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의 시인] 유병록
신작시: 아는 사람 / 최선을 다해서 / 연봉 협상
자선시: 회사에 가야지 / 퇴근을 하다가
[시인론] 전해수 "일상(日常)의 서(書)"
신작시
아는 사람
동료의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조문을 간다
상복 입은 동료가
모르는 사람처럼 낯설다가도
영정 속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아는 사람처럼 낯설지 않다
퇴직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세상을 떠난 분의
장례식에 간다
영정 속 미소는
본 적 없는 것처럼 낯선데
처음 만난 자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아는 사람처럼 낯설지 않다
최선을 다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
낮에 있었던 일이 자꾸 떠오른다
잊어버리면 그만일 텐데
아무도 모르는 잘못과
남들도 아는 실수가 생각난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런 뜻으로 한 이야기가 아닌데
혹시 다른 사람이 오해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 쓰이는 말이 생각난다
정말 잠들어야 하는데
내일 잊지 말고 꼭 해야 하는 일들이
하나씩 자꾸 생각난다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두지만
또 다른 게 생각난다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둔 걸 잊어버리면 어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자자, 자자, 이제는 정말 잠들자
내일 출근해서 일을 제대로 하려면
푹 자고 일어나야 한다
최선을 다해서 잠들자
이것도 중요한 업무라고 생각하면
조금 편안해진다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연봉 협상
영혼을 팔지 않겠다는 게 아닙니다
기꺼이 영혼을 팔겠습니다
그러니까
제 영혼의 값을 후하게
아니, 적어도 너무 싸게 후려치지는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자선시
회사에 가야지
알람이 울린다
출근해야지, 무성한 마음은 집에 두고 회사에 가야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아무 마음 없는 것처럼
아침 먹고 집을 나서야지
신호를 지키며 운전해야지
사무실에 들어서면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익숙한 자리에 앉아 일을 해야지
지난 회의록 정리하고 다음 회의 준비하고
일 진행되는 사정 살피고
기획안 쓰고 결재 올리고 회의하고
여기저기 전화하면 점심시간이 되겠지
점심 먹고 커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회사니까
슬픔을 나누는 일은 어색하니까
구원을 찾거나 함부로 조언을 주고받는 곳은 아니니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니까
회사의 온도는 늘 적당하지
공기는 늘 아늑하지
사람들은 모두 다정하지
일하다 보면 퇴근 시간이 되겠지
사람들과 인사 나누고 회사를 나서야지
집으로 돌아와 무사하고 보람찬 하루를 마무리해야지
아침을 기다리며 잠들어야지
그래, 출근해야지
눈물이 나기 전에 나의 아늑한 회사로 가야지
퇴근을 하다가
저는 성실한 사람입니다
늦지 않게 일어나서 늦지 않게 회사에 도착합니다
당연한 미덕입니다
복도에서 누군가와 마주칠 때마다
웃으며 인사합니다
일터의 소중한 동료들입니다
바닥에 떨어진 종잇조각을 줍기도 합니다
제 일터니까요
회사에는
즐거운 일도 있고 괴로운 일도 있습니다
대체로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저 일이 있습니다
저는 성실한 사람답게 일하고 일합니다
일이 많다고 힘겨워하거나
일이 적다고 기쁘지 않습니다
하루를 무사히 마치고
퇴근을 하다가
회사 건물을 올려다봅니다
무사한 하루란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저기 허공에
한 평 남짓한 제 자리가 있습니다
내일 아침에도 제 자리일 것입니다
저기서
꼭 제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을
제가 하고 있습니다
그게 참 마음에 듭니다
유병록 I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가 있음.
시인론 / 전해수
일상(日常)의 서(書)
ㅡ 유병록의 신작시에 부쳐
더글라스 케네디의 대표적인 소설 『빅 피쳐』(2010)의 서두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나는 몇 주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 비로소 하루가 시작됐다. 그러나 하루가 끝난 적도 없었다. (8쪽 참조)
하루하루가 고단한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묘사지만, 이 일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도 지리멸렬한 ‘하루치’ 시간의 반복이어서 삶이 도무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편치 않은 일상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하며, 잠 못 드는 하루는 정녕 길기만 한 것이다.
삶이 석연치 않다. 『빅 피쳐』의 주인공 ‘벤’과는 다르지만, 유병록의 시를 읽고 이 소설의 서두가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잠이 오지 않는다
낮에 있었던 일이 자꾸 떠오른다
잊어버리면 그만일 텐데
아무도 모르는 잘못과
남들도 아는 실수가 생각난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런 뜻으로 한 이야기가 아닌데
혹시 다른 사람이 오해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 쓰이는 말이 생각난다
정말 잠들어야 하는데
내일 잊지 말고 꼭 해야 하는 일들이
하나씩 자꾸 생각난다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두지만
또 다른 게 생각난다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둔 걸 잊어버리면 어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자자, 자자, 이제는 정말 잠들자
내일 출근해서 일을 제대로 하려면
푹 자고 일어나야 한다
최선을 다해서 잠들자
이것도 중요한 업무라고 생각하면
조금 편안해진다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ㅡ 「최선을 다해서」 전문
『빅 피쳐』에 등장하는 ‘벤’의 하루가 ‘잠’과 단절된 채로 매번 다시 시작되며 그 하루는 잠을 이루지 못함으로 쉽게 끝나지 않고 또 다른 하루로 이어진다. ‘잠’마저 내어주어야 하는 버거운 일상이다. 유병록 시인의 시 속 화자도 ‘잠’을 방해하는 일상이 존재한다. “최선을 다해” 잠들어 보려는 고단한 화자가 있다.
