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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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도경 

 

 

 

                                         

정확하지만 낯선

   

 

    

  

밤의 서문을 연다 유영하듯이 밤을 가른다 손가락에 밤이 낄지라도 앞으로 나아간다 문장은 다음을 모색하고 거대한 성벽 같은 밤을, 갈라도 끝이 없는 바다 같은 밤을

 

세계는 오직 낮과 밤이 있었는데

나는 밤만을 넘어서고 있다

 

낮에는 구심점처럼 이불 속 내가 있고

밤의 내가 밤을 넘어선다

 

신화 속 밤과 유사할지라도

무형은 무형으로 해석할지라도

 

시는 전진을 멈추지 않는다 

 

* 

 

어두워도 알아챈다 이곳은 처음과 끝의 공간이라는 것을

 

노인의 나는 태아의 나와 가깝다

시를 유지하는 힘은 여기서 빌려온다

태아의 내가 노인의 나로 다가가는 일이

노인의 내가 태아의 나로 다가가는 일보다 쉽다는 것을

죽음을 유사하게 흉내 낸다

탄생은 항상 바로 뒤에 죽음이 있었고

죽음이라는 문턱을 넘으면 생명이었다

나는 이질적인 공간을 바라보는 이방인이면서

내부를 책임지는 질서이기도 하다

이 역설적인 구도는 어둠을 기반으로 움직인다

어둠이 대상의 움직임을 마리오네트처럼 조종한다

춤을 추고

세상으로 가득한 언어로 노래를 부른다

하나의 배출이며

하나의 연극이다

배역은 나일지라도

수많은 페르소나가 담겨 있다

밤을 닫는다

닫힐지라도 이곳의 연기는 끝나지 않는다 

 

*

   

낮의 나는 시어가 쏟아지는 끈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생각에 걸려 있는 이 끈은 밤에서 비롯됐음을 느낀다 어젯밤이 오늘의 아침과 연관되어 있는 이유를

 

나의 주름과 태아의 주름, 노인의 주름이 이어지는 파도와 같은 밤을

 

햇빛은 밤을 밀어낸다 밀어내도 그림자 속에는 밤의 어원이 담겨 있다 또 다른 밤이 오고 있다 또 다른 밤이 죽음이 되고 있다 누군가가 죽을 때마다 밤은 다른 물결로 짙어진다 밤은 다른 밤으로 이름을 옮기며 지속되고 있다

 

언어는 새로운 배열과 규칙으로 이 밤을 해석해야 한다 시를 낳는 시로서 하나의 역사가 되어야 한다

 

 

 

 

  

 

 

                          

생을 지우는 날들            

   

  

     

   

붉었나

 

조금 까맸나

 

하얀 드레스를 입은 네가

피가 묻어나는 네가

 

조금 어두웠나

 

밤이었나

 

밤을 피로 육체화했나

 

그런 시간이면 너는 항상 나를 구원해준다

내 옆에 네가

내 뒤에 네가

내 안에 네가

내가

혼자 있지 않다고 말해준다

귓속말은 자장가처럼

밤의 운율처럼

심장의 리듬처럼

 

조금 격정적이었나

 

조금 불온했나

 

예배 시간이라는 환각 속에서 너를 향해 걸음을 내딛는다

전쟁이라는 환멸 속에서 너를 잊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해가 뜨면

좋겠다고

그런 하늘이었으면

우리의 시작과 어울리겠다고

 

밤에만 할 수 있는 내일에 대한 자장가를 부른다

 

 

 

 

 

 

 

 

 

 

 


 

공시사의시선-김도경.jpg

김도경 l

2021년 《아시아》 등단. 시집 『숨과 숲의 거리』가 있음. 〈심훈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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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호 공시사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