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 저자 | 윤석정 | ||
|---|---|---|---|
눈
잘 지내?
이렇게 쓴다 한들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겠지만
거추장스런 마음일랑 아무것도 남기지 않겠어
눈이 내리던 날
우산을 쓰고 너에게로 가는 동안
눈발이 우산에 닿아 방울대는 소리를 냈어
점점 굵어지다가 퍼붓듯 방울방울댔지
너에게 내가 방울방울이 될 수 있다면
아직 태어나지 못한 문자가 있을 거야
눈이 소란한 지상을 만나기 전까지
구름이 참아왔던 생활의 무게를 생각했어
매일매일 나는 똥오줌을 누고 변기의 물을 내렸지만
내가 버리지 못한 마음
꿈이라고 불러도 괜찮아
구름의 창문이 어둠에 구멍을 뚫는 동안
창밖으로 비가 내렸지만 꿈에선 눈이 내렸어
내가 배설하고 흘려보냈다고 믿어왔던
창문 없는 생활이 쌓인다면
아침에 눈뜨지 못한 구름이라고 불러도 괜찮아
경적 소리에 꽉 막힌 길,
무어라 휘갈기는 구름의 문자들이 요란했어
우산 끝자락으로 방울방울 굴러와 떨어지려는 네가 있었어
우산을 접고
잘 지내, 말하지 못했지만
눈은 과거에서 시작해 현재로 내리잖아
여기저기에 방울방울 내리잖아
덕분에 오래 품었던 오늘의 일기를 쓸 수 있게 되었어
네가 떠난 다음에
나를 방울방울이라고 불러도 괜찮아

윤석정 I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오페라 미용실』 『누가 우리의 안부를 묻지 않아도』가 있음. 〈내일의한국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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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호 신작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