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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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천수호 

이달의시인-천수호.png

 

 

  [이달의 시인] 천수호
  신작시: 흰 눈의 장례식 / 항적 / 저기는 아직 밝네요
  자선시: 사월의 것을 그대로 두어요 / 죽은 사진이 산 사람을 옮기고

 
  [시인론] 박소란 "밤을 위한 요술"

 

 

 


신작시


 

 

 

 

 흰 눈의 장례식
    


 
 

  잠깐 멈췄다

  허공에 떠 있는 눈발처럼

 

  신발에 묻은 눈을 털듯 가볍게 갈 수 있으려나

 

  사람과 거리를 두는 방법을 몰라서

  멀리서 온 눈은 창틀에 쌓이고

 

  낯선 곳으로 가는 사람을 잠시 붙드는 듯 곡소리가 창에 와 부딪힌다

 

  끓어오르는 곡(哭)

  차분히 내리는 눈

  유리창을 사이에 둔 눈과 곡

  눈은 오래 그칠 줄 모르지만 곡은 자주 그쳤다가 다시 이어진다

 

  곡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은 창가에 붙어 서서

  지속이라는 말이 끌어왔던 기억의 시간들을

  기념 꽃처럼 한 다발씩 뭉친다

  

  눈과 곡의 관계를 헤집어도 좀처럼 맨땅은 보이지 않는다

  

  서울엔 비가 내린다지? 아니 여기도 눈이 와.

  이런 대화 대신 잠시 쉬었던 곡이 다시 시작된다

 

  곡이 울릴 땐 장미도 모르겠더니

  눈발이 굵어지니 국화도 놓아버리고

  꽃을 놓는 건 이 세상을 다 꺾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

  

  눈과 곡이 한 하늘 아래서

  요술처럼 바로 서거니 거꾸로 서거니 하면

  쏟길 건 쏟기고 쌓일 건 쌓이고

   

  새것을 가져보지 못한 나의 크레파스는 흰 세상으로 덮을 줄 몰라서

  색색의 색깔들을 뒤섞어 까만 밤을 불러들인다

 

  밤이 오면 저 흰 눈들은 다 어쩌지

  이런 걱정이나 할 때인가

  얼른 꿈을 깨야지

 

  문상객들이 눈 속으로 흩어진다

 

 

 

 

 

 

 

 

 



 

 

 

 항적

   

 

  

 

  네가 이륙할 시간이다

  시간의 실로폰이 울릴 때마다 네가 제대로 누르지 못했던 건반이

  저절로 음을 만들고 있다

 

  내 손끝은 떨리지만 너는 그 약조의 손으로 안전벨트를 매고 있겠지

  그래 떠나는 것만 한 안전은 없지

  

  시간은 자정을 쿡쿡 누르고

  공항 사이트의 실시간 운항 정보에는

  탑승 마감 문구가 출발로 바뀌어 있다

  

  내 밤의 오른 발목을 걷어차며 날아오르는 너는 이미 땅의 나라 사람이 아니고

  절뚝거리는 기억을 순서 없이 휘두르며 나도 이 땅의 사람이 아닌 척 

  지도를 손끝으로 누르며 너의 앞길을 서둘러 날아간다

 

  네가 떠 있는 동안만 흰 천처럼 펄럭일게

  베란다 밖을 휘젓는 이불이 될게

  창문 끝에 매달린 내 모습이 사람이 아닌 척할게

  

  달을 쫒느라 바빠진 네 눈을 함부로 가로막을 수 없는 밤

  창밖에는 밤의 장면들이 검은 재를 파헤치고

  언젠가 함께 목격한 항적을 너도 길게 늘여보고 있겠지

   

  어질러진 방바닥에   

  네가 생각 없이 두고 간 손목시계는 아직 살아서

  네가 도착할 순간까지 지치지 않을 듯이

  네 항적을 더듬거리고 있다

 

 

 

 

 

 

 

 

 



 

 

 

 저기는 아직 밝네요

   

 

  

 

  여긴 깜깜해요

  대문이 큰 3층 집과 그 마당을 반쯤 차지한 벚나무 줄기와

  저층 아파트 베란다가 하나로 엮인

  이 어둠을 어여 놓아요

  

  벚나무는 아직 밝은 서산을 배경으로 잎의 어둠을 고백하고 있어요

  요만한 내 어둠도 어둠이라 쳐주나요?

