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작시
키위, 새
무엇이 먼저 입니까
키위와 키위새
이렇게 아름답지 않은 새는 처음입니다 진흙을 뭉친 듯 온통 거친 털로 뒤덮인 동그란 몸, 날개가 퇴화되어 더 이상 날지 못하는 천적이 없어 더 아득한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알라리 얄라 키위의 옛 이름은 다래, 내가 유일하게 공들이는 일은 의미 없는 후렴구를 반복하는 것
당신은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으라고 했는데
날마다 늘어나는 당신들 중에서 진짜를 찾으라니 우습기만 했죠
하나의 서사에는 저마다의 참조점이 있습니다
한 부족이 키위키위, 하고 우는 데서
이름 지어줬다는 키위새
새는 우는 겁니까
노래하는 겁니까 새는
나는 그저 분홍분홍 우는 것으로 노래할 뿐
투명한 광기가 견고하게 쌓이고 있습니다
어떤 문장에도 밑줄 긋지 않음, 다짐하는 사이
얄리얄리 얄라셩 알라리 얄라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혼자 부르는 돌림 노래에도 엇박을 잘도 넘나들다니
참 다행이죠
눈보다 귀 밝은 키위새처럼 소리로 볼 줄 안다는 거
관계없습니다
키위새와 키위 중 무엇이 먼저인지
다만 액자 속 새 우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키위 검은 씨의 항우울 효과에 기대는 것으로 충분함
그보다 우선
키위와 새 사이에 가만히 쉼표를 찍어 보는 겁니다
얄리얄리 얄라성 알라리 얄라
터키 아이스크림
이제 우리 밀고 당김을 시작해보자 밀고 당김으로 밀어를 속삭이자 밀고 당김으로 허공을 깨뜨리자 달콤한 마음을 망가뜨리자 밀고 당김으로 몸을 굽히지 말자 밀고 당김으로 착각하자 밀고 당김으로 춤을 추자 밀고 당김으로 시선을 빼앗자 밀고 당김으로 정지선을 넘어가자 밀고 당김으로 꽃잎처럼 흩날리자 밀고 당김으로 발을 내딛자 아니면 넘어지자 밀고 당김으로 실수하지 않는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 밀고 당김으로 무해한 뇌를 선물하자 밀고 당김으로 모국어를 잊자 온 힘을 다해 하찮아지자 밀고 당김으로 눈앞이 하얘지자 밀고 당김으로 이정표가 되자 밀고 당김으로 아름다운 보호색을 가진 새인 척하자 약속처럼 가능하다면 밀고 당김으로 밀고 당김을 가려보자 밀고 당김으로 예쁘게 용감해지자 밀고 당김으로 끝내 밀고 당겨보자 밀고 당김으로 현기증을 견뎌내자 밀고 당김으로 빙빙 도는 봄을 따돌리자 밀고 당김으로 그림자끼리 포옹하자 잠시 멈춤하자 다시 처음인 듯 밀고 당김으로
애완돌
친구는 요즘 애완돌 키우기에
여념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가 들려준 애완돌의 유래입니다
어떤 사람이 지인들이 모여
애완동물 키우기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던 중
애완돌 상품을 떠올리게 되었다나요
그러면서 돌이 애교가 많다고 했습니다
둥근 몸으로 잘 구르는 특성을 이용할 줄 안다고
가만 놔두면 먼지가 쌓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물로 씻어주고
헝겊으로 닦아 광을 내주는 정성이 필요하다고 말이지요
애완돌 훈련법도 덧붙여 주었습니다
이리와, 단호하게 명령한다 혹은 조금 더 힘내
앉아, 엄중한 목소리로 명령한 뒤 몰래 돌이 누워 있지 않은지 확인한다
굴러, 경사진 언덕에서 굴러 라고 말한 뒤 손에서 놓는다
앞으로도 친구는
죽지 않는 것에만 애정을 쏟을 거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자선시
수박향, 은어
한낮의 여름
수박향이 나는 물고기에 대해 알고 있니
은어라는 이름의 물고기래
때로 어떤 문장은 화석처럼 박힌다
언젠가 우리 물 맑은 곳으로 떠나자, 약속
뾰족했던 마음이 한결 둥글어질 거야
나는 생각했다
한 사람의 눈동자보다 깊은 수심은 없어, 어디에도
흐리고 비, 흐리고 가끔 비
물고기에게서 어떻게 수박향이 날까
은어는 초록 이끼를 먹고 무럭무럭 자라난대
허공에 떠다니는 우울을 알뜰하게 모아
바라봤다 나는
우리 사이, 이끼와 수박향의 거리만큼 가깝게 먼
흥얼거리는 콧노래도 없이, 투명한 여름
약속처럼 언젠가는 오지 않았고
몇 번의 여름을 서툴게 배웅하는 동안
