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수익 | ||
|---|---|---|---|


신작시
포커페이스
고양이가
이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지는
4천여 년 전의 일이라고 하지만
고양이는 그것을
제 자신이 전혀 모르는 일 같기도 하고
또는 알면서도 그저 모르는 척
할 수도 있는 것
그렇게 고양이는 전혀 포커페이스의
은밀한 양동 작전에 휘말린 채 허우적거리는
우리들을
찬찬히 바라다보고 있는, 그 민첩한 교활성
때문에
나는
고양이가 좋다
고양이의 우아한 발톱과 유혹적인, 날선 눈빛
캄캄하게 내부를 숨겨둔 채 하얗게 피어오르는 교만함과
질투, 앙칼스럽지만 상대적으로 외교적 처세법을 터득한
고양이에게
나는
최고의 훈장을 수여하고 싶다
모두들 그럴듯하게 하게 말하는 것만
믿어대는 우리 바보들에게
고양이, 너의 화려하고도 세련된 기품을
나눠 주고 싶다
가벼워!
나는
아내의 엉덩이에 손을 갖다 댄다
아내는 나의 엉덩이에
손을 갖다 댄다
가벼워!
새하얗게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조금씩 우리의 몸을 일으키려고
누군가의 손바닥이
떠받치는 듯이
게으름만이 즐거운 하루
그리고
또 하루
귀머거리
귀머거리 한 사람 간다
귀머거리, 귀머거리
두 사람 간다
귀머거리, 귀머거리, 귀머거리
세 사람 간다
귀머거리들끼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
귀머거리들끼리는 서로 잘 아는 사이
귀머거리끼리 하얗게
늙으면서 간다
귀머거리끼리 벌겋게
타오르면서 간다
귀머거리끼리, 귀머거리끼리, 귀머거리끼리
참으로 무식해서
편안한 세상
자선 대표시
겨울 판화
겨울 나루터에 빈 배 한 척이 꼼짝없이 묶여 있다
아니다! 빈 배 한 척이 겨울 나루터를
단단히 붙들고 있는 것이다
서로가 홀로 남기를 두려워하며
함께 묶이는 열망으로, 더욱 가까워지려는
몸부림으로, 몸부림 끝에 흘리는 피와
상처로,
오오 눈물겹게 찍어내는
겨울 판화
새
한 마리의 새가
공중을 높이 날기 위해서는
바람 속에 부대끼며 뿌려야 할
수많은 열량들이 그 가슴에
늘 충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보라,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들은
노래로써 그들의 평화를 구가하지만
그 조그만 몸의 내부의 장기들은
모터처럼 계속 움직이면서
순간의 비상이륙을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오, 하얀 달걀처럼 따스한 네 몸이 품어야 하는
깃털 속의 슬픈 두근거림이여

.
196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우울한 샹송』 『야간열차』 『그리고 너를 위하여』 『푸른 추억의 빵』 『꽃나무 아래의 키스』 『처음으로 사랑을 들었다』 『침묵의 여울』 등, 시선집 『불과 얼음의 콘서트』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등이 있음.
〈현대문학상〉〈대한민국문학상〉〈정지용문학상〉〈한국시협상〉〈이형기문학상〉 등 수상.

세속의 비대함을 걸러낸 ‘가벼움’의철학
― 이수익 시인의 ‘표정’과 ‘목소리’
일반 독자와 달리 평론가로서 가끔 얻게 되는 기쁨 가운데 하나가 있다면 시인의 모습을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내가 만나 볼 수 없었던 많은 시인들. 김소월, 이상, 서정주, 박목월, 김종삼, 박용래, 김수영, 김현승, 오규원……. 이런 분들은 과연 어떤 ‘표정’과 ‘목소리’를 지녔을까? 시인들이 쓴 시와 산문 그리고 사진을 들여다보면 간혹 그런 궁금증이 생길 때가 있다. 평론가로 데뷔한 이후 많은 시인들을 사석에서 혹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만나기도 했는데 이수익 시인을 처음 뵈었을 때 느낌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시인들은 그들의 개성적 문채(文彩)만큼이나 독특한 표정과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남들과 구별되는 습관과 어투, 요란한 열정, 자유분방한 행동, 특유의 유머, 자리의 성격과 상관없이 드러내는 자신만의 우울과 고뇌의 표정, 때로 묵묵한 침묵의 무거움 등. 개의치 않음을 개의치 않는, 일종의 묵계로서의 자유를 허용하고 인정해주는 분위기야 말로 어느 집단에서도 체험할 수 없는 ‘시의 마당’이 지닌 특징이다.