  이런 고백

  

  저긴 아직 밝아요

  케케묵은 이야기를 뒤집어쓰고 얼얼하도록 뺨까지 한 대 맞은 그날처럼 환해서

  꼭 저길 가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요

  

  내 편에 서 있는 나무가 가지를 몇 개나 쑤셔 넣은 저 배경

  저런 백지는 백치에 가까운 어린 날에나 필요했겠죠

  

  이제 나는 조금 복잡해져서

  창밖의 풍경에 내가 비쳐도 놀라지 않아요

  내 얼굴에 초로의 할머니가 앉아 있어도 반갑기만 한 걸요

  

  어둠이 하나로 묶은 차가운 이 돌덩어리를 내 것이라 눌러두어도

  서쪽 하늘은 좀처럼 어두워지지 않아요

  저 밝은 세계가 나를 부르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이쪽에서 먼저 불을 켜기 시작하는 것은 

  좋은 징조는 아니에요

  그 징조를 믿고 살아온 건 아니니까

  언제나 왜 여기부터 어두워지는지

  밝은 저쪽이 가끔은 궁금해요

 
  

 

 

 

 

 

 

 


근작시


 

 

 

 

 사월의 것을 그대로 두어요

 

 

 

 

  절반으로 가를 줄 몰라서 산이라 했지요

  그땐 그랬어요

 

  한 모금을 뱉어내고 한 입 가득 머금은 것을 골짜기라 했지요

  모를 때의 일이어요

  

  긴말이 필요 없을 때였어요

 

  충격을 가했던 자리에만 생강나무꽃이 터진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아프다 말하는 사람을 끝까지 잡지 못했어요

  당신 몸에서 생강 냄새 나는 꽃이 터질까 봐요

  

  꽃이 얹히면 다 내 것인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고

  처음으로 내가 모르는 말을 할 때도

  산을 가를 생각은 꿈에도 없었어요

  

 

  피를 흘리는 것은 이미 뒤늦은 사태라는 것을

  진달래가 피기 전에는 몰랐거든요

 

  역병을 밟고 줄줄이 삭정이 되어버린 가지를 헤치며

  세상 비겁한 일이 아플 때 놓는 일인 것을

  잎에게도 물어보지 못한 두어 마디 말로 이별 인사를 했지요

  

  오늘 갔지만 오래전에 보낸 사람이라 해두어요

 

  꽃도 놓고 잎만 단 채 하늘을 꺾어버린 가지 때문에

  핏물이 고여서 이름이 된 사월이 있었다는 걸 겨우 알게 되었지요

 

  반반 잘 나누려고 구름이 한번 치고 가는 산을

  내가 어찌 사월의 것이라 할 수 있겠어요

     

                                                 

  ㅡ《시산맥》 2021년 봄호

  

 

 

 

 

 

 

 

 



 

 

 

 죽은 사진이 산 사람을 옮기고

 

 

 

 

  이미 죽은 얼굴

 

  꽃 사이에 피는 것이 화낼 일은 아니어서

  뜨거운 돌을 쥔 표정들

 

  모래에 묻힌 것처럼 서서히 얼굴을 돌려

  한 번씩 들여다보면서

 

  팔순이 넘은 그녀들이

  자신의 초상 사진 하나씩을 껴안고

  돌아가고 있다

  

  천천히 어디선가 다시 모일 것처럼

  경로당에서 단체로 찍은 영정사진

 

  웃는 입술 속에 웃음을 끌어다 파묻고

  예감도 어수선한 어젯밤 꿈길을 

  가다가 서서 소매 끝으로 한 번씩 얼굴을 긁어보면서

  

  두 손에 마른 흙을 바르며

  죽은 사진이 산 사람을 옮기고 있다

  

  돌기둥에 기댔다가 풀숲 위에 얹었다가

  들었다가 놓았다가 

  몇 발짝만 더 떼면 모두 한곳에 모일 수 있는

  유리로 포장한 얼굴들

   

                                                 

  ㅡ《시와시학》 2021년 가을호

 


 
     

 

 

천수호 I

시인.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 문학동네 『우울은 허밍』, 문학동네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가 있음. 〈매계문학상〉 수상.

