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 저자 | 노향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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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란지교
수은등이 고개 꺾고 굽어보는 골목 초입
찻집 지란지교가 있다.
그 집 간판을 볼 적마다 나는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쓴
난같이 향긋하고 겸손한 유안진 시인을 떠올린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신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사이의 사귐을 시인은 난에 비유했지.
코가 있는 흰 고무신 대신 남자애와 똑같이 먹고무신
신고 누구나 먼 철길을 따라 걷던 그 시절
아이들 틈에 운동화 신은 나는 내 발을 자꾸 감추고 싶었다.
저녁 식사 후 슬리퍼를 끌고 지란지교 찻집
유리문을 밀고 들어간다.
카운터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이 집 주인 마담언니가
눈가 주름으로 반긴다 홀 안은 텅 비었다.
타주는 믹스커피를 마시며 묻는다
거의 20년 넘게 왜 찻집 간판이 바뀌지 않는지
찻집을 인수할 때 전 주인에게 물으니 처음 개업한 주인이
간판만은 바꾸지 말라고 일러주었단다.
차 맛보다는 간판 이름이 더 좋아
이따금 들르는데
그 날도 칠 벗어진 출입문을 밀고 나오자
수은등이 그랬어요. 그럼요
고개 끄덕이며 내 등뒤에서 배웅한다.

노향림 ㅣ
1970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바다가 처음 번역된 문장』 『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 등이 있음. 〈한국시인협회상〉〈이수문학상〉〈박두진문학상〉 등 수상.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8년 1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