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시인
 
이달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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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맨드라미의 심연

 

 

 

 

  영화 같은데 영화는 아니었다

  병원은 분주한데 빨간 맨드라미 꽃밭이었다

 

  뱅크시의 낙서 그림 같은 콘크리트 벽에 그려진

  부러진 횡경막과 다친 심장의 빨간 피

 

  결코 분업할 수 없는 고통이라는 것

  나의 고통은 연년세세 나만의 고통인데

  갑자기 붉은 맨드라미 꽃밭이 두 팔을 살짝 들고 나만 들리게 부르는 것 같았다

  만세는 함께 부르는 것 같지만 실은 혼자씩 부르는 것이다

 

  울고 울고 울다가 스스로 끓는 물이 되어 한 톤 트럭의 달걀을 다 삶은 물불 모르는 눈물이 있었다

온 천지가 빨간 불이었다

 

  어쩔 줄 모르고 갑자기 온몸에서 불이 난 빨간 불이 되었다

  맨드라미의 심연 같은 환희의 약용의 힘!

 

  사랑을 깨닫기까지 욥기 42장이 걸렸습니다

 

 

 

 

 

 

 

 같이 죽자는 말

 

 

 

 

  그런 말을 해보았는가

  같이 죽자는 말

 

  사랑이 없으면 못하는 말

  사랑이 있어도 못하는 말

  차라리, 라는 검은 말이 깊은 밤 문장의 마차를 몰고 가는 말

 

  어찌하다가 같이 죽자는 말

  번개같이 예쁜, 정신이 번쩍 드는 섬광의 말

  그럼에도 언제나 빛은 있다는

  검은 바다를 끌고 푸른 나팔꽃을 지나가는 새벽의 말

 

  그런 말을 들어보았는가

  차라리, 라는 말을 구원하는 것은

  오히려, 라는 말이라고

 

  꿈과 악몽으로 이루어진 삶의 문턱에서

  찢어진 레테강의 물결을 두 손에 뚝뚝 들고서

  때로 침몰의 반대편으로 힘껏 가자는

  오히려, 라는 그 기적의 말

 

 

 

 

 

 

 감자꽃이 싹트는 것

 

 

 

 

  감자를 깎으려고 지하실 푸대에서 감자를 꺼냈을 때

  주렁주렁 딸려 나오는 무슨 주먹 같은 것

  쭈글쭈글한 주먹마다 보라색 꽃순이 싹텄는데

  감자에서 싹이 나서 감자꽃

  독을 머금고 꽃이 피어난 감자는 못 먹는 감자래

  꽃이 독을 품은 거라

  (가시가 많은 꽃이 색깔이 진하다는데)

  어떤 마음을 먹고 주먹을 꽉 쥐고 숨었길래 독이 꽃이 되었을까?

  내가 힘은 없지만 꼭 너를 죽여야겠다고

  감자 속에 숨은 마음이 주먹이 되어서

  주렁주렁 감자가 보라색 꽃순을 피웠는데

  증오는 너무 자해적이야

  독이 생활 속에 스며들어 감자가 보라색 꽃을 피웠다

  꽃이 핀 감자는 못 먹는 감자

  무수한 주먹들이 서로 목을 감고 뒤엉켰다

 

  생활이라는 것

  때로 주먹을 활짝 펴서 양산처럼 빛을 받아야 하는데

  꽉 쥔 주먹이 펴지지가 않아서

  베란다에 앉아 가위로 손가락을 하나하나 오리고 있다

  때로 도심의 지붕 아래 감자 푸대를 말려야 하는 임상적 이유

  썩은 감자들을 베란다 한곳에 몰아놓았더니

  주먹들이 발악을 했는지 봉분만한 보랏빛 꽃밭을 이루었다

  주먹만 한 감자에서 싹이 터서 감자꽃

  뭐랄까,

  자전을 하면서 공전도 하는 그런 삶이어야 한다고 했다

 

 

 

 

 

 

 

 


자선시


 

 

 

 

 오월 모나리자의 미소

 

 

 

 

  타버린 숯에서만 흘러나오는 절창이 있다

  뼈를 대패로 깎으며 살아온 세월이 있다

 

  재학아, 문재학아, 계엄군이 들어온다는 날

  아들을 찾으러 도청에 나갔어요

  도청에서 나를 만난 재학이가 말해요

  엄마, 창근이가 죽었는데 나만 집에 가면 되겠냐고 물어요

  엄마는 할 말이 없었다

  친구가 죽었는데 내 아들만 데리고 가면 되겠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도청에서 나 혼자 나왔어요

  재학이는 그 날 도청에서 죽었어요

  (내가, 내가... 사람일까요?)

  (이런 사람도... 어머니일까요?) 