 

 

 

 

 

 


시인론 / 박소란


 

 

 

밤을 위한 요술

ㅡ 신작시를 읽고

 

 

 

 

벌써 한참 전,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우울은 허밍』(문학동네, 2014)에서 이런 시를 읽었지요.

   

  

아버지 하얗게 여윈 다리가

빨랫방망이처럼 먼저 떠내려간다

겨우 한 보따리 채운 내 몸이 기우뚱거리며 따라간다

 

수장(水葬)에나 따라올 법한 저 강물 소리

아버지의 욕창이

영혼처럼 내게 들어와 번진다

독이 퍼져 나는 더욱 묽어진다

-「벌침」

  

    

 저는 물론 전부터 시인의 시를 아껴 읽어왔습니다. 그런 만큼 익히 알고 있었는데요. 시인의 시가 쉽사리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 “칙칙하고 은밀하게 말라”가는 한 존재에 대해서도 “단지 정물화처럼 거기 걸쳐졌다”(「아무 것도 아닌 사이」, 『우울은 허밍』)라고 이야기한다는 것. 이런 식의 절제가 시인의 시를 얼마나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는지. 그에 비해 병든 아버지나 죽음을 향해 가는(간)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시인은 조금 달랐습니다. 때때로 사정없이 물컹해지곤 했습니다. “아버지보다 내가 곱절 아팠다”(「내가 아버지의 첫사랑이었을 때」, 『우울은 허밍』)고 토로하곤 했습니다. 정말이지 그 존재의 고통이 “영혼처럼” 시인에게 스며 ‘독’으로 퍼진 것인지. 그로부터 시인은 “묽어짐”을 피할 도리가 없었던 것인지. 한동안 시인의 시는 그렇게 죽음에의 번뇌로 곧잘 눅진해지곤 했던 것입니다.

 “나는 가장 쓸쓸한 애인이 되어 (……) 아버지 마지막 손을 놓”(「내가 아버지의 첫사랑이었을 때」)기까지의 기록이 군데군데 선연한 『우울은 허밍』을 지나 세 번째 시집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문학동네, 2020)는 어떤가요. 제목만큼이나 감각적인 언어가 돋보이는 이 시집에도 기실 병과 죽음의 기색이 촘촘하게 엉겨 있습니다. “사방에 병(病)이 있다 (……) 언니가 갓 딴 병 앞에 앉아 있다”(「병뚜껑」)라거나 “어제의 아침은 오늘 아침보다 하루 먼저 죽었다”(「아침이라는 영정사진」)와 같은 발화들을 도처에서 만나게 되지요. 여기에는 경험의 구체성과 진실성에서 기인한 어떤 선득함이 배어 있습니다. 하지만 앞선 “묽어짐”, 그러니까 슬픔이나 고통, 절망과 같은 감정의 조도는 낮아지고 어느새 예의 균형을 되찾은 채입니다. 병과 죽음을 내면화한 시인의 사유가 일정한 방향을 향해 점진적으로 유동해 왔음을, 유동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이쯤에서 잠깐, 시인을 둘러싼 생활의 일면을 언급해야겠습니다. 지난 수년간 시인이 바로 곁에서 목도한 잇따른 병과 죽음에 대해. (시인의 시집을 꾸준히 읽어온 분들이라면 익히 짐작하시겠습니다만) 시인 곁의 많은 이들이 지금 앓고 있거나 앓다 요사이 먼 데로 떠났다는 사실. 언제부턴가 자연스레 그런 시인의 사정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시인과 지근거리에 사는 저는 가끔 함께 어두운 천변을 걸으며 자질구레한 여러 일상의 일들을 나누곤 했던 것입니다.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맨 나중이 되어서야 조심스레, 아주 조심스레 주변 안부를 묻곤 했던 것입니다. 행여 그 어디쯤 예상 가능한 슬픈 소식이 담겨 있지는 않을까 염려하면서. 복잡한 정황을 간추린 짧은 대답 뒤로 “어떡해야 할까”나 “아아……”와 같은 말 혹은 탄식이 아슬아슬 이어지지요.

때문에 전작은 물론 거기에 잇대어진 오늘 이 시들을 마주한 일이 조금도 갑작스러울 리 없습니다. 근래 시인의 마음을 채운 것들은 으레 이런 이야기들일 거라 짐작하고 있었으니까요.

