고 말한다.
여기서 “이름에 갇힌 죄들”은 무엇일까? 이것은 이 시의 제목과 연관시켜보면 마음의 호랑(호주머니)에서 코끼리 떼를 풀어놓는 일이다. 이것은 화자가 자신의 마음을 어떤 제약으로부터 방목시켜서 자유롭게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의 감정을 받아들여 당신이라는 “꽃에 물리면 온통 당신의 향기가 독처럼 퍼질 것”임을 시인은 알고 있다. 사랑은 ‘향기’와 ‘독’을 동시에 품고 있는 꽃과 같은 존재이다. 이것을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전적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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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의 순도는 친밀도와 비례합니다 공식입니다만 공식적인 것엔 도금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가까이 사는 나무의 잎들은 빈번히 접촉하지만 서로의 영양분을 공유하지는 않습니다
틈 될 때 커피 한잔하자는 말보다는 언제 잠깐 몸 좀 빌려 쓰자고 하는 게 낫습니다 택배 차량에서 잠시 만났다 헤어지는 화물들처럼 우리는 만나고 이별합니다 몸만 사용하는 게 가능하지 않다면 느낌은 혈액이 흐르는 외투일 것입니다 느낌을 벗고 만날까요 어떤 경우에도 느낌을 전당포에 맡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가슴 뛰는 설렘 속에는 이미 괴로움이 발생했습니다 그림자는 향기를 복사하지 못합니다 마음은 바빠서 몇 생을 후딱 딴살림 차렸다가 돌아오기도 합니다 시소의 양 끝에 놓인 듯 오르내리는 느낌들을 바라봅니다 ― 「혈액이 흐르는 외투」 전문 |
인간은 이 땅에 존재하는 생물들 가운데 가장 고도화된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수많은 타자와 소통하고 다양한 감정을 공유하면서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거리에서 지인을 만나면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을 한다. 그런데 이 시의 화자는 이러한 말의 순도를 의심하면서 “가까이 사는 나무의 잎들은 빈번히 접촉하지만 서로의 영양분을 공유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리하여 화자는 “틈 될 때 커피 한잔하자는 말보다는 언제 잠깐 몸 좀 빌려 쓰자고 하는 게 낫”다고 말한다. 그런데 “느낌을 벗고” 몸만 사용하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시인은 이 ‘느낌’을 “혈액이 흐르는 외투”로 정의한다. 그러나 “느낌을 전당포에 맡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어느새 “가슴 뛰는 설렘”으로 괴로운 마음을 경험하게 된다. 여기서 ‘괴로움’은 “바빠서 몇 생을 후딱 딴살림 차렸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시소의 양 끝에 놓인 듯 오르내리는” 변화무쌍한 마음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황에 따라 “혈액이 흐르는 외투”를 함부로 벗었다 입었다 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몸은 외투 없이 살아가기가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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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를 지난 적은 있지만 주소지로 두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바람이 한 댓잎을 스치는 순간처럼 순식간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머뭇거림은 감정의 적도라 불러야 합니다 느낄 수는 있어도 머물지는 못합니다
그대에게 묻습니다 그때 그 순간을 아바나의 말레이시아라 불러도 되겠습니까 벗어둔 브래지어에 담긴 호수의 물결이라고 기억합니다 노랑이었습니다 그대의 혀에서는 물푸레 물푸레 수많은 잎들이 돋았습니다
기억의 퍼즐은 한 번도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오답만으로 채워진 사랑도 가능하리라 믿으며 감정의 좌표를 바라봅니다 어떤 위도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폭풍이 일어납니다 그대를 잃어버렸으나 사랑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오래전의 그날을, 그 밤의 설렘을 지금으로 데려오는 건 호안끼엠 호수에서 잃어버린 단추를 찾아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날의 입술과 숨결과 커다란 나뭇잎과 물에 젖은 망사 같은 공기만 떠오릅니다 나는 사랑의 지도를 완성할 수 없습니다 극을 향해 달려가기도 했습니다만 나를 떠나지는 않았습니다 감정의 적도는 굵은 허리를 도는 훌라후프처럼 여전히 움직입니다
― 「감정의 적도를 지나다」 전문 |
인간의 감정은 파도치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와도 같다. 그 배는 종종 적도 부근을 지나기도 한다. 이 시의 화자는 ‘감정의 적도’를 ‘머뭇거림’에 상응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화자가 이 시의 서두에서 “적도를 지난 적은 있지만 주소지로 두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바람이 한 댓잎을 스치는 순간처럼 순식간의 일이었습니다”라고 진술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머뭇거림’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화자는 문득 감정의 적도에서 만난 ‘그대’에게 둘이 만났던 곳의 ‘사랑의 좌표’를 확인하고 진실된 사랑을 점검하고 싶어한다. 화자는 그대에게 돌연 “그때 그 순간을 아바나의 말레이시아라 불러도 되겠습니까”라고 질문한다. 쿠바의 해안도시인 ‘아바나’와 말레이시아는 서로에게 낯선 지명이다. 낯선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나누는 일이야말로 낯선 두 도시가 만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랴, 화자는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둘이 느꼈던 사랑의 감정을 “벗어둔 브래지어에 담긴 호수의 물결이라고 기억합니다 노랑이었습니다 그대의 혀에서는 물푸레 물푸레 수많은 잎들이 돋았습니다”라고 진술한다. 화자는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어떤 사랑의 위도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폭풍이 일어”나지만, 자신이 끝내 사랑을 잃지는 않았음을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도 쉽게 “사랑의 지도를 완성할 수 없”음을 시인은 겸허히 수용한다.
끝으로 시인은 말한다. “극을 향해 달려가기도 했습니다만 나를 떠나지는 않았습니다 감정의 적도는 굵은 허리를 도는 훌라후프처럼 여전히 움직입니다”라고. 뜨거운 감정의 적도를 지나는 사랑의 배는 어딘가 새로운 사랑의 열도를 찾아서 지금도 항해를 지속하고 있다. 시인에게 있어서 사랑은 일체의 상식과 이론으로부터 벗어나 체험적 현실 그 자체와 만나고자 하는 일종의 몸을 통한 존재론적 실행 방식이다. 시인의 이러한 낯선 항해가 장차 그가 찾는 시의 신대륙을 향한 새로운 동력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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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희 ■ 시인 1996년 《경인일보》,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폐차장 근처』 『이불속의 쥐』 『고장난 아침』 『아득한 사랑의 거리였을까』, 평론집 『존재와 거울의 시학』이 있음. 현재 시립대, 동국대 등에서 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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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년 10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