 

  하얀 민들레 밭을 머리에 인 오월 어머니는

  피렌체의 모나리자보다 더 아름답다

  거느릴 것 다 거느리고 누리는 평화가 아니라

  살아서 육탈한

  그 가슴에 신에 대한 질문을 가졌기 때문에

 

  흰 민들레 같은 어머니의 잔잔한 미소는

  인간의 법정에서

  인간의 얼굴들을 하얗게 만들었다

 

  뼈를 대패로 깎으며 살아온 시간

  움직이지 않는 절대 그날, 오늘도 그날,

  그녀의 기억은 원근법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신의 법정에서 신은 그녀에게 무엇을 되돌려 줄 것인가?

 

 

 

 

 

 

 

 

 밤의 물방울 극장

 

 

 

 

  배의 검은 유리창에 물방울들이 소리 없이 매달려 있다

  음이 소거된 밤의 유리창에는 지옥도 천국도

  한 편의 심야영화 같고

  유리창에 아직 맺혀 있는 물방울

  단 하나의 눈동자, 클로즈업,

  물방울은 지금 안을 고요히 들여다보고 있다

 

  막차를 탄 사람들 사이엔 어떤 비애와 너그러움이 흐르는데

  어떤 물방울에도 이야기가 많겠지만

  물방울은 물방울끼리 손목을 잡고 주르륵 굴러떨어지고

  카날 그란데, 베네치아 밤물결에 별빛이 굽이친다

  배 유리창에는 물방울 속에 피곤한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져

  밤의 풍경이 되어간다

  카도로! 카도로! 뱃사공의 소리가 밤을 울리고

  물방울은 주르륵 굴러떨어져 대운하의 물결에 합류한다

 

  이 허무의 무대에서 굽이치는 물결만이 영원한 것처럼

  죽음은 이렇게 밤의 인물화가 풍경화가 되어가는 과정

  풍경이 된 모든 밤이 아름답고

  배를 타고 더 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파도는 높고 바람은 강하고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 물방울

  이름도 고향도 없는 물방울

  유서도 유산도 없는 물방울  

 

  베네치아의 밤은 카날 그란데를 흘러가고

  강물은 흐르고 사람은 가고

  찰칵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

  외롭게 라이터 켜는 소리

  왈칵 별빛 쏟아지는 소리

  등대도 없는 밤바다에 물방울은 심야극장을 이루며

  캄캄한 바다 저 너머로

  검은 관처럼 출렁출렁 흘러가고 있다

 

 

 

 

 

김승희 |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태양미사』 『왼손을 위한 협주곡』 『미완성을 위한 연가』 『달걀 속의 생』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 『냄비는 둥둥』 『희망이 외롭다』 『도미는 도마 위에서』 등, 소설집 『산타페로 가는 사람』이 있음. 〈소월시문학상〉 〈고정희문학상〉 〈올해의예술상〉 등 수상. 서강대학교 명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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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성도(聖徒)의 행로 

 

 

 

 

1970년대 김승희 시의 출현은 문학사적 사건이었다. 70년대에서 80년대로 넘어오면서 한국시는 대단한 변화를 겪었다. 사회가 경직될수록 해방의 추동력은 강하게 작용했다. 억압에 비례하여 슬픔의 표현도 격렬하고 고통의 표출도 극렬했다. 감정의 과잉 속에 저항이 양식화되었다. 그것은 비단 정치적 저항만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모든 외압(外壓)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일군의 여성 시인들이 새로운 화법으로 여성시 변화의 물길을 열었다. 그 선두에 놓인 시인이 김승희였다.

김승희는 1973년에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1979년에 첫 시집 『태양미사』를 간행한 후 『왼손을 위한 협주곡』(1983), 『미완성을 위한 연가』(1987), 『달걀 속의 생』(1989) 등을 연이어 간행하여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그의 시는 앞뒤를 재거나 좌우를 돌아보지 않고 내면의 정동(情動)을 원색적인 어사로 드러냈다. 강렬하고 집중적인 추동력에 있어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작년에 발표한 「시인의 거짓말」(《시와 함께》, 2020. 봄호)에서 김승희 시인은 가끔 “태양과 비와 바람이 하는 일을 내가 다 했다”는 식의 거짓말을 한다고 썼다. 그 구절을 읽었을 때 40년 전에 읽은 「태양미사」의 첫 구절이 떠올랐다.

 

 

어둠이 태양을 선행하니까

태양은 어둠을 살해한다.

현실이 꿈을 선행하니까

그리고 꿈은 현실을 살해한다.

구름의 벽 뒤에서

이제는 태양을 산책하는 독수리여,

나는 감히

신비스런 미립자의 햇빛 파장이

나의 생을 태양에 연결시킬 것을

꿈꾸도다.

