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송정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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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최종 형태
또깍또깍 저번에 TV에선가
눈을 가리고 코를 막은 사람이
양파 한 덩이를 사과처럼 베어 먹는 것을 봤어
아삭아삭 자신이 정말 사과를 먹고 있다는 굳은 믿음이
입꼬리에 떠오르더라
또깍또깍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눈물 나게 매운 심장을 통째로 평온하게 씹어 삼키려면
무엇을 가리고 어디를 막아놔야 할까
또깍또깍 아 이건 다른 얘긴데
손톱 발톱이 왜 딱딱한지 아니
몸의 끝이기 때문이래
어떤 시간이 심장으로부터 흐르다가
차마 몸 밖으로 떨어지지 못하고
끝에서 굳었기 때문이래
또깍또깍 그러니까 지금 내가 자르는 건
굳은 시간이란다
봐봐 나는 이렇게 하얀 부분이 없도록
바짝 잘라내는 게 좋더라
그가 검지로 바닥을 꾹꾹 찍어눌러
흩어진 시간을 손바닥에 모은다
두 손바닥이 휴지통 위에서 탁탁 교차한다
나는 떨어지는 그의 시간을
고통 한 줄 없이 평온하게 펼쳐져 있는 그의 미간을
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람은 죽어서 데이터가 되지
TV를 켜자 소리 없는 방이 꺼졌어
죽음들을 하나의 숫자로 부르는 목소리
이상하지 이곳에는 묘지가 없다는 게
죽은 사람은 매일 이렇게 많은데
어릴 적엔 밤이 길었는데
어른이 되고서는 낮이 길어
나의 이마를 눌러 주저앉히는 투명한 손가락
일어서려는 마음을 꺾는 일이 손가락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
선 하나를 통과하면 또 다른 선 다시 새로운 선 선 선
선과 선 사이에 낀 무수한 죽음들
끝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른다는 것은 지독한 공포야
딸깍딸깍 볼펜 소리에도
악의는 너무 쉽게 차오르고
우연한 눈빛 하나에도
전쟁은 시작돼
그러니까 우리는 대체로 엉뚱한 곳에 화를 내고 있어
죽은 사람을 두려워하던 때에서
산 사람이 더 두렵던 때를 지나
지금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질서들이 두려워
시스템
이 매끈한 단어가 나는 너무 두려워
멈춘 육체는 언제나 빠르고 정확하게 치워지고
죽음 앞에 붙어 있던 긴긴 문장들도 말끔히 지워지지
하나의 숫자가 되어 패턴에 매장된 이들
데이터에 애도하기란 쉽지 않아
빠르게 도는 회전문 안에 갇힌 것 같아
빠져나갈 타이밍을 모르겠구나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한 채로
나는 무한히 돌고 있어

송정원 l
2020년 《시인동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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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호 공시사의 시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