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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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신재창 

 

 

 

 

말, 시, 그리고 노래

 

 

 

 

  지난겨울 강원도 어느 행사에 노래하러 갔다가 초대 시인의 이야기가 인상 깊어 가슴에 담아 왔다. 시작(詩作)에 관한 이야기인데, 예전에는 종이에 시를 적어서 완성될 때까지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며 해어질 때까지 읽어보고 또 읽어보고 수정하고는 하였는데 핸드폰이 생기고 나서는 핸드폰에 메모를 하게 되더란다. 핸드폰에 메모하는 것이 편하고 참 좋은데 막상 시를 시집에 수록하려 할 때는 이전과 다르게 다시 수정해야 하는 일이 잦기에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보니, 종이에 메모할 때는 그 시의 첫 시상부터 수정되는 과정까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어서 그 감동의 순간을 고스란히 곱씹어 볼 수 있고 또 입으로 계속 읽어보면서 입에 걸리는 부분은 자연스럽게 고칠 수 있었지만 핸드폰에 메모하면서부터는 그 과정이 축소되더라는 것이다. 별스럽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크게 감동이 되어 그 말을 지금도 가슴에 품고 있다. 정희성 시인의 이야기다. 그의 시는 어렵지 않다. 현란하지 않고 어지럽지 않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그의 말은 너무나 적확하여 덧대거나 뺄 말이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작심하고 달려들면 그의 시는 족히 수십 편은 노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 말의 출렁거림이 시집을 덮고 난 뒤에도 오래 남아 있는 것을 내 귀가 아는 것처럼 말이다.

  상서(尙書)에도 시는 뜻을 말하는 것이고 노래는 그 말을 길게 뽑는 것이라 했으니 입에서 다듬어진 시가 노래가 되는 것은 지극한 순리 아닌가. 가사를 다듬고 넣고 빼고 하는 일이 나의 일이니 시를 봐도 그렇게 보이는 것이 어쩌면 직업병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언어는 요설이 없다는 것이고, 그의 시는 노래와 다름없다는 사실이다.

 

   1930년 김억 시인은 동아일보에 연재한 「격조시형론소고」에서 “음악적 고려를 하지 않은 시들은 산문에 불과하다”고 했다. 산문과 시의 차이가 음악성을 기준으로 함을 뜻함일 텐데 이 음악성이 어디서 오는가를 곰곰 살펴보면 아마도 비밀은 ‘입’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말이라는 것은 흘러가는 것이고 흐르는 것에는 율이 깃드니 머리에서 내려온 시가 가슴을 통해 입으로 나오는 과정 어딘가에서 음악적 색채감이 더해지는 것이라면 입이 그 최종 관문이겠다. “시란 사람의 마음이 사물에 감동되어 말로서 표현된 것”이라 시경에서도 이르고 있으니, 무언가에 감동된 마음이 입을 통해 나오기까지, 또 그 시가 다른 이의 마음을 공진시키기까지 어떤 프로세스가 작동함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시를 지음이 어려운 것은 말과 뜻이 함께 아름다워야 함이라

   담긴 뜻이 깊으면 음미할수록 맛이 더욱 깊고

   내용은 있으나 말이 익지 못하면 거칠어 뜻을 펴지 못한다

 

