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임동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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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일기 10
연이틀 내리는 눈으로 모든 것들은 문을 닫아걸었다
통고산을 휩쓸고 내리는 눈보라가
뒷산 박달나무와 자작나무의 곧은 결기를 후려치면서
물푸레나무와 싸리나무의 휘어지는 허리를 꺾고 있었다
폭설을 견디지 못한 소나무 잔가지 부러지는 소리만
헐거운 문풍지 사이로 들어와 온기 없는 방을 맴돌았다
멧돼지와 승냥이 울음으로 계곡이 가팔라지고 있었다
밤새 바람이 몰고 오는 눈사태, 대설경보
삶과 죽음의 경계는 늘 가까이 있었다
이런 밤은, 늘 길 밖의 길을 떠돌게 되고
바람은 굶주린 겨울 짐승들을 몰고 다니는 매파(媒婆),
어머니가 저녁을 마련하던 화덕 언저리로
꽁지 짧은 잿빛 굴뚝새는 이 밤에도 날아올 수 있을까
뜨거운 아랫목에 몸을 녹였던 사람들
봄이 되어도 어느 누구 하나 마을을 떠날 수 없듯이
짐승들 이 겨울 눈보라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쌓이는 눈과 가야할 길이 모두 끊겨서
눈을 녹여 식수를 만드는 하루하루의 시간들을,
약삭빠른 것들은 모두모두 마을을 떠나갔지만
그래도 눈보라는 늘 남은 사람들과 일가(一家)를 이룬다
모든 것은 눈 속에 얼어붙어 보석처럼 반짝이고
손바닥만 한 불씨 한 점 남아 있지 않지만
직립의 금강소나무 하늘 찌르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폭설 속에 갇힌 저 길 밖의 길은 아득하지만
밤새 꽁지 짧은 굴뚝새 한 마리 나를 읽는지
따뜻한 처마 밑에서 또록또록 눈을 밝히고 있다

임동윤 ㅣ
196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199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편자의 시간』 『따뜻한 바깥』 『사람이 그리운 날』 『숨은바다찾기』 등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8년 1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