이수익 시인을 처음 뵈었을 때 나는 매우 ‘색다른’ 느낌을 받았는데 그것은 다른 시인들과의 만남과는 아주 달랐기 때문이다. 조용하게 미소를 짓는 표정과 온화하게 들려오는 음성이 그러했다. 정갈함과 단정함 속에서 우러나오는 정감이 그 분의 문채(文彩)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늘 그런 모습으로, 다른 사람을 강하게 압도하지 않는, 그래서 오히려 평온함이 깃들 수 있는 표정이 내가 느낀 ‘색다름’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시세계는 이러한 모습과 무관지 않게 여겨진다. 그는 우수와 슬픔을 시로 형상화할 때조차 이러한 정갈함과 친밀함을 동시에 견인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잔잔한 분위기와 적막한 정감이 묻어 있는 그의 신작을 대할 수 있는 지금의 기회를 나는 ‘행운’이라 생각한다. 세상은 한결같이 소란스럽고 뉴스는 경악스러울 정도로 잔인한 사건을 매일 전송하며 일상으로 스며든다. 우리는 웬만한 자극이나 도덕적 타락에 대해서 이미 둔감해진 상태라 할 수 있다. 우리들의 욕망도 그 탁류를 타고 스스로도 감당 못 할 만큼이나 무거워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해서 이 시대의 눈부신 발전(?)이 남긴 결여들, 즉 신성한 것, 거룩한 것, 적막한 것, 잔잔한 것, 단정한 것, 정갈한 것, 품격 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무수히 하곤 한다. 내가 ‘행운’이라고 말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수익 시인의 시편은 세상의 모든 탁한 ‘잡음’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우리를 이끈다. 그는 우리들의 상태를 이렇게 진단한다.
고양이가
이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지는
4천여 년 전의 일이라고 하지만
고양이는 그것을
제 자신이 전혀 모르는 일 같기도 하고
또는 알면서도 그저 모르는 척
할 수도 있는 것
그렇게 고양이는 전혀 포커페이스의
은밀한 양동 작전에 휘말린 채 허우적거리는
우리들을
찬찬히 바라다보고 있는, 그 민첩한 교활성
때문에
나는
고양이가 좋다
고양이의 우아한 발톱과 유혹적인, 날선 눈빛
캄캄하게 내부를 숨겨둔 채 하얗게 피어오르는 교만함과
질투, 앙칼스럽지만 상대적으로 외교적 처세법을 터득한
고양이에게
나는
최고의 훈장을 수여하고 싶다
모두들 그럴듯하게 말하는 것만
믿어대는 우리 바보들에게
고양이, 너의 화려하고도 세련된 기품을
나눠 주고 싶다
ㅡ 「포커페이스」 전문
고양이는 민첩하고 교활하지만 세련되고 우아한 매력적인 동물이다. 이 동물은 공기처럼 가벼운 몸놀림과 날선 눈빛을 가졌지만 “캄캄하게 내부를 숨겨둔”다는 점에서 신비감을 지닌다. 교활함과 우아함, 앙칼짐과 품격을 함께 지닌다는 것은 하나의 몸에 모순된 속성을 모두 포괄함을 뜻이며 그것은 단순성의 넘어선 복합체, 즉 완전체에 가까운 속성을 지녔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고양이가 “포커페이스의 / 은밀한 양동 작전에 휘말린 채 허우적거리는 / 우리들을 / 찬찬히 바라다보고” 있다고 화자는 말한다. 다시 말하면 완전체로서 고양이는 우리들의 어리석음과 불완전성을 역으로 드러내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모두들 그럴듯하게 말하는 것만 / 믿어대는 우리 바보들”을 기품 있게 바라보며 고양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이 고양이의 시선에는 어리석고 품격 없는 세태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 내포되어 있다. 시인은 표면만 보고 이면을 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무분별하고도 비대한 욕망을 고양이를 통해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물음은 신작 시 「가벼워!」가 이에 대한 처방처럼 읽혀지기 때문에 생겨난다.
