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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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천양희 

     

 

 

 

 

 풀은 어디에나 있다       

  

  

       

  

 

  바람에 떨리는

  풀잎의 눈짓이 추파(秋波) 같다

 

  어떤 이의 눈길이

  이처럼 가을 물결 같을까

  풀잎에 귀를 대본다

  풀잎 끝 이슬방울 차가워

  풀씨만 한 생이 꿈틀거린다

 

  쪼그리고 앉아

  풀 움트는 것을 본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일은

  씨앗이 움트는 일

 

  초개(草芥) 같은 생은 되지 말아야지!

 

  공허한 한마디 말보다

  폐허 속 한 포기 풀이 더 물결친다는 말에

  내 생각이 한풀 꺾인다 

 

  다시 풀을 들여다본다

 

  풀은 화난 표정일 때가 없다

  너는 나를

  화나게 하지 않고 부끄럽게 한다

 

  꽃보다 높은 풀 구절초가

  그냥 하얗게 피어 있다 단색으로

 

  아홉 번을 꺾어도 꺾이지 않는

  사람이 그리운 저녁이다

 

  어둠이 너무 어두워 없는 것 같을 때

 

  아름다움을 지나치게 말하는 입들은

  아름답지 않은 것을 감추려 한다

 

  어딘가에

  사이비는 있을 것이다

 

  길가의 가로등이 가로로 달려 있다

  게처럼 옆으로 걷고 싶은 날

 

  지지배배 우짖는 새소리가

  시시비비로 들릴 때가 있다

  풀피리 꺾어서 불고 싶을 때다

 

  요즘의 내 결구(結句)는 

  풀섶의 여치처럼 내가

  쯧쯧쯧 혀를 찬다는 것이다

 

  풀풀풀

  풀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생각 많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서울 때가 있다

 

  오늘처럼 내 귀를

  풀벌레 울음이 뚫은 적 없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란

  당분간

  마음이 풀물 드는 것이다

 

  모든 대답은 언제나 풀색이다

 

  풀은 어디에나 있다

 

 

 

 

 

 

    

 

 

 

 

 


 

신작시_천양희.png

천양희  l

1965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사람 그리운 도시』 『하루치의 희망』 『마음의 수수밭』 『오래된 골목』 『너무 많은 입』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새벽에 생각하다』, 산문집 『나를 살린 문장들』 등이 있음. 〈만해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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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호 신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