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병철 | ||
|---|---|---|---|
Some fishing to remember,
Some fishing to forget
“Some dance to remember, Some dance to forget” Eagles의 불멸의 히트곡 <Hotel California>의 한 소절이다. 어떤 춤은 기억하기 위해 추고, 또 어떤 춤은 잊기 위해 춘다니, 이렇게 시적인 노랫말이 또 있을까? 때때로 노래는 시보다 더 위대한 시가 된다. 물론 음악보다 더 위대한 음악이 되는 시도 있다. “어느덧 대전 하이웨이~” 나는 낚시할 때 가끔 이 ‘호텔 캘리포니아’를 흥얼거린다. 그리고 저 대목에서 가사를 바꿔 부른다. "Some fishing to remember, Some fishing to forget" 이라고.
낚시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들이 있고, 또 어떻게든 잊어야 하는 것들도 있다. 이 기억과 망각의 논리는 낚시라는 행위 자체에 우선 적용된다. 앞선 출조에서 입질 받았던 패턴, 잘 통했던 채비, 입질이 집중되던 시간과 물때를 기억해내야 한다. 반면 놓친 물고기의 잔상은 빨리 잊어야 한다. 잘못된 경험과 정보를 머릿속에서 지워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잘 기억하고 잘 잊어버리는 사람이 훌륭한 낚시꾼인데, 나는 기억해야 할 것은 잊고, 잊어야 할 것은 굳게 기억한다. 그래서 형편없는 꽝조사를 벗어나지 못한다.
기억하기 위해 하는 낚시가 있고, 잊기 위해 하는 낚시가 있다. 또 한 번 장마가 오고, 단풍이 들고, 첫눈이 내리고, 다시 꽃이 피고, 매미가 울고, 얼음이 얼고, 계절이 돌아오고 돌아올수록 사랑하던 이들이 하나둘 곁을 떠나간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을 추억할 틈조차 주지 않는다. 삶이라는 지독한 경주는 뒤를 돌아보지 못하게,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게 우리를 채찍질한다. 그나마 낚시가 우리로 하여금 그 각박한 트랙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낚시를 통해 우리는 잠시라도 힘겨운 세상살이를 잊는다. 그게 잊기 위한 낚시다.

복잡한 세상살이를 잊는 순간, 그동안 기억 구석에 방치됐던 풍경들이 하나둘 뿌연 먼지를 털어낸다. 물론 낚시가 잘 되면 낚시에 집중하느라 다른 생각할 여유도 없다. 입질은 없는데 석양은 환장하도록 아름답게 저물고, 찌는 말뚝인데 케미라이트 불빛이 강물 위를 은하수처럼 흐를 때가 문제다. 찌 대신 온갖 추억들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
“이제 젊은 시절 내가 사랑했던 거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제시마저도. 하지만 여전히 난 그들과 함께 있다. 물론 이제 너무 늙어 훌륭한 낚시꾼이 될 수는 없지만 난 지금도 이 강가에서 홀로 낚시를 한다. 친구들은 하지 말라고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날이 저물어가는 계곡에 혼자 있을 때면 모든 존재가 내 영혼과 추억 속으로 스며든다. 빅블랙풋 강의 소리와 4박자의 리듬, 그리고 송어가 뛰어오를 거란 기대감…… 결국 모든 것들이 하나로 합쳐진다. 흐르는 강물처럼.”

낚시꾼들이 사랑하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오는 주인공 노먼 맥클레인의 독백이다. 팔순의 노조사는 강물에 몸을 담근 채 팔로마 노트 매듭을 묶으며 젊은 시절 자신이 사랑했던 목사 아버지, 자애로운 어머니, 일찍 세상을 떠난 동생 폴, 마을 축제에서 만나 결혼해 일생을 함께 산 아내 제시를 추억한다. 모두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제는 사라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 사라지고 오직 강물만 남았다. 평생의 추억이 흐르는 빅블랙풋 강에서 낚시를 할 때면 강물 소리와 바람, 무지개송어 입질, 후회, 상처,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의 음성과 눈빛이 하나로 합쳐져 영혼 속으로 스며든다. 노조사는 그 모든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낚시를 한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죽은 사람의 육체는 부재하는 현존이며, 현존하는 부재이다. 그러나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사라져 없어져버릴 때, 죽은 사람은 다시 죽는다”고. 그렇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살아서 기억하는 한 내가 사랑했던 이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직 잊기 위해 하는 낚시도 있다. 그런데 이 낚시는 정말 어렵다. 오래 사랑한 연인과 헤어지고서 그녀를 잊기 위해 뙤약볕 쏟아지는 갯바위에 올랐다. 발밑으로 파도가 부서지고, 거품 되어 사라지는 하얀 포말이 마치 부질없는 인연처럼 느껴졌다. 잊어야지, 잊어야지.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루어를 던지고 또 던졌다. 그런데 젠장, 입질이라도 좀 있어야 잊을 게 아닌가? 깻잎만 한 광어, 손바닥만 한 우럭, 깔다구조차 물지 않으니 빈 바늘에 딸려 오는 건 오직 그녀 얼굴뿐이었다. 잊으려 하면 할수록 더 선명해진다. 낚시를 하면 마음이 정리되기는커녕 더 심란해진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어느 날인가는 앞강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오래 당신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것처럼 마음에서만 사는 아득한 것들은 또 어떻게 저 별의 시간을 건너가게 되는지”(강경보, 「우주 물고기」)라고 묻기도 한다. ‘마음에서만 사는 아득한 것들’은 결코 저 별로 건너가지 못하고 이 별에 머문다. 갯바위, 좌대, 갑판, 강물 속, 밸리보트, 뗏장수초, 테트라포드가 우리들의 별이다.
얼마 전 아버지를 뵈러 대호만에 갔다. 아버지는 당진 출포리에서 낚시 민박을 하신다. 지난해 위암 수술을 받으셨다. 다행히 수술은 잘됐지만 자식 마음은 늘 속상하다. 아버지가 만들어두신 좌대에 앉아 두칸반대를 던져놓고 속으로 하염없이 울었다. 수술받고 많이 야윈 아버지, 아버지가 끓여주신 옻닭백숙, 백숙은 손도 못 대고 국물만 드시는 아버지, 아버지 앞이라 울진 못하고 그저 먹기만 하는 나, 내가 먹어치운 닭 한 마리, 뼈대만 남아 앙상한 낚시 좌대, 아버지 따라 야윈 대호만 물, 먼지 쌓인 아버지 낚싯대, 햇살 내려앉은 장독대, 덜 마른 빨래, 아무것도 모르면서 천진한 토끼와 닭들, 유난히 푸른 하늘, 반짝반짝 빛나는 약통, 아버지 혼자 외로운 물가…… 그날의 풍경들을 나는 또 오래eh록 기억해야 할 것이다. ■

이병철 l
2014년 《시인수첩》 시, 《작가세계》 평론 등단. 시집 『오늘의 냄새』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 평론집 『원룸 속의 시인들』, 산문집 『낚; 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사랑의 무늬들』이 있음.
■ 25년 경력의 낚시꾼으로 FTV, FSTV 등 낚시방송에 출연했으며, 월간 《낚시춘추》에 조행기를 연재하고 있다. 낚시 의류업체 잔카, 조구업체 아이마루베이트로부터 후원을 받는 프로스텝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 2019년 러시아 아무르강 정글에서 ‘지구상 모든 연어의 아버지’로 불리는 신령한 물고기 타이멘을 낚기도 했다.
—
2022년 6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