나는 잃어버린 적 없는 시간을 그리워했다, 때때로
저기 밤의 웅덩이에서 피어오르는 목소리
은어가 돌아올 때까지 뭘 하며 지낼 거야
여름이 오지 않기를 믿으며 바라며
뭘 하며 지낼 거야 한 사람이 사라지면
원이 닫히지 않기를 바라며 믿으며
종이 위 빗방울이 마르는 동안만 뭉클할 것, 내내
이제 수박 예쁘게 자르는 방법 따위를 지우며
수심을 다스리자 안녕 초록 이끼로 번지는 우울들아
먼 데 화석으로 반짝, 밤을 건너는 물고기자리
나와 너와 귤과 탱자
오래전 시인은 가도 가도 왕십리, 노래하며 울었습니다 노래는 노래이고 울음은 울음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때로 원치 않는 주특기는 사절할 줄도 알아야겠습니다 그럼에도 돌려주지 못한 낱말 하나가 목에 걸려 있는 것도 같습니다. 출처 없는, 목에 걸린 그 무엇은 둥글고 향기로워서 주머니 속 열매를 닮기도 했습니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보다, 새콤한 해 질 녘입니다 함께 읽었던 서사에서는 한 알의 귤이 탱자가 되는 이치를 환경으로 보았습니다 서로의 환경이 되어주던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그림자조차 밤의 웅덩이로 사라지는 중입니다 그렇습니다 귤이 탱자가 되는 동안만 한 사람을 생각하기로 다짐합니다 단호하게 약속을 약속해 봅니다 어기는 것으로 다짐하며 왕십리를 걷습니다 문득 예기치 않은 모퉁이에서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해 질 녘 산책을 산뜻하게 마칠 예정입니다 문득 너는 내게 물을 수 있습니다 주머니에 든 게 무엇이니, 나는 무해한 신발코를 바라보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밤 나눠 먹던 귤의 표정으로 말입니다 출처 없이 흩날리는 낱말이 밤공기 속으로 스며듭니다 후두둑, 어디선가 가시 돋친 탱자 한 알이 떨어져도 놀라지 않겠습니다 지구는 온몸이 부서질 정도로 아프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던 길 계속 가겠습니다 가도 가도 왕십리, 노래하며 우는 방향 쪽으로 한 뼘 더
이은규 |
2006년 《국제신문》, 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다정한 호칭』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가 있음. 〈김춘수시문학상〉 수상.

사이에 쉼표를 찍는, 기다리는 시
ㅡ 이은규 시인론
1. 어떤 맹목
“삶의 과정이 인간에게 열망을 전달할 때 삶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에게 나타나는 어떤 맹목에 관하여」(1898)에서 그렇게 말했다. 제임스는 이 글에서 삶의 틈새로 흘러들어와 우리를 사로잡는 ‘어떤 맹목’(certain blindness)에 대해 썼다. 그 열망은 제임스가 인용한 에머슨의 표현대로 “영혼을 만질 수 있을 듯한, 삶의 전류를 흡수하는 능력”을 이끌어 내고 무관심과 권태를 벗어나 세계의 매혹 속에 빠져들게 한다. 이것은 “두려움이 엄습하는 기쁨”이며, 일상적인 것들을 건너가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
“어떤 맹목”은 일상과 비일상을 구분하는 경계를 넘어서는 계기가 되곤 한다. 삶의 의미가 비일상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흔한 일상의 패턴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감각할 수 있다. 우리의 경험을 초월하는 경험을 하게 되면 감각의 전환이 일어나며 삶의 의미를 해명할 수 있는 가능성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최근 시집에서 “잠시 머물렀다 사라지는 것들 / 일들의 운동성과 그것이 환기하는 존재와 부재를 포착해내는 데 탁월”1)하다는 평을 받았던 이은규 시인은 이제 현실 속에는 부재하지만 가능성으로 남아 있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인다. 존재의 사이에서 그 가능성을 읽어내기 위해 시인은 미세한 흔적들을 세심하게 들여다본다.