  고려 말 문장가 이규보도 논시(論詩)에서 시는 내용과 말이 함께 아름다워야 함을 전제하고 있다. 통찰의 깊이 역시 그에 상응하여야 하고 내용과 말이 함께 아름다워야 함이니, 알면 알수록 시를 짓는다는 일은 참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노래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시를 노래로 작곡을 해보면 내용은 좋은데 입에 턱 걸리는 소리가 많아 노래가 되지 못하는 시나, 미사여구는 매끄러운데 알맹이가 없어 작곡해봐야 허공의 메아리 같은 노래가 될 것이 뻔한 시들이 꽤 있다. 또 어느 시는 시안이 확 띄지만 앞뒤 문장들이 시상을 엉뚱한 데서 끌어오는 바람에 흐름이 이어지지 않아 노래로 만들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반대로 잘 짜인 좋은 시들은 단어 하나하나 너무나 적확하여 대체어가 안 보인다. 원래 거기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들어맞는 말들의 조합이라 낯선 단어가 보여도 통일성을 해치지 않는다.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좋은 시들은 시 전체가 시안이고 전체가 하나의 보석이라 어느 한 구절만 유난히 빛나는 가분수가 아니었다. 혼자 궁리해보건대 ‘낯설게 하기’란 낯선 단어를 집어넣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상한 시를 만들라는 것이 아니라, 시상의 전환과 진폭을 넓히기 위해 낯선 단어를 사용하되 시 안에 완벽하게 녹아들도록 써야 함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본말이 전도된 듯한 시들을 보며 이리저리 궁리해보는 생각이다. 여하튼 노래하기 가장 어려운 시는 이른바 난해시다. 시 한 편이 그냥 춘추전국시대다. 노래로 치자면 ‘판단불가’다. 랩 경우만 해도 가사는 많아도 전체의 흐름에 맞게 조화와 스토리가 있고 완벽한 기승전결의 라임이 있다. 심지어 데스메탈조차도 줄거리가 있는데 벌거벗은 임금님 같은 난해시가 이렇게 오래 득세하는 세태를 납득하기가 힘들다. 단지 나이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모든 시는 정(精)에서 출발한다고 했으니 아마 그 어디쯤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그래도 이곳 지면에 발표되는 시들을 보면 그런 ‘정’이 통하는 좋은 시가 많아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언어를 보면 노래가 보이게 마련인데 이번 3월호에도 여러 편이 있었다. 그중 김우전이라는 시인은 (나로서는) 처음 보는 이름이었지만 필시 그는 ‘노래’를 지니고 있을 거라 생각이 든다. 대체 이런 시인은 어디 계시다가 이제야 보이는지 농담 반 궁금함 반 물었더니,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만난 시가 좋기에 기억했다가 초대했단다. 그런가 보다 했지만 3월 내내 그 말이 맴돈다. 비행기로 씨 뿌리고 농약 치고 세상을 호령하는 거대한 농장들도 많겠지만 이렇게 숨어 있는 아름다움의 씨앗들을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가꾸는 밭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이, 내 일이 아님에도 고맙게 느껴진다. 내가 세상에 와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의 첫째는 노래를 짓는 일을 업으로 삼은 일이고 둘째는 이런 시인들을 만나 동시대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시노래마을 동인으로 활동한 이후 팝을 부르지 않는 이유도 우리말이 이렇게 오묘하고 아름다운데 굳이 타국의 언어로 노래할 필요를 못 느껴서이다. 나는 어쩌다 시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가슴에 가닿을 노래 한 소절 지으려 몸부림치다 시와  운명처럼 만나게 된 것이다.

    

    

   매미

             박기섭

 

   한 이레나 보름쯤을 살다 갈 목숨이라도

   그대 앞섶이면, 그랬으면 했습니다

   청수국 이울던 저녁, 실컷 울고나 갈지라도

 

   잔뜩 움켜쥐고는 끝내 놓지 못할망정

   그대 생각이니, 그러려니 했습니다

   애매미 울고 간 자리, 울음집만 남을망정

   ㅡ「서녘의, 책」(발견, 2019)

    

    

  알면 알수록 우리 시의 말부림에 숨이 막힌다. 초장 중장 종장을 거꾸로 뒤집어도 혹은 1연과 2연을 뒤집어도 아니 그냥 밑에서부터 읽어도 다 완벽하다. 저런 호흡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말은 호흡이고 리듬이고 라임이고 박자고 하모니고 노랜데 중요한 건 누구에게 배워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고 그것이 서글픈 일이다. 뜻을 구하는 자에게 하늘이 주신다니 다행이라면 다행스러운 일이고 그곳이 내가 있어야 할 자리지 싶다. 어려운 말 하나 없이 숨결 하나 흐트러뜨림 없이 마음을 흔들다니 한철 매미나 되고 싶다. 말의 숨과 어절, 소리를 만들어내는 성음과 지우는 소음, 강약과 높낮이와 길이를 시간의 흐름대로 종이에 옮겨 놓은 것이 악보다. 우리 시와 노래의 미학적 동질성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좀 더 얘기하려 한다.    