  

 

끓어오르는 곡(哭)

차분히 내리는 눈

유리창을 사이에 둔 눈과 곡

눈은 오래 그칠 줄 모르지만 곡은 자주 그쳤다가 다시 이어진다

 

곡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은 창가에 붙어 서서

지속이라는 말이 끌어왔던 기억의 시간들을

기념 꽃처럼 한 다발씩 뭉친다

 

눈과 곡의 관계를 헤집어도 좀처럼 맨땅은 보이지 않는다

 

서울엔 비가 내린다지? 아니 여기도 눈이 와.

이런 대화 대신 잠시 쉬었던 곡이 다시 시작된다

 

곡이 울릴 땐 장미도 모르겠더니

눈발이 굵어지니 국화도 놓아버리고

꽃을 놓는 건 이 세상을 다 꺾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

 

눈과 곡이 한 하늘 아래서

요술처럼 바로 서거니 거꾸로 서거니 하면

쏟길 건 쏟기고 쌓일 건 쌓이고

 

새것을 가져보지 못한 나의 크레파스는 흰 세상으로 덮을 줄 몰라서

색색의 색깔들을 뒤섞어 까만 밤을 불러들인다

-「흰 눈의 장례식」 부분

 

   

지금 화자는 ‘문상’ 중입니다. 망자가 “신발에 묻은 눈을 털듯” 가볍게 이승과 작별할 수 있을까 근심합니다. 겨울의 장례식장에는 장엄한 ‘곡소리’가 울려 퍼지고, 때마침 창밖에는 ‘흰 눈’이 내리고. 밖과 안을 나누는 ‘창’이라는 경계는 분명해 보입니다. 흰 눈이 차분한 삶의 공간과 곡소리가 들끓는 죽음의 공간. 화자는 눈과 곡의 관계를 헤집고 있으나 좀처럼 그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죽음의 공간에 머무는 내내 삶의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지요. “눈은 오래 그칠 줄 모르지만 곡은 자주 그쳤다가 다시 이어”지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화자는 “꽃을 놓는 건 이 세상을 다 꺾는 일이라는 걸” 아는 이입니다. 죽음의 기색에 사로잡히면 ‘장미’도 모르게 되지만 눈발이 굵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국화’마저 놓아버리는 것이 살아 있는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생리이지요. 그러나 장미와 국화, 그 어느 것도 놓아선 안 되는 것입니다. 특히 국화, 그 꽃을 놓는 건 세상을 꺾는 일이라는, 세상을 저버리는 일이라는 엄중한 전언. (“세상 비겁한 일이 아플 때 놓는 일인 것을”, 「사월의 것을 그대로 두어요」) 이 시의 백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발화를 기점으로 “흰 세상”은 “까만 밤”으로 변모하는데, 여기에는 당연히 주체의 강력한 의지가 개입합니다. “색색의 색깔들을 뒤섞어 까만 밤을 불러들인다”라고요. 이는 화자가 최선으로 취할 수 있는 애도와 추념의 태도인 것이 자명하고요. 이 어둠 속에서 화자는 “저 흰 눈”, 그러니까 환하고 신비한 삶의 풍경을 염려하기도 하나 금세 “이런 걱정이나 할 때인가” 스스로를 다그칩니다.

시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문상객들이 눈 속으로 흩어진다”. 화자는 서둘러 바깥으로 나간 그들을 한동안 창 이쪽 실내에 서서 지켜보았을 것 같습니다. 곡소리가 남은 죽음의 공간을 쉬이 벗어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끓어오름을 가라앉히는 대신 더 오래 간직할 수 있기를 청했을지도 모르지요. 어째서 화자는 이런 태도를 견지하는 걸까요? 언제부터 “꽃을 놓는 건 이 세상을 다 꺾는 일”임을 알아버린 걸까요? “새것을 가져보지 못한”이란 표현 속에 약간의 힌트가 깃든 듯하나 사정을 쉽게 짐작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다만 그가 희고 환한 것이 아니라 검고 어두운 것에 이끌리는 성정을 가진 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지요. 어쩌면 시인의 바탕이랄 수 있는 ‘연민’의 한 양상으로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내게 시는 연민에서 출발한 사물 이해법 / 그것이 사물을 보게 한, 또는 보이게 한 시력이다 / 내 시 속에 늘 오도카니 있는 존재들 / 그 외딴 것들이 느끼는 / 아주 붉은 현기증”_ 천수호, 시인의 말, 『아주 붉은 현기증』, 민음사, 2009).