신작시 「키위, 새」는 키위와 새라는 이질적인 두 존재를 넘나들 수 있는 ‘사이-존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뉴질랜드의 멸종 위기종인 ‘키위새’는 “키위새와 키위 중 무엇이 먼저인지”라는 논란을 불러오곤 하는 과일 키위를 닮은 새이다. 그러나 “키위와 새 사이에 가만히 쉼표를 찍어 보는 겁니다”라고 말하는 시인은 ‘키위, 새’라고 쓰면서 키위도 키위새도 아닌 사이-존재를 만든다.
“날개가 퇴화되어 더 이상 날지 못하는 천적이 없어 더 아득한” 새는 세상이 기대하는 기능을 상실한 상태이다. 많은 신화의 서사가 그렇듯, 비일상으로의 이행은 현실에서의 실패를 전제하곤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실패와 성공은 이 세상의 기준에 의한 것이므로, 이 세계 내에서만 유효한 것이다. 하늘은 새에게 일상의 공간이다. 날개가 퇴화된 새는 하늘을 날지 못하는 대신 지상을 더 탐색할 수 있게 된다.
키위새는 서로 다른 것들의 결합이 가져오는 모호성을 상징한다. 존재는 그 자체로 모순적이지만 혼종적인 결합이 될 때 그 모순성과 모호성이 더욱 높아진다. 존재의 애매모호한 본질을 혼란스럽게 인식할수록 불안감이 높아지고, 점점 더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파악할 수 없는 내면을 가진 존재에는 깊이가 생긴다.
존재가 이처럼 모호해질 때 “날마다 늘어나는 당신들 중에서 진짜를 찾”는 일은 요원해진다. 진짜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혼돈의 세상에서 진짜를 찾으려 하면 서서히 미쳐가게 된다. 그렇게 “투명한 광기가 견고하게 쌓이”다보면 일상의 중력을 거스르는 공간이 생겨난다. 실제로는 내리막길이지만 오르막처럼 보이는 도깨비도로처럼, 많은 것들이 우리의 감각을 속인다. 착시 현상일 수 있지만, 시선의 교란에서부터 환상은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환상은 세상의 각도를 조절한다. “어떤 문장에도 밑줄 긋지 않”으며 시인은 가능성을 탐색한다.
칸트는 만인 중에 가장 현명한 사람도 환상을 소멸시킬 수는 없다고 했다. 어쩌면 그 이유는 우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 환상을 원하고 있으며, 안락하고 안정적인 삶에서 뒷걸음질 치고 싶기 때문이다. 시인이 “유일하게 공들이는 일은 의미 없는 후렴구를 반복하는 것”이다.
“얄리얄리 얄라성 알라리 얄라”라는 청산별곡의 구절은 의미 없게 들리지만 이 후렴구로 인해 리듬이 생긴다. 반복되며 리듬은 고조된다.
모든 주문은 반복적으로 읊는 행위를 통해 주술성을 획득한다. 대부분의 주문은 일상의 언어로 해석되거나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를 갖지 않는다. 시인이 공들여 “의미 없는 후렴구를 반복”한다는 것은 일종의 주술적 행위다. “혼자 부르는 돌림 노래에도 엇박을 잘도 넘나들”며 점차 신명의 경지에 도달한다. 그러면 일상에 균열이 생기고 평면적인 세계에 “투명한 광기”가 쌓여 눈에 보이지 않는 경사로가 생긴다. 그렇게 일상적 걸음이 점차 지도 위의 길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표지판도 나침반도 없이 걸어가고, 포장도로나 울타리로 구획된 길을 넘어 개간되지 않은 땅에 발을 딛는 사람의 걸음을 두고 길을 잃은 것이라 할 수는 없다. 그는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에 사로잡힌 것이다.