― 「태양미사」 부분

 

첫 시행부터 “태양은 어둠을 살해한다”는 선언적 발언을 했다. 이처럼 논리적이면서도 담대하게 어둠을 살해하고 태양의 사제가 되겠다고 밝힌 시인은 그 시대에 없었다. 성북동 주택가를 도는 비둘기가 아니라 태양을 산책하는 독수리가 되겠다고 선언한 여성 시인도 없었다. 그는 그만큼 도전적이었고 진취적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최승호는 “활화산 같은 광기”라는 말을 했는데 그것은 과장된 표현이고 뜨거운 열정이라는 말은 할 수 있다. 김승희는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열정으로 빛의 세계를 향해 돌진했고 그것을 저해하는 요소에 항거했다. 시간이 지난 후 자신의 시를 점검하면서 “‘왼손의 광기’에서 ‘오른손의 슬픔’으로의 변화”를 도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삶의 구체적인 양상을 이성적으로 성찰하겠다는 뜻으로 나는 이해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우여곡절을 거치며 세상은 변했다. 그러나 그가 가졌던 생에 대한 뜨거운 관심, 그리고 태양을 향한 의지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삶의 현장과 변화에 관심을 두는 열정의 시인이다.

『냄비는 둥둥』(창비, 2006. 7.)은 50대 중반에 낸 시집인데 거기서도 강렬하고 자유로운 정신이 여전히 빛을 발한다. 언어의 실험성을 잃지 않은 활달하고 거침없는 화법은 청신하고 매혹적이다. 긴 시를 즐겨 쓰던 그가 짧은 시도 여러 편 넣었는데, 그 시들이 더 흡인력이 강하다. 두 편만 인용해 보겠다.

 

폭설의 밭 속에서 살고 있는 것들!

백설을 뻗치고 올라가는 푸른 청보리들!

폭설의 밭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들!

시퍼런 마늘과 꿈틀대는 양파들!

다른 색은 말고 그런 색들!

다른 말은 말고 그런 소리들!

 

하루를 살더라도 그렇게

사흘이나 나흘을 살더라도 그렇게!

ㅡ 「갑자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들렸다」 전문

 

새벽에 너무 어두워

밥솥을 열어 봅니다

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

으스러져라 껴안고 있습니다

별이 쌀이 될 때까지

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랑 무르익고 있습니다

ㅡ 「새벽밥」 전문

 

두 편의 시가 하나는 제목이 길고 하나는 짧다. 앞의 시 제목은 일반적 통념을 넘어선 독특함이 있다. 따옴표도 없이 느낌표를 넣은 상태로, 어떤 말이 들렸다고 해놓고, 시 본문에서 그 말이 나올 만한 상황을 제시했다. 시행 끝에 느낌표를 연이어 붙여서 의미의 강세를 확실히 드러냈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내심을 드러내던 젊은 날의 자유의지가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냉혹한 외부의 시련과 압박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리는 생의 몸짓들이 주는 감동과 거기서 촉발되는 생의 의지를 간결하면서도 힘차게 표현했다. 작은 움직임과 미미한 색과 소리에서 생의 의지를 느낄 정도로 시인이 현재 생의 압박에 놓인 상태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독자인 나는 정말로 사흘이나 나흘, 아니 하루를 살더라도, 시련과 압박에 굴하지 않고, 양파처럼 마늘처럼 푸른 보리처럼 솟아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운명의 모진 발굽에 차여 폭설의 극한에 처했을 때 이런 시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 시는 운명에 타격을 입은 가련한 사람들을 위안하는 힘을 지닌다.

「새벽밥」은 소재나 정황에서 여성의 체험에 바탕을 두었다. 그러나 밥은 누구나 먹는 것이기에 공감의 폭이 크다. 새벽에 너무 어두워 밥솥을 열어 본다는 구절이 상징적이다. 어둠에서 벗어나기 위해 삶을 생각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쌀과 밥은 삶의 영역을 상징한다. 밥솥에는 당연히 밥이 있었을 텐데 시인은 그것을 하늘의 별로 생각했다. 별이 밥이 되어 “으스러져라 껴안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하늘의 별은 듬성듬성 성글게 떠 있지만 밥솥의 밥은 촘촘히 밀착해 있다. 이렇게 으스러져라 껴안고 있어야 힘을 만드는 것이다. 별은 성글고 쌀은 알갱이로 구르지만 밥은 결속되어 있다. 그 모양을 보니 시인도 힘이 난 듯하다. 너무 어두워 밥솥을 열어 본 보람이 있었다. 거기서 촉발된 삶의 힘을 시인은 ‘사랑’이라고 했다. 이 ‘사랑’은 이번의 신작 「맨드라미의 심연」에도 나온다.

