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임동확 | ||
|---|---|---|---|
무제
언제부턴가 나의 눈길은 자주 멍하니
다가설수록 멀어지는 미래의 강가에 머물러 있거나
밤 깊도록 기억의 최북단 끝에 나앉아
쫓기듯 지키지 못한 약속을 탄식하는 일,
그러다가 문득 가속도 붙은 세월의 등짝이나 물끄러미 쳐다보는 일
하지만 결국 훈계이거나 계몽일 뿐인 도덕률보다
날로 주석과 각주만 늘어가는 시간의 형이상학보다
내가 변함없이 좋아하는 건
토마토를 갈아 만든 주스에 꼭 벌꿀을 타먹는 거,
자꾸 쏟아대는 물대포에 무너진 가슴 맨 밑바닥의 자존심에도
돌고래처럼 꼬리지느러미를 툭툭 쳐주는 일
알고 보면, 너나없이 자기만의 춤추기에 바쁜,
그러나 특별할 게 없는 반복의 나날들 속에서
내가 이리 찾아다닌 건
어쩌면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드는
죽음처럼 확실하고 단순한 진실,
숙취한 아침 눈뜨자 머리맡에 놓여있는 맹물 한 잔
아니면, 잠자리에 누워 간밤의 달콤한 꿈을 되새김해보거나
제발 오늘만은 해가 뜨지 않기를 소망해 보는 거,
아니면, 내가 지금 여기에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하루 종일 낮술에 취해 종달새처럼 떠들어대는 거

임동확
1959년 광주 출생. 전남대학교 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대학원 박사 졸업. 1987년 시집 『매장시편』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처음 사랑을 느꼈다』, 『나는 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시론집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 등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5.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