2. 약속, 어기기 위한
약속은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규범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사실이다. 약속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항상성이 요구된다. 그런데 만일 현실이 계속해서 변화하면 약속도 그에 따라 위태로워진다. 규범이 효력을 상실하고, 더 나아가 사라진다면 약속도 덩달아 의미를 잃게 된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보면 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약속의 의미를 변화시키고 약속을 한 계기나 원인이 된 규범에 균열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즉, 현실을 흔들기 위해 깨어지는 약속도 있는 것이다. 혹은 약속을 지킬 수 없게 하는 혼란한 현실의 문제를 드러내며 그것에 저항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래전 시인은 가도 가도 왕십리, 노래하며 울었습니다 노래는 노래이고 울음은 울음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때로 원치 않는 주특기는 사절할 줄도 알아야겠습니다 그럼에도 돌려주지 못한 낱말 하나가 목에 걸려 있는 것도 같습니다. 출처 없는, 목에 걸린 그 무엇은 둥글고 향기로워서 주머니 속 열매를 닮기도 했습니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보다, 새콤한 해 질 녘입니다 함께 읽었던 서사에서는 한 알의 귤이 탱자가 되는 이치를 환경으로 보았습니다 서로의 환경이 되어주던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그림자조차 밤의 웅덩이로 사라지는 중입니다 그렇습니다 귤이 탱자가 되는 동안만 한 사람을 생각하기로 다짐합니다 단호하게 약속을 약속해 봅니다 어기는 것으로 다짐하며 왕십리를 걷습니다
ㅡ 「나와 너와 귤과 탱자」 부분
「나와 너와 귤과 탱자」의 한 부분인 “오래전 시인은 가도 가도 왕십리, 노래하며 울었습니다”에서 “가도 가도 왕십리”는 김소월 시 「왕십리」의 한 구절이다. ‘왕십리’는 조선 시대 무학대사가 “십 리를 더 가라”는 말을 들은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기 때문에, 김소월 시에서 “가도 가도 왕십리”라고 한 것은 아무리 가도 십 리를 더 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왕십리」 속에는 그치지 않을 것 같은 비까지 내려 시적 화자가 가는 길을 온통 적신다. 이 시 속 ‘왕십리’처럼 아무리 걸어가도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곳은 끝없이 유예되는 예언처럼 절망스럽다. 우리가 길을 걸을 때 어딘가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믿음은 마치 ‘종착지의 약속’과 같다. 그러나 만약 도착이 영영 불가능하다면 어떨까? 걷는 일 자체가 고통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지켜지지 않는 약속은 이처럼 비극성을 가진다. 김소월은 「나와 너와 귤과 탱자」의 구절처럼 “노래는 노래이고 울음은 울음”이라는 구분을 없애고 노래를 하면서 울었던 시인이다. 이은규의 시는 김소월의 ‘우는 노래’에 대한 감응이다. 귤과 탱자가 비슷하지만 다른 것처럼, 시인들은 서로 마음을 겹치면서도 거리를 두고 각자를 바라본다.
“한 알의 귤이 탱자가 되는” 순간은 모든 비슷비슷한 것들에 미세한 차이의 결이 생기는 때이다. 「‘왕십리’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에서 황현산은 왕십리가 “‘십리를 가라’는 명령이면서 동시에 그 명령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한 땅의 이름”이며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다고”라고 새에게 말하는 것은 “‘늘 십리를 더 가라고만 하는 이 지겨운 유예의 땅과 시대를 통과해서”라는 의미라고 독해했다. “조금의 궂은 날 뒤에 삭망의 개인 날이 온다”는 약속이 무시되는 “단조로운 슬픔이 그의 생활 감정의 전체를 덮고 있다”는 것이다.