나는
아내의 엉덩이에 손을 갖다 댄다
아내는 나의 엉덩이에
손을 갖다 댄다
가벼워!
새하얗게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조금씩 우리의 몸을 일으키려고
누군가의 손바닥이
떠받치는 듯이
게으름만이 즐거운 하루
그리고
또 하루
ㅡ 「가벼워!」 전문
과학적 근거와 상관없이 ‘엉덩이’는 그 형태와 기능 면에서 무거운 것처럼 인식된다. 공중부양(空中浮揚)은 전신을 공중에 떠오르게 하는 자세인데 그것이 불가능한 까닭이 마치 엉덩이가 무겁기 때문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런데 시의 화자는 이러한 ‘엉덩이’에 대한 통념을 가벼움으로 바꿔놓는다. “나는 / 아내의 엉덩이에 손을 갖다 댄다 / 아내는 나의 엉덩이에 / 손을 갖다 댄다 // 가벼워!”라고 그는 말한다. 여기서 엉덩이에 손을 갖다 대는 행위는 에로틱함이나 음탕함과는 거리가 먼 정감 즉 ‘다정함’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부피가 크고 탱탱한 둔부와는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 다정함의 친화력은 ‘아침 햇살’이 지닌 상쾌함과 환함으로 전이되는데 그것이 “조금씩 우리의 몸을 일으키려고”그러는 것이라고 화자는 말한다. 우리의 몸을 일으키는 힘, 엉덩이를 떠받치는 ‘손바닥’의 힘, 이는 가벼움의 동력이다. 이 가벼움의 동력은 다시 ‘게으름’으로 환원된다. 가벼워지려면 게으름을 피워야 한다는 시인의 전언은 우리를 무겁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린 너무 부지런하게 일하고 그 일의 대가로 보상받은 것을 몽땅 ‘욕망 채우기’에 쏟아 넣는다. 현대인은 자신의 노동력을 스스로 착취하고 동시에 자신이 만들어낸 욕망에 착취당한다는 점에서 이중의 탕진을 지속적으로 겪는 현상을 보인다. 이러한 일상의 반복은 결국 ‘공허’와 ‘피로’라는 부작용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이 시의 마지막 연에 보이는 ‘하루’, ‘또 하루’라는 단어의 반복은 시간의 소중함을 아주 담박하게 표현한 것이다. 시간은 무한정 막연하게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 그리고 ‘또 하루’로 이어지는 애틋한 일평생의 과정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벼움의 철학’은 ‘슬픔’과 더불어 이수익 시인의 시세계 전반에 걸쳐 포진된 인생관 가운데 하나이다. 오래 전 나는 「슬픔의 핵에서 번지는 따뜻한 물살 - 이수익의 시세계」라는 평문에 그의 시 「유쾌한 풍경」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의 ‘가벼움의 철학’이 지닌 깊이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그것을 재론하고자 한다. 일단 시의 한 부분을 다시 읽어 보면, “층마다 베란다로 나와 따뜻이 볕살쬐는 / 그들 眷屬의 옷가지들, 모처럼 때를 벗긴 / 홀가분한 기분의 / 나들이들. // (싱싱한 우리들의 슬픔을 보세요 / 싱싱한 우리들의 기쁨을 보세요 / 비누거품으로 빨아도 빨아낼 수 없는 / 싱싱한 우리들의 가난을 보세요)”라고 시인은 말한다. 이 시에 대해 설명했던 부분을 조금 다듬어 다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수익의 상상력은 가난의 표정을 그대로 담고 있는 ‘권속(眷屬)의 옷가지’를 ‘볕살’ 아래 널어놓음으로 해서 그 가난의 때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가난의 때가 내포하는 어둠과 습기를 가벼운 것으로 바꿔놓는다. 때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않는 것이 이 시가 지닌 깊이와 진정성이라 여겨진다. 때의 흔적을 남김으로써 시인은 기쁨이 지닌 의미 또한 복합적인 것으로 만든다. 따라서 “싱싱한 우리들의 슬픔을 보세요 / 싱싱한 우리들의 기쁨을 보세요”에 표현된 아이러니는 식구들의 옷가지를 직조하는 씨실과 날실이라 할 수 있다.”. 즉 그의 ‘가벼움의 철학’은 ‘가난’으로 상징되는 삶의 고통을 ‘싱싱한’ 것으로 바꾸려 하는 내적 에너지인 것이다. 이와 같은 지향을 고스란히 드러낸 작품이 「새」이다.
