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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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신수진 

 2022년 4월 공시사 월평 


 

  

 

 

 

초등학교 회장 선거와 공사 중인 우리의 미래

  

● 신수진

 

 

 

 

 

 

 

  1

  내가 학교 다닐 땐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반장을 했는데 요즘은 3학년부터 선거를 한다. 아이는 첫 회장 선거에서 당당하게 연설을 하고 다른 후보 5명을 제외한 거의 학급 전원의 표를 얻고 회장에 당선되었다. “엄마! 저 회장 됐어요!” 아이가 책가방을 멘 채 뛰어들어와 와락 안긴다. 공부 잘해서 받은 상장보다 친구들의 인정을 받아 행복했다는 아이. 네가 웃으니 온 세상이 웃는다.

 역사와 정치에 관심이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 대선을 상상 밖으로 예의주시했던 아이는 리더십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왔다. 유튜버나 아이돌 건물주가 꿈인 시대에 아인슈타인의 업적과 케네디의 비전을 가진 대통령이 되겠다는 아들아, 너의 첫 출발을 축하한다.

  기러기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따뜻한 곳으로 4만 킬로미터의 대장정을 떠난다. V자 대열을 이루고 맨 앞에서 하늘을 가로지르는 리더의 날갯짓은 양력을 발생시켜 뒤따라오는 동료들의 비행을 돕고, 끊임없이 큰 울음소리를 내어 지친 동료들이 낙오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함께 갈 수 있도록 독려한다. 리더는 거친 바람을 가장 먼저 맞으며 가는 자이고, 최적의 항로와 고도를 찾기 위해 가장 멀리 보는 자이며, 천적의 타겟이 될 때 가장 먼저 자기 목숨을 희생하는 자이다.

  나는 내 아이가 기꺼이 그러한 길을 가는 리더로 성장하길 기도한다. 아이가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가장 좋은 때에 활주로를 박차고 자기의 창공으로 나아갈 것임을 믿는다. 가장 드넓은 자신의 하늘을 가질 것을 믿는다. 이제 막 날아오른 어린 기러기들은 처음 가는 길 위에서 지금처럼 계속 도전과 모험을 즐기면서 자신의 가능성을 갱신하고 리더의 역할을 자처하며 함께 나아갈 것이다.

 

 

  2

시는 자기의 치부와 부끄러움을 소환하고 고백하는 장르이며 스스로를 제물로 바쳐 기도로 지은 집이다. 시에는 영웅의 전리품이나 승리의 월계관보다는 피비린내 나는 배신과 잿더미가 된 폐허가 도사리고 있다. 기쁨과 행복의 충만한 순간들이 부질없이 스러지고 난 뒤 혼자 남은 자의 절규와 눈물이, 기억하는 자의 허무와 비통이 거기에는 있다. 어떤 결핍과 과잉 속에서 어떤 광기와 슬픔 사이에서 현현되는 기적, 그 몰락의 단말마가 바로 시다.

  

  

모든 게 분명해졌다.

밤이 끝나면 아침은 늘 그렇게 온다.

 

뭐지 그 표정은

왜 그렇게 웃는 거야?

 

겨우 일부만 살아남은 뭉개진 표정으로

기억에 의지한 채 묻는다.

안 봤으면 좋았을까.

 

힘드네.

목소리는 낯설지만

얼굴은 조금씩 분명해진다.

그 말을 듣는 건 누구나 힘들다.

 

어떤 거미는 사랑하는 이를 칭칭 동여매고 집어삼킨다는데

서로를 알고 있다는 건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인가.

그곳은 얼마나 멀리 있는가.

아무도 모르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도

오지 않을 것 같은 아침에

지고 만다.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지만

삶은 언제나 힘에 부친다.

 

어제의 사랑이 씻겨나갈 것만 같아

칫솔에 물만 적셨다.

― 여태천, 「도망갈 곳이 없다」 전문(《공정한시인의사회》, 2022년 3월호)

 

   

밤이 지난 후 어김없이 도래하는 아침이면 어둠에 감춰졌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미 벌어지고만 현실, 예기치 못했던 사건, 돌이킬 수 없게 된 관계, 걷잡을 수 없는 감정. 이 엉망진창의 사태를 맞닥뜨리면서 ‘나’는 마침내 “도망갈 곳이 없”는 하루를 명징하게 자각한다. “어제의 사랑이 씻겨나갈 것만 같”은 불안과 좌절 속에서 ‘나’는 교미가 끝나면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거미의 생태를 들어 “서로를 알고 있다는 것”이 어디까지이며 그곳은 얼마나 멀리 있는지 회의한다.

 최근 아프리카 무당거미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가 과학저널 ‘동물 행동’에 발표되었다. 수컷은 교미 도중이나 직후 암컷에게 잡아먹히는데, 연구자들은 많은 경우 수컷에게 앞다리가 없다는 데 주목했다. 도마뱀과 같은 파충류나 일부 소형 포유류가 포식자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자기 몸의 일부를 스스로 자르는 행동처럼 수컷 거미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자신의 앞다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앞다리를 내어준다고 해서 잡아먹히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암컷이 평균 17분가량 다리를 먹느라 수컷에 대한 공격 빈도가 줄어들 때 짝짓기를 길게 유지할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다.