 

      

  근래 시 짓는 무리들이 풍아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겉으로만 거짓 단청을 꾸며 한때의 기호만 맞추려 하네

  뜻은 본래 하늘에서 얻는 것이므로 쉽게 이르기 어려우니

  스스로 얻기 어려운 줄 앎으로 인하여 화려함만 일삼아

  이것으로 여러 사람을 현혹시켜 뜻이 없음을 가리려 하네

  이러한 사조가 팽만하여 사문이 땅에 떨어졌네

    

    

 앞서 언급한 논시(論詩)의 이어지는 내용이다. 여기에 쓰지는 않았지만 이런 주장을 편다고 혼자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밑에 나오니 그때나 지금이나 어찌 이리 같은지 신통할 따름이다. 풍아(風雅)란, “‘풍’은 풍교(風敎)의 시(詩)로 민요류(民謠類), ‘아’는 엄정하고 품위가 높은 음악시(音樂詩)를 말한다. 이 뜻이 전화하여 시가(詩歌)나 문장(文章)의 길을 뜻하고, 더 광범위하게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 속세를 떠난 풍류 전반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두산백과에 나온다. 풍아라는 말 자체에 음악시를 포함하고 있으니 시의 격이 떨어지면 노래의 격도 자연 떨어지게 마련이라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진다. 뜻이 빈하여 가리려는 현란한 시들의 범람에도 하늘의 뜻을 구하는 이들이 적잖다는 것, 그리고 지을 노래가 아직 많다는 사실에 마음을 기대본다. 게다가 나는 여전히 「신의주 단동에서」가 좋고 「저문 강에 삽을 씻고」가 좋고 「뿔을 적시며」가 좋다. 이유 없이 「물통」과 「겨울밤」, 「길음시장」과「모래내 종점」이, ‘사평역’이 좋고, 얼굴도 모르는 ’생비량 할머니’가 그립다. ‘2822년 임술년 어느 봄날’에도 곰곰이 시를 구하는 이와 또 좋아하는 시를 들여다보며 노래를 지을 누군가가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

 

     

   그리움 다 남겨두고

                          서정홍

 

   남편 일찍 여의고, 사십 년 남짓 혼자서 농사짓고 살던 생비량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둡도록 방에 불빛이 없어 들여다보니 앉은 채로 눈을 감으셨습니다. 마을 이장님과 할머니 수첩 속에 적힌 자식들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습니다.

 

   서울 사는 큰아들은 "차가 꽉 막혀 조금 늦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전 사는 둘째 아들은 "맞벌이하는 마누라 돌아오면 함께 가겠습니다." 부산에서 이혼하고 혼자 산다는 큰딸은 술에 취해 "정말 돌아가셨습니까? 유언 같은 거 안 했습니까? 논밭들이 많은데……" 마산 역 앞에서 채소장사를 하는 막내딸만은 울면서, 소리 내어 막 울면서 "예에, 지금 당장 가겠십니더. 고맙십니더."

 

   생비량 할머니는 제 뱃속에서 나온 자식들 얼굴 한번 못 보고 돌아가셨습니다. 죽는 것도 어렵다고, 죽으면 살아 있는 사람 귀찮게 한다고, 그래서 낮에 죽더라도 자식들 퇴근하고 돌아올 무렵에 알려달라더니, 마지막 소원대로 그 무렵에 돌아가셨습니다. 낡은 벽지만큼이나 오래된 그리움 다 남겨두고……

   ㅡ「내가 가장 착해질 때」 (나라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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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창 I 

작곡가, 가수. 〈국어 교과서 아름다운 시노래 음반1〉, ‘노래로 만나는 시’ 연작인 〈눈 온 아침〉 등 6장의 음반, ‘삶의 시, 삶의 노래’ 연작인 〈김포행 막차〉, 자작곡 음반 〈길〉, 시노래 베스트 음반 〈조곤조곤 시노래〉 등을 발표하였다. 매월 시인 초청 〈수요시콘서트〉 등을 열어오고 있으며, 시인들과 함께하는 시노래 동인 ‘시노래마을’의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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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