김소월의 「왕십리」를 빌려 와서 이은규 시인은 목에 걸려 있는 “돌려주지 못한 낱말 하나”에 집중한다. “목에 걸린 그 무엇은 둥글고 향기로워서 주머니 속 열매를 닮기도 했습니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보다, 새콤한 해 질 녘입니다”라는 구절에서처럼 ‘도착’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이 길의 비극성을 울음이 아니라 “둥글고 향기로”운 열매와 같은 가능성으로 바꾸려는 것이다. 일상에 짓눌려 “단조로운 슬픔”으로 가득찬 생활 감정에 매몰되기보다는 그는 비일상적인 새콤함, 흔한 귤이 아니라 탱자가 주는 이질적인 느낌에 골몰한다. 열매는 씨앗을 품고 있어 무언가가 자라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삶이 비극적이고 관계가 공허하더라도 시인은 “귤이 탱자가 되는 동안만 한 사람을 생각하기로 다짐”한다. 그는 약속을 하지만 그것은 곧 위반될 약속이다. “단호하게 약속을 약속해 봅니다 어기는 것으로 다짐하며 왕십리를 걷습니다”라고 시인은 쓴다. 약속을 위반함으로써 규범에 균열을 일으키고, 다시 약속을 하면서 약속을 지킬 수 없는 현실에 저항한다. 비록 모순을 품고 있지만, 이 언어는 오래 계속되는 비에 젖어 무기력해진 채 일상에 매몰되기보다는 비틀거리며 빗속을 관통하여 나가려 한다.
‘왕십리’는 계속될지 모르지만, 도달하기를 헛되게 꿈꾸기보다는 끝없이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려는 것이다. 길은 본래 무수한 걸음이 쌓여서 생기는 것이라, 걷다보면 귤이 탱자가 되듯 새로운 길이 생겨날지 모르니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약속은 위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묵시록의 약속이 그렇듯, 약속의 날이 도래하면 하나의 세계가 종말을 맞을 수 있다. 그러니 차라리 ‘왕십리’하자는 것이다. 끝나지 않는 시를 위하여.
3. 기다림
기다린다는 행위에는 약속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지만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기다림처럼, 기약 없는 기다림도 삶 속에 편재한다. 이 작품의 영어판에 '비희극(悲喜劇)'이라는 부제목이 붙어 있는 것처럼 이것은 비극이면서 동시에 희극이다.
마치 광대들의 한판 놀음을 보는 것 같은 「터키 아이스크림」을 보자. 이 시 속에서의 시적화자들은 끝없이 밀고 당긴다.
이제 우리 밀고 당김을 시작해보자 밀고 당김으로 밀어를 속삭이자 밀고 당김으로 허공을 깨뜨리자 달콤한 마음을 망가뜨리자 밀고 당김으로 몸을 굽히지 말자 밀고 당김으로 착각하자 밀고 당김으로 춤을 추자 밀고 당김으로 시선을 빼앗자 밀고 당김으로 정지선을 넘어가자 밀고 당김으로 꽃잎처럼 흩날리자 밀고 당김으로 발을 내딛자 아니면 넘어지자 밀고 당김으로 실수하지 않는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 밀고 당김으로 무해한 뇌를 선물하자 밀고 당김으로 모국어를 잊자 온 힘을 다해 하찮아지자 밀고 당김으로 눈앞이 하얘지자 밀고 당김으로 이정표가 되자 밀고 당김으로 아름다운 보호색을 가진 새인 척하자 약속처럼 가능하다면 밀고 당김으로 밀고 당김을 가려보자 밀고 당김으로 예쁘게 용감해지자 밀고 당김으로 끝내 밀고 당겨보자 밀고 당김으로 현기증을 견뎌내자 밀고 당김으로 빙빙 도는 봄을 따돌리자 밀고 당김으로 그림자끼리 포옹하자 잠시 멈춤하자 다시 처음인 듯 밀고 당김으로
ㅡ 「터키 아이스크림」 전문
밀고 당김은 “현기증을 견뎌내”며 끝없이 계속된다. 이 시는 점성이 높은 터키 아이스크림에 비유하여 관계의 점도를 빼어나게 표현하고 있다. 점성이 높은 물체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뭉쳐질 듯 뭉쳐지지 않는 것처럼 관계는 밀고 당김 속에서 역동적인 반복을 계속한다. 반복되는 것은 얼핏 보기에 똑같은 것 같지만 미세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말을 반복해도 음의 고저와 떨림과 속도까지 그대로 되풀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시 속 밀고 당김도 그렇다. 