이 같은 성정이 유독 망자, “땅의 나라”를 떠난 사람을 놓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이겠습니다. 그렇게 시인은 “이 땅의 사람이 아닌 척” 먼 곳으로, 높은 곳으로 한 걸음씩 더 가까이 이동해 갑니다.

  

  

  시간은 자정을 쿡쿡 누르고

  공항 사이트의 실시간 운항 정보에는

  탑승 마감 문구가 출발로 바뀌어 있다

 

  내 밤의 오른 발목을 걷어차며 날아오르는 너는 이미 땅의 나라 사람이 아니고

  절뚝거리는 기억을 순서 없이 휘두르며 나도 이 땅의 사람이 아닌 척 

  지도를 손끝으로 누르며 너의 앞길을 서둘러 날아간다

 

  네가 떠 있는 동안만 흰 천처럼 펄럭일게

  베란다 밖을 휘젓는 이불이 될게

  창문 끝에 매달린 내 모습이 사람이 아닌 척할게

- 「항적」 부분

 

   

여느 때처럼 “창밖에는 밤의 장면들이 검은 재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망자인 ‘너’를 위해 ‘나’는 “이 땅의 사람이 아닌 척” 창문 끝에 서서 “흰 천처럼 펄럭”이고자 합니다. “창문 끝”이라는 말이 매우 절묘하게 여겨집니다. 앞선 시 「흰 눈의 장례식」에서와 같이, 이 시에서도 ‘창’은 하나의 경계로 위치하는데요. 물론, 여기 「항적」에서 그 공간성은 뒤바뀐 채입니다. 「흰 눈의 장례식」에서와 달리 창밖, 즉 실외의 공간이 죽음을 가리킨다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화자가 “창문 끝”, “베란다 밖”으로 이동해 있다는 점이 어떤 사실을 지시하는지 분명해지는데요. 이 시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너’의 ‘손목시계’는 “아직 살아서 / 네가 도착할 순간까지 지치지 않을 듯이 / 네 항적을 더듬거리고 있다”는 것은 마치 애도를 멈추지 않는 화자 자신의 모습과도 겹치는 것 같습니다.

이 시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죽음의 일이 마치 보통의 여행처럼 그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망자는 죽음이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어디 먼 나라로 출국한 것만 같지요. 화자는 얼핏 그의 여행이 평안하기를 빌며 마음으로나마 배웅하는 것 같습니다. 죽음이라는 거대하고 강력한 사건이 이렇듯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로 변환된 것인데요. 이는 결코 쉽게 보아 넘길 수 없는 지점이지요. 죽음을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또 다른 형태로 인식한 결과일 테니까요. 죽은 자와의 관계는 단절이 아니라 지속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일일 테니까요. 너의 손목시계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은 이런 점에서 또 다른 여지를 내포하지요. “눈과 곡이 한 하늘 아래서 / 요술처럼 바로 서거니 거꾸로 서거니 하면”서(「흰 눈의 장례식」)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세계의 진면이라고 시인은 역설하는 듯합니다.

삶과 죽음의 거리가 점차 좁혀지는 가운데, 죽음에 대한 시인의 사유는 계속해서 넓어집니다. 깊어집니다. 「저기는 아직 밝네요」를 보면 “서쪽 하늘”, 저 세계가 지금 화자가 발 딛고 살아가는 여기보다 “밝다”라고, “밝은 저쪽이 가끔은 궁금하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어두운” 여기가 아닌 “저 밝은 세계”에 대한 화자의 관심. “내 편에 서 있는 나무가 가지를 몇 개나 쑤셔 넣은 저 배경”에서 알 수 있듯, 화자는 오히려 저기를 더 가깝게 느끼는 것도 같습니다. “내 얼굴에 초로의 할머니가 앉아 있어도 반갑기만 한 걸요”라고 하지만, 이 같은 감정은 단순히 나이 듦에 대한 체념 혹은 초탈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 테지요. 그보다는 앞서 언급한 대로 병과 죽음에 얽힌 시인의 여러 경험들이 자연스레 이와 같은 감정을 촉발시켰다 보는 편이 맞겠습니다. 저 세계에 대한 어떤 가능성을 감지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리고 마침내 이런 시에 이르게 됩니다.