일견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원대한 목적을 가진 경우 그 뜻을 성취하기 위해 다짐하는 마음의 상태를 일컫는다. 그런데 위 시는 “최선을 다해서” 하는 일이 그저 잠을 청하는 소박한 꿈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화자의 “잠”은 일상을 버티는 지원책이자 절대적인 획득의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잠이 오지 않”아 하루를 복기하는 것인지 하루를 더듬느라 잠을 놓친 것인지 화자는 잠들 수 없는 날의 심경과 안간힘을 드러낸다. “자자, 자자” 스스로 주문을 걸며 “잠들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붙잡고 “최선을 다해서” 잠을 청한다.
화자가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있다. 낮에 있었던 일들 때문이다. 예컨대 낮에 벌어진 일들은 “아무도 모르는 잘못”과 “남들도 아는 실수”에 대한 반성을 불러오고 또한 다른 사람의 오해로 마음 쓰이는 말들이 자꾸만 되짚어진 것이다. 게다가 “내일 해야 하는 일들”이 혹은 그 일들을 “잊어버릴까”봐 강박에 휩싸여 화자는 더더욱 잠을 쉽게 청할 수가 없다.
“잠”은 어느새 거대한 괴물이 되어 지난 일들과 내일의 과제를 짓누르고 있다. “이제는 정말 잠들자 / 내일 출근해서 일을 제대로 하려면 / 푹 자고 일어나야 한다”는 우격다짐과 자기통제를 암시하는 위로의 독백을 통해서도 ”최선을 다해서 잠드“는 일이 절실하지만 부질없는 노력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일상(日常)이 잠드는 순간까지도 장악하는 것은 유병록 시인이 ‘하루’에 품은 시간인식(時間認識)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유병록 시인에게 하루는 사뭇 비장하거나 애잔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되지 않는 이보다 더 무거운 ‘견딤’으로 내피를 파고들고 있다. 시인에게는 이 하루가 바로 자신이 소속된 세계로의 진입을 허락받는 시간에 다름 아니다.
알람이 울린다
출근해야지, 무성한 마음은 집에 두고 회사에 가야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아무 마음 없는 것처럼
아침 먹고 집을 나서야지
신호를 지키며 운전해야지
사무실에 들어서면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익숙한 자리에 앉아 일을 해야지
지난 회의록 정리하고 다음 회의 준비하고
일 진행되는 사정 살피고
기획안 쓰고 결재 올리고 회의하고
여기저기 전화하면 점심시간이 되겠지
점심 먹고 커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회사니까
슬픔을 나누는 일은 어색하니까
구원을 찾거나 함부로 조언을 주고받는 곳은 아니니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니까
회사의 온도는 늘 적당하지
공기는 늘 아늑하지
사람들은 모두 다정하지
일하다 보면 퇴근 시간이 되겠지
사람들과 인사 나누고 회사를 나서야지
집으로 돌아와 무사하고 보람찬 하루를 마무리해야지
아침을 기다리며 잠들어야지
그래, 출근해야지
눈물이 나기 전에 나의 아늑한 회사로 가야지
ㅡ 「회사에 가야지」 전문
일상의 무기력함으로 하루치의 삶을 살아내려는 자의 분투는 오늘도 계속된다. 그런데 “회사에 가야지” 다짐하는 날들은 다른 이유가 더 있다. 무엇보다도 “눈물이 나기 전에” 회사에서 배정한 “익숙한 자리에 앉아” 주어진 일을 하며, 잊어야 하는 과거의 어떤 일이 집을 벗어나야 겨우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집을 떠나 당도한 회사는 역설적이지만 “아늑한 회사”로 탈바꿈되기도 한다. 이 뜻밖의 상반된 감정은 일순간 교차하면서 ‘슬픔을 위로받기 위해’ 화자가 일상적인 일을 겨우 해내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무사한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화자의 극대화된 고독과 슬픔을 상기시킨다. 화자는 ‘하루’를 살면서 자신의 존재함을 마주하고 스스로를 견딘다.
지나친 말일지 모르지만, ‘하루’는 유병록 시인에게는 삶의 시작점이자 끝인 것 같다. 그것은 시인이 하루하루를 다지며 살고 있다는 의미이며, 이 하루 이외의 삶은 생각해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토록 지리멸렬한 일상에 최소한이지만 삶의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자(者)의 시계추는 ‘하루’에서 머물 수밖에 없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하루로 삶의 곤궁함을 버티는 있이 사는 일의 전부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지도 모른다. 이른바 시간이 버거운 자는 이 하루가 기나긴 여정이다.