한 마리의 새가
공중을 높이 날기 위해서는
바람 속에 부대끼며 뿌려야 할
수많은 열량들이 그 가슴에
늘 충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보라,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들은
노래로써 그들의 평화를 구가하지만
그 조그만 몸의 내부의 장기들은
모터처럼 계속 움직이면서
순간의 비상이륙을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오, 하얀 달걀처럼 따스한 네 몸이 품어야 하는
깃털 속의 슬픈 두근거림이여
ㅡ 「새」 전문
이 작품은 신작이 아니라 이전에 쓴 시편 가운데 시인이 자선(自選)한 것이다. 자선시는 시인이 자신의 작품 가운데 특히 애정을 가진 것이라는 점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 시의 제재인 ‘새’는 앞서 보았던 ‘고양이’나 공중부양하는 ‘엉덩이’와 마찬가지로 ‘가벼움’이라는 공기적 상상력을 함축하고 있다. “공중으로 높이 날기”라는 소망은 무거움을 쇄신하려는 의지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의지는 “바람 속에 부대끼며 뿌려야 할 / 수많은 열량들이 그 가슴에 / 늘 충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시인은 “오, 하얀 달걀처럼 따스한 네 몸이 품어야 하는 / 깃털 속의 슬픈 두근거림이여”라고 따듯하게 표현한다. 따스한 몸과 깃털 안에서 두근거리는 생명적 동력이 바로 이수익 시인이 말하는 의지이다. 그것은 결연하고 엄숙하고 거친 것이 아니라 한없이 부드럽고 온화한 맥동이다. 이수익 시인의 시편이 울려주는 매력은 이러한 잔잔함 속에 있다. 한없이 부드럽고 온화함 속에 감추어진 ‘두근거림’은 생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이수익 시인의 독특한 성품이며 표정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그 사랑의 간곡함을 대변했던 자선작 한 편을 더 읽어보는 ‘행운’을 누려보자.
겨울 나루터에 빈 배 한 척이 꼼짝없이 묶여 있다
아니다! 빈 배 한 척이 겨울 나루터를
단단히 붙들고 있는 것이다
서로가 홀로 남기를 두려워하며
함께 묶이는 열망으로, 더욱 가까워지려는
몸부림으로, 몸부림 끝에 흘리는 피와
상처로,
오오 눈물겹게 찍어내는
겨울 판화
ㅡ 「겨울 판화」 전문
이 간절한 사랑의 노래는 앞서 살펴본 「가벼워!」에서 서로의 엉덩이에 손을 갖다 대는 ‘나’와 ‘아내’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함께 묶이는 열망으로, 더욱 가까워지려는 / 몸부림으로, 몸부림 끝에 흘리는 피와 / 상처로,” 지나온 세월이 없다면 가벼움도 없을 것이다. “바람 속에 부대끼며 뿌려야 할 / 수많은 열량들”(「새」)을 부드러운 깃털 속에 품었던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신성한 가벼움! 정갈한 품격과 따스함으로 이루어진 이수익 시인의 ‘가벼움의 철학’은 “조금씩 우리의 몸을 일으키려고”(「가벼워!」) 애쓰며 형성된 ‘아침 햇살’과 같은 것이다. 이 아침 햇살이 우리들의 부질없는 세속의 무거움을 조용히 흔들어 때 묻은 “眷屬의 옷가지들”을 거풍(擧風)하듯 그렇게 씻어내고 있는 것이다.
글 · 엄경희 | 문학평론가.
200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등단.
저서 『빙벽의 언어』 『未堂과 木月의 시적 상상력』 『질주와 산책』 『현대시의 발견과 성찰』 『저녁과 아침 사이 詩가 있었다』 『숨은 꿈』 『시 - 대학생들이 던진 33가지 질문에 답하기』 『전통시학의 근대적 변용과 미적 경향』 『해석의 권리』 『현대시와 정념』 『은유』 등이 있음.
〈인산시조평론상〉 수상. 현재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8년 9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