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중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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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데이션
사방의 색이 차차 진해졌다 엷어져 어느 초겨울, 새벽의 예기치 않은 짧은 조우에 대한 이야기다. 너는 이른 봄 불시에 잃은 아이의 방 창문에 흰 서리가 덮인 것을 발견했다. 그제야 봄이 갔다는 걸 깨달은 너는, 새하얀 창을 보며, 영안실에 누워 아이가 마지막으로 본 세상의 풍경인 흰 홑이불이 바로 저 창문 같았을 거라고 확신했다. 아이는 창밖에 눈송이가 가득하다고 생각했을까. 스스로 눈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을까. 한발 가까이 다가설 때마다 더운 숨이 죄스러워 너는 창문 앞에서는 숨을 멈췄다. 살펴보니 서리는 흐르는 물결처럼 무늬와 채도와 명도가 달랐고, 언젠가 아이가 창 한가운데 찍어놓은 작은 손바닥 자국은 형광등보다 더 하얗게 도드라져 떠 있었다. 눈앞에 아이의 하얗게 언 손이, 손금까지 선명히 떠 있었으나, 너는 그 손이 녹아버릴까 잡지 못했다. 살거나 죽거나 혹은 죽거나 살거나는, 단지 살짝 더 짙거나 엷은 것뿐이므로 그 손을 잡지 않았다. 성급히 손잡으려 들다가는 색의 간격이 벌어질 수 있다. 너와 아이의 채도와 명도가 더이상 벌어지지 않게 생전 모습을 눈썹 한 올까지 그리며, 한 칸 너머 나란히 흐르는 서로의 시간이 한 번씩 스미기를 기다리면 된다. 당장 오늘 밤이라도 네가 물속 같은 잠에 빠져 네 존재가 살짝 엷어지면, 어렵지 않게 아이의 손을 잡을 수 있다.

김중일 l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국경꽃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 『내가 살아갈 사람』 『가슴에서 사슴까지』 『유령시인』 『만약 우리의 시 속에 아침이 오지 않는다면』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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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호 신작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