시인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과 “오지 않을 것 같은 아침” 사이를 진자처럼 오가며 “도망갈 곳이 없”음을 예감한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끝없이 벌여야 하는 이 아비규환의 사투는 자기 보존의 미명 아래 타자에 대한 증오와 차별과 배제와 폭력과 살육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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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 위에 막 앉기 시작한 딱지를 굳이 떼어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나’는 통각과 부끄러움과 시체와 인간이라는 환상 속에서 현기증을 느낀다. 마치 만화경 속에서 굴절되고 극대화된 각도의 컷들이 꽃가루와 뒤섞여 돌아가듯 “상처에 오래 슬은 구더기와 괴사하는 살점과 송장벌레와 개미와 벌”을 지나가고 지나간다. “흰곰팡이 푸른곰팡이 붉은곰팡이 검은곰팡이”가 다투어 피어나는 이 세계는 “진행 중인 죽음”이 한창이다.

 곳곳에서 넘쳐나는 타살과 자살의 흔적들과 그 죽음의 시체들을 먹고 자라나는 “느리고 비리고 영양분이 풍부한 광경”은 “네가 진짜루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잊게 만들고 “방전된 채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막 생기기 시작한 딱지를 거듭 떼어내는 그런 점잖지 못한 짓”을 멈출 수 없는 ‘나’의 강박은 약육강식의 본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생태계와 그 생리를 굳이 감추려 들지 않는 노골적인 패러다임에 대한 환멸로부터 온다. 그것은 짝짓기와 동시에 상대를 잡아먹어버리는 암컷 거미의 식욕과 잡아먹힐 것을 알면서도 구애하는 수컷 거미의 성욕처럼 무섭고 징그럽고 가엾고 처참한 것이기 때문이다.

 삶 위로 죽음이 산재하고 퇴적되는 카니발의 현장에서, 누군가의 비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죽음을 파헤치는 삶이 난무하는 이곳에서, “네 친구는 혓바닥이 갈라진 뱀”이고, “발굽이 갈라진 부정한 돼지”이며, “눈동자에 진입금지 표지판이 걸린 염소”, “맨몸으로 시행착오에 목숨 거는 지렁이”, “먹은 구멍으로 내뱉는 말미잘”이 된다. 이 난개발의 현장은 여전히 진행중인데 그것은 “꼭 무덤을 파는 것 같고” “꼭 무덤을 덮는 것 같고” “꽃 무덤을 엎는 것 같”다.

 두 편의 시에서 비정하고 눈물겨운 싸움으로 점철된 세계는 언제나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다. 잡아먹거나 먹힐 수밖에 없는 승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이거나 오지 않을 것 같은 아침, 상처의 반복과 딱지를 떼어내며 책 속으로 망명하는 영혼. 이토록 세계는 도망칠 수 없는 막다른 곳이자 제 스스로 꽃 무덤을 파는 곳이다. 세계는 분주히 파고 또 파고 때로는 덮고 다시 엎기도 하면서 아름다운 삽질을 계속할 것이다. 지칠 줄 모르는 그 소란스러운 공사와 개발은 결국 무언가를 부수고 지으면서 ‘나’의 모양과 좌표를 찾아갈 것이고, ‘우리’의 고도와 지형을 이루어갈 것이다.

   

   

  3.

다시 아이의 초등학교 회장 선거로 돌아가 보자. 선거를 며칠 앞두고 아이는 스케치북에 쓴 연설문을 고치고 또 고쳤다. “1학년 때와 2학년 때를 떠올려보니 저는 친구들을 도와줄 때 가장 행복했습니다.”라고 시작하는 아이의 글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공약이 있었다. “첫째, 공정한 회장이 되겠습니다. 저는 약속을 잘 지키고 정직하게 일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반 모두가 평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둘째, 따뜻한 회장이 되겠습니다. 저는 어려움에 처한 친구가 있으면 제일 먼저 달려가서 돕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반 모두가 웃음을 잃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셋째, 소통하는 회장이 되겠습니다. 저는 친구들의 의견을 언제 어디서나 경청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반 모두가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써진 글. 지우개 자국이 여러 번 남도록 고심의 흔적이 역력한 연설문을 보니 ‘어? 내 아기 어디 갔지?’ 싶었다. 아이는 신기하다. 나를 울린다. 사랑을 몰랐던 나를 성장시킨다. 아이가 나를 진짜 엄마로 만들어간다. 온 생애로 나를 가르치는 것은 오직 이 아이의 사랑뿐이다.

어른들의 세상도 아이가 만들고 싶은 ‘우리 반’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곳은 누군가가 탈락되어야 내가 살아남는 오징어게임 속의 데쓰 매치가 아니라 한 걸음씩 다가가서 새끼손가락에 걸려 있는 친구를 구해주고 다함께 살아나는 그런 세상일 것이다. 학교 앞에서 만난 반 친구들은 아들이 학교에서 인기가 많고, 수학경시대회에서 만점을 받았고, 모르는 문제를 잘 설명해준다고 자랑스러워하며 말해주었다. 급식 시간에 누군가 음식을 쏟았을 때와 아픈 친구가 토했을 때 자기 손수건으로 바닥까지 깨끗이 닦아주는 아이라고도 했다. 엄마한텐 왜 이야기를 안했냐고 하니 점수가 중요하지 않고 친구들을 도와주는 건 당연한 거라서 말을 안했다는 아이. 바쁜 엄마 때문에 보살핌 대신 스스로 컸던 아이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궂은일을 나서서 하는 마음으로, 약한 친구를 변호해주는 마음으로, 어려움이 생겼을 때 참여하는 마음으로, 친구를 향해 외친다. 

우. 리. 함. 께. 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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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진 I

201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201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 〈한국안데르센상〉 아동문학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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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