   

  

팔순이 넘은 그녀들이

자신의 초상 사진 하나씩을 껴안고

돌아가고 있다

 

천천히 어디선가 다시 모일 것처럼

경로당에서 단체로 찍은 영정사진

 

웃는 입술 속에 웃음을 끌어다 파묻고

예감도 어수선한 어젯밤 꿈길을 

가다가 서서 소매 끝으로 한 번씩 얼굴을 긁어보면서

 

두 손에 마른 흙을 바르며

죽은 사진이 산 사람을 옮기고 있다

 

돌기둥에 기댔다가 풀숲 위에 얹었다가

들었다가 놓았다가 

몇 발짝만 더 떼면 모두 한곳에 모일 수 있는

유리로 포장한 얼굴들

ㅡ 「죽은 사진이 산 사람을 옮기고」 부분

   

  

 “팔순이 넘은 그녀들”이 안고 가는 영정. 제사나 장례를 지낼 때 쓰는 물건으로 “죽은 사진”임에 분명한 영정을 안고 그녀들은 지금 “예감도 어수선한 어젯밤 꿈길”을 걷고 있습니다. ‘꿈길’이 등장하는 순간 시를 감도는 환상적 색채는 보다 짙어지는데, 어쩌면 그녀들은 벌써 먼 곳으로, 죽음의 공간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미 죽은 얼굴”로서. 그러나 정작 죽은 것은 그녀들이 아니지요. “경로당에서 단체로 찍은 영정사진”입니다. 그 “죽은 사진이 산 사람을” 이끌고 있는 것이지요. 여기서 시인은 삶과 죽음의 이미지를 전복시킵니다. 영정사진은 “죽은”이 되는 반면 정작 죽음으로 이동하는 (혹은 곧 이동해야 하는) “그녀들”은 삶이 되었는데요. 죽음이 삶을 이끌다니요. 영정이 이끄는 대로 “몇 발짝만 더 떼면 모두 한곳에 모일 수 있”다니요. 그녀들이 향하는 그곳은 얼마나 환하고 정다운 세계일까요. 여기서 중요한 다른 한가지는 “몇 발짝”이라는 표현일텐데, 딱 이만큼이 지금 시인이 감각하는 삶과 죽음의 거리이겠지요.

 네, 지금 시인이 계속해서 고심하고 강구하는 것은 삶과 죽음의 거리를 좁히고 급기야 그 경계를 지우는 일인 듯합니다. ‘나’와 망자를 가까이 더 가까이 두는 일. 이 일이야말로 무수한 이별 뒤에 여전히 살아내야 하는 자가 자신 안에 가득한 슬픔을 덜 수 있는 방책이겠지요. 넋 놓고 앉아 슬퍼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니까요.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떨쳐야 한다는 사실. 그렇다면 시인에게는 일종의 ‘요술’이 필요할 수밖에요. 다분히 수의적이고 의지적인 술법이. 삶과 죽음이 “요술처럼 바로 서거니 거꾸로 서거니” 하며 서로를 지탱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 환한 세계를 살아가는 순간순간 “색색의 색깔들을 뒤섞어 까만 밤을 불러들”이고 “이 땅의 사람이 아닌 척” 떠난 이의 “앞길을 서둘러 날아”가는 일. “어둠이 하나로 묶은 차가운 이 돌덩어리를 내 것이라 눌러두”는 일. 이런 일에 시인은 오래 몰두할 듯합니다. 그리고 이로써 기어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조금씩 무화해갈 것입니다. 시인이 이후 그려낼 세계의 모습이란 어떤 것일까요? 삶과 죽음은 어떻게 그 공간성과 시간성을 변화시키면서 새로운 빛과 그림자를 드리울까요? 시인은 또 어떻게 우리 남은 자들을 견디게 할까요?

   

 

 

 

 

 

 

이달의시인-시인론-박소란.png

박소란 I  

시인. 2009년 《문학수첩》 등단. 저서 『심장에 가까운 말』 『한 사람의 닫힌 문』 『있다』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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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