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신재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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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어떻게 노래가 되는가 (1)
시를 노래하다 보니 어떤 시가 노래가 되기 좋은지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참 어려운 질문이다. 나도 늘 고민하는 부분이고 아직 이렇다 할 체계적인 이론을 세우지는 못했다. 행여 다른 작곡가들은 이에 대한 답이 있을지 나도 궁금하다. 시원하게 답을 하는 대신 내가 작곡한 노래들을 예로 내가 아는, 하는 만큼만 설명해보려 한다.
먼저 내용 면에서 노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시가 좋다. 우리 삶의 다양한 면면들이 시에 담겨 있기 때문에 내가 시를 좋아하는 것처럼 노래도 그렇다. 그러나 이 가치라는 것이 어떤 '거대 담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외려 거창한 관념만 앞세운 시들은 피하게 되고 식상한 표현이 없는 시가 좋다. 정지용의 「향수」를 읽으면 그림을 그리듯 묘사한 시골의 풍경이나 사철 발 벗은 아내의 모습, 짚 베개를 베고 누워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화가들이 별로 어렵지 않게 쓱쓱 스케치를 해도 그 대상의 특징을 금방 잡아내는 것처럼 말이 많지 않더라도 노래하고자 하는 대상의 특징과 그 속에 깃든 정서를 듬뿍 표현하는 시라면 더없이 훌륭하다. 내가 시를 보는 관점은 주로 내용인데, 그 표현 방식이 함축과 은유든 아니든 간결한 언어로 표현되어 있느냐를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 같다. 언어의 말부림이 탁월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장을 간결하게 표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군더더기가 적은 것으로 볼 수 있기에 그렇다.
시보다 노래 가사의 전개가 훨씬 빠르고 압축적이라는 사실은 간과하기 쉬우므로 시인들이 가사를 쉽게 보는 경향이 있다. 본인이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를 펼쳐놓고 유심히 들여다보면 왜 이 노래가 가슴을 울리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멜로디가 마음과 귀를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면, 그 매력을 지속시킬 수 있는 힘은 가사에서 나온다. 노래 가사가 내 이야기 같고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애창곡이 되는 것이다. 시든 노래든 오래 남는 작품들은 다 '내 이야기' 같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마음을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 개인의 인생이 나를 발견해가는 여정인 동시에 타인의 삶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대상이 되듯 노래는 시에게, 시는 노래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아닐까 싶다.
영화나 소설, 희곡 등 예술 작품의 형식 면에서 도입, 전개, 절정, 결말의 단계를 가지듯 노래도 인트로, 버스(브릿지), 코러스(훅), 아웃트로의 단계로 구성된다. 나의 경우는 시를 보면서 제목을 아주 중요하게 본다. 제목에 대부분 절정의 멜로디가 숨어 있기 마련이다. 도입과 전개는 절정에 비해 중요도가 약하다. 소리쳐 불러야 할 이유는 제목에 포함되어 있다.
새로운 길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나는 왜 새로운 길을 가야만 하는가. 날마다 지구는 돌고 오늘도 사람들은 지나다니고 새들은 여전히 하늘을 난다. 그런데 나는 왜 또 새로운 길을 가야만 하는가 말이다. 남자들은 전쟁에 끌려가고 집안에 쇠붙이들까지 모조리 빼앗기던 압제의 나날들 속에서 그는 투쟁, 결사 대신 "새로운 길"이란 말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노래했다. 얼핏 너무 평화로워 보이는 그 장면이 어둠 속의 다짐 같아 작곡했다. 그것도 밝게. 백 년 전의 그나 지금의 나나 그저 흘러가는 인생이 아니라 언제나 새 아침처럼 새로운 마음으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전해져 와 평안하다. 오히려 나날이 '여전한' 모습으로 나에게 머물러 있는 것을 경계하는 마음으로 노래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형식 면에서 이렇게 구성해 작곡하였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 도입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 전개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 절정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결말
이렇게 구성이 한눈에 보이는 시면 참 좋은데 잘 보이지 않는 시들이 대부분이다. 그것을 자기만의 안목으로 찾아내 구성해내는 것이 작곡가의 몫이라면 몫이겠다.
묘비명
김광규
한 줄의 시는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꿋꿋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남아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위 작품은 2013년에 발표한 음반에 수록되어 있는 시다. 행이 나뉘지 않아 잘 안보이지만 내용을 읽다보면 분명한 구성이 보인다. 예를 위해 행을 나눠서 보면
한 줄의 시는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꿋꿋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남아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이 시는 권력과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한 세상에서 시는 대체 무엇이며 시인의 존재는 무슨 소용인가 한탄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시인은 그런 세태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는 꿋꿋한 신념이 느껴져 그 부분을 절정으로 삼아 작곡했다. "비록"부터가 절정이며 결말이다. 대부분의 노래가 도입(인트로) 부분이 긴 것은 절정으로 가기 전 설명할 이야기가 많다는 뜻이다. 이 시도 절정을 외치기 전에 왜 소리 질러야 하는지에 대한 배경을 좀 길게 설명해야 했다. 소리를 지르기 위해서는 왜 소리쳐야 하는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가. 무턱대고 고음으로 소리부터 지른다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다. 내가 작곡하는 모든 시는 노래로 접한 적이 없다. 설령 다른 이가 노래로 작곡했다손 치더라도 나는 그것을 참고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곡을 쓰는 데 방해가 되므로 그 이미지는 지워야 한다.
처음 보는 시를 어떻게 노래의 구성으로 나누고, 곡을 쓸 것인가에는 서두에서 말했듯 제목이 그 큰 자리를 차지한다. 제목이나 주제가 명확해지면 이후 적절히 도입과 전개로 나누어 멜로디를 만들면 된다. 되도록 시어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작곡할 수 있다면 좋은데 그게 녹록지 않을 경우가 훨씬 많다. 앞서 언급한 대로, 노래의 전개는 상당히 빠르다. 뿐만 아니라 멜로디의 흐름상 배경이나 상황을 상세히 다 설명하기 어려울 때는 건너뛰어도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한다. 시에서는 꼭 필요한 문장이지만 노래에서는 문맥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소에 생략된 문장들을 많이 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버지가 퇴근하고 돌아오셔서 식사하고 계신다.”는 문장이 있다 치면, 가령 우리 일상에서는 “아버지 식사하셔.” 라고 간단하게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계속)

신재창 l
작곡가, 가수. 〈국어 교과서 아름다운 시노래 음반1〉, ‘노래로 만나는 시’ 연작인 〈눈 온 아침〉 등 6장의 음반, ‘삶의 시, 삶의 노래’ 연작인 〈김포행 막차〉, 자작곡 음반 〈길〉, 시노래 베스트 음반 〈조곤조곤 시노래〉 등을 발표하였다. 매월 시인 초청 〈수요시콘서트〉 등을 열어오고 있으며, 시인들과 함께하는 시노래 동인 ‘시노래마을’의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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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