반복 속에서 온갖 행위들이 일어나 차이를 만든다. 반복인데도 치열하고 예상할 수 없다. 지구의 역사 속에서 계속 숱하게 태어나고 죽는 생명들은 크게 보면 별다를 게 없는 ‘하찮은’ 반복이지만, 유한한 삶을 사는 생명체들은 “온 힘을 다해 하찮아지”며 필사적으로 살아간다. 반복되는 사랑, 반복되는 관계에서 거듭 다가오는 이별과 죽음, 상실과 낙심은 처음 겪는 것이 아니라도 상처를 입힌다. 그리고 상처 입고 지친 채로도 우리는 다시 밀고 당긴다. 언제나 겪는 것이 어렵지, 잊기는 쉽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일은 시인의 표현을 빌면 “무해한 뇌를 선물”하는 일이다. 우리는 다시 ‘리셋’되어 지난 관계의 실패와 상심을 잊는다. 서로 밀고 당기며 삶의 균형을 잡으려 애쓴다. 시인의 표현처럼, “착각”하고 “마음을 망가뜨리”고 “예쁘게 용감해지”는 것이다. 관계의 시작은 망각을 필요로 한다. 지난 관계의 실수와 고통을 그대로 기억한다면 새로운 관계 속으로 나아갈 용기를 가질 수 없다. 그래서 기억은 고통을 희석시키고, 망각은 “무해한 뇌”를 선물한다. 사랑을 잃고 새로운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이별을 겪고 시작된 만남에서 또 다른 이별을 예감하는 사람처럼 우리는 끝없이 되풀이되는 후렴구처럼 게임을 다시 시작한다.
“밀고 당김으로 그림자끼리 포옹하자”라는 구절은 따뜻하게 읽힌다. “실수하지 않는 실수”라는 구절은 흥미롭다. “밀고 당김으로 허공을 깨뜨”릴 수 있는 가능성은 바로 그 실수에서 나온다. 이 행위에는 완성이란 없기 때문에 무수한 변수를 만들어내는 실수 자체가 목적이 된다. “잠시 멈춤하자 다시 처음인 듯 밀고 당김으로”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이 우리의 하루하루를 계속되게 한다. 한 사람이 세계 속에 차지하는 비중이 작은 돌멩이 하나처럼 미미하다 해도, 경사로를 만들어 역사 속에 끝없이 굴러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삶은 불가해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정답이 없고 무수한 해석이 가능하다. 「애완돌」에서 돌을 키우고 돌보는 ‘친구’는 돌에 자기만의 의미를 부여한다. 돌은 굴리기에 따라 빠르게도, 느리게도 구르고 굴러가는 지형에 따라 다르게 구를 수 있다. 애정을 가질 수 없을 만한 것에도 ‘열망’이 개입되면 의미가 생기고 애착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기다림은 열망을 가지는 것과 비슷하다. 기약이 없을수록 더욱 그렇다. “언젠가 우리 물 맑은 곳으로 떠나자, 약속 / 뾰족했던 마음이 한결 둥글어질 거야 / 나는 생각했다 / 한 사람의 눈동자보다 깊은 수심은 없어, 어디에도”(「수박향, 은어」) 라는 시의 속삭임은 우리의 마음을 둥글게 만든다. “한 사람의 눈동자”의 수심을 헤아릴 수 있는 눈길은 둥글다. 물방울과 숟가락과 열매가 그렇듯, 무언가를 살리는 것들은 둥글기 마련이다. 뾰족한 데가 없어 거대한 성도 신전도, 감옥도 될 수 없지만 둥근 것들은 목마른 이의 입술을 적시고, 한 목숨을 살린다.
시는 ‘사이’를 만든다. 사이가 없다면 우리는 건너갈 수 없고, 쉴 수 없고, 사색할 수 없다. 그리고 사이가 없다면 기다림도 없다. “언젠가 우리 물 맑은 곳으로 떠나자”라고 시인은 말했다. 이은규 시가 만드는 쉼표들 안에서 그녀의 다음 시집이 데려갈 “물 맑은 곳”을 기다려보고 싶다.
1) 조대한,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이은규 시집, 문학동네, 2019) 시집 해설 중.
김지윤 ■ 시인, 문학평론가
2006년 《문학사상》 등단.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 시집 『수인반점 왕선생』 등이 있음. 현재 숙명여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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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시인 2021년 11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