무릇 ‘일상어’이면서도 오롯이 유병록 시의 상징적 언어가 된 “회사”, “퇴근”, “최선”, “영혼”, “협상”과 같은 단어에는 삶이 답보되어 힘겨운 시간을 건너는 시인의 마음이 온전히 수혈되고 있어서 저릿하고도 먹먹하다. 물론 이 일상이 “무성한 마음을 두고 회사에 가는 일”(「회사에 가야지」중에서)이라든가 “하루를 무사히 마치고 / 퇴근을 하”( 「퇴근을 하다가」중에서)는 일 등 무사한 하루가 얼마나 복된 일인지를 깨닫게 한다는 사실은 (오히려) 다행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이 하루하루의 성실함을 다짐하게 하며, 여전히 성실함을 요구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이 일상의 무게는 유병록 시인이 겪는 삶의 무기력함과 소중함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일상의 서(書)를 한 줄 한 줄 적어가는 시인의 오늘이, 파편화된 삶의 발견 가운데 ‘죽음’을 대하는 방식에 이르러 더욱 헛헛한 감정이 표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료의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조문을 간다
상복 입은 동료가
모르는 사람처럼 낯설다가도
영정 속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아는 사람처럼 낯설지 않다
퇴직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세상을 떠난 분의
장례식에 간다
영정 속 미소는
본 적 없는 것처럼 낯선데
처음 만난 자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아는 사람처럼 낯설지 않다
ㅡ 「아는 사람」 전문
유병록 시인에게 ‘아는 사람’이 바뀌는 순간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화자는 아는 사람이 전도(顚倒)되는 낯선 경험을 한다. 장례식장에서 대면한 영정 속 얼굴과 상주의 얼굴 가운데에 그가 ‘아는 사람’은 진정 누구인가. 상복을 입은 동료가 모르는 사람이 되고, 돌아가신 동료의 영정 속 부모님이 아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은, 죽음이 그에게는 두려운 대상이라기보다 일상을 뒤흔드는 혼몽(昏懜)임을 드러낸다. 판단의 전도된 사고는 ‘죽음’이라는 현상이 ‘삶’이라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혼란스런 ‘사건’임을 암시한다. 문득 『빅 피쳐』의 주인공 ‘벤’이 ‘죽은 게리’의 삶을 위장하고 대신해서 살아간 것이 어쩔 수 없는 급박한 사태 때문이 아니며, 새 삶을 살아보는 기회로 작동했음을 믿게 된다(『빅 피쳐』의 프랑스어 번역 제목이 『삶을 살고 싶었던 남자』였음은 이 대목에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벤은 죽은 게리로 살면서 변호사의 삶을 버리고 자신이 과거에 그토록 원했던 사진가의 삶을 다시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의 삶 … …. 죽음을 목도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지만 두 번째의 삶을 내정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저는 성실한 사람입니다
늦지 않게 일어나서 늦지 않게 회사에 도착합니다
당연한 미덕입니다
(… …)
하루를 무사히 마치고
퇴근을 하다가
회사 건물을 올려다봅니다
무사한 하루란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저기 허공에
한 평 남짓한 제 자리가 있습니다
내일 아침에도 제 자리일 것입니다
저기서
꼭 제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을
제가 하고 있습니다
그게 참 마음에 듭니다
- 「퇴근을 하다가」 부분
위 시에 의하면, 성실해진다는 것은 하루를 잘 사는 일이다. 여전히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고,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무언가 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성실함은 보장되는 것이다. 이 성실함은 기특하게도 무사한 하루를 선사하며, 무사한 하루를 보낸 화자는 퇴근을 하다가 그 사실을 인지하면서 흡족해한다. 하루는 때로 이렇게 소시민적이다. 그러나 소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복된 일이다.
쓰겠습니다.
살아가겠습니다.
ㅡ 「시인의 말」 전문 (시집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2020)에서)
시인의 회감(懷感)이 함축된 위의 문장은 ‘쓰는 일’과 ‘사는 일’의 관계를 보여준다. 유병록 시인이 다짐하듯 ‘살겠다’와 ‘쓰겠다’를 생의 깊은 허무에 묻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는 일은 하루하루를 버티는 시간이다. 버티는 시간은 유병록 시인에게는 살아낸 ‘일상’을 시로 쓰는 일이기도 하다. 그에게 산다는 일은 이제 쓴다는 일을 거치지 않고는 영위할 수 없으며, 이 일상은 살아가는 일의 낯섦을 무사한 하루로 전회(轉回)하는 시쓰기의 행위와도 같은 일이 되었다. 유병록 시의 육화된 언어는 그러므로 일상의 서(書)이자 ‘무사한 하루’에 대한 기록이며 또한 이 하루에 바치는 ‘자신(自身)’이라 할 수 있다.

전해수 I
2005년 《문학선》 등단. 평론집 『목어와 낙타』 『비평의 시그널』 『푸자의 언어』, 연구서 『1950년대 시와 전통주의』 『메타모포시스 시학』, 공저 『인물로 보는 근대 한국』 『근대전환기 문학예술의 메타모포시스』 『최하림 다시 읽기』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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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