「맨드라미의 심연」은 생사가 바쁘게 돌아가는 분주한 병원을 배경으로 했다. 사람들이 정신없이 움직이는데 꽃밭에 맨드라미가 빨갛게 피어 있다. 그 붉은 빛은 당연히 피를 연상시키고 정지의 긴박감과 죽음의 불길함도 환기한다. 환자는 환자대로 보호자는 보호자대로 고통을 겪는데, 결국 인간의 고통은 협업도 분업도 안 되고 오로지 혼자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병원에서 보았던 붉은 맨드라미 영상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화자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 고통을 “연년세세 나만의 고통”이라고 했다. 고통의 현장에서 느낀 슬픔의 강도는 “스스로 끓는 물이 되어 한 톤 트럭의 달걀을 다 삶은” 정도의 엄청난 것이었다. 그것과 대응하여 붉은 맨드라미 꽃밭을 보는 자신의 가슴은 “온 천지가 빨간 불”이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거치자 슬픔의 극한에서 갑자기 온몸에 의지의 불길이 솟아나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앞의 「갑자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들렸다」에 나온 생명의 힘의 발견과 유사하다. 금단의 신호 같았던 맨드라미의 붉은 빛이 갑자기 생명의 타오르는 힘으로 전환된 것이다. 그것을 시인은 “맨드라미의 심연 같은 환희의 약용의 힘!”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약용은 ‘藥用’, 약으로 사용한다는 뜻일까, ‘躍踊’, 힘차게 뛴다는 뜻일까? 어느 것이든 변화를 나타내는 것은 분명하다. 고통이 환희로 바뀌는 변화! 그러한 변화의 상징으로 구약성서 ‘욥기’를 끌어왔다. “사랑을 깨닫기까지 욥기 42장이 걸렸습니다”가 그것이다. 42장으로 된 ‘욥기’는 욥이 겪는 고통과 그것에 대한 친구들과의 논쟁을 거쳐 종국적으로 하느님의 절대 사랑을 깨닫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처럼 시인도 고통의 과정을 거쳐 마음에서 우러나는 삶의 힘을 자각한 것이다. 「새벽밥」에서처럼 시인은 삶의 힘을 ‘사랑’이라는 말로 대치했다.

세상을 살면서 사랑을 얻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은 고통의 시간 속에 기다림을 유지해야 오는데, 시간의 침식을 받는 세월 속에 기다림을 유지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생은 때로 검은 관을 싣고 흐르는 강물 같아서 “허무의 무대에서 굽이치는 물결만이 영원한 것”(「밤의 물방울 극장」) 같은 암울함을 안겨준다. 가혹한 상실을 체험한 사람에게 산다는 것은 “뼈를 대패로 깎으며 살아온 세월”(「오월 모나리자의 미소」)로 다가온다. 이런 상황에서 “타버린 숯”이 어떻게 절창을 만들 수 있을까? “흰 민들레 같은 잔잔한 미소”가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분노의 주먹을 거두지 못해 주먹마다 독을 품은 보랏빛 꽃을 피우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니던가. 어떻게 하면 욥 같은 처절한 고통을 겪지 않고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

시인은 비유로 “자전을 하면서 공전도 하는 그런 삶”(감자꽃이 싹트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자전과 공전은 태양과 관련된 말이다. 40여 년 전 「태양미사」에서 노래한 태양에의 회귀를 염두에 둔 발상이다. 지구는 스스로도 돌면서 태양 주위를 돈다. 자전과 공전을 함께 하는 것이 지구의 운명이기에 인간도 그 운명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말은 인간은 혼자 살지만 남들과도 함께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것은 희망을 내포한 잠언이다.

김승희 시인은 젊을 때부터 태양 회귀를 꿈꾸었다. 물론 비유적 차원의 표현이지만, 모든 시적인 비유에는 인간의 진심이 있다. 4년 전의 시집 『도미는 도마 위에서』(난다, 2017. 6.)의 ‘시인의 말’에서 시인은 “당신을 위한 꽃들의 제사”를 이야기했다. 자신이 지향하는 대상을 향해 자연과 인간의 모든 창조가 집중되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도미는 도마 위에서 꽃처럼 늠름하다 / 살다 죽는다”라고도 했다. 생명이 끝나는 그날까지 당당하게 태양을 추구하다 죽겠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태양을 향한 생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거기 수록된 시에는 마음의 안정을 얻어 유머의 화법으로 태양으로 가는 길을 가볍게 노래한 작품도 있다.

 

모르는 도시에 가서

모르는 강 앞에서

모르는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과 나란히 앉아

모르는 오리와 더불어 일광욕을 하는 것이 좋다

 

(중략)

 

모르는 햇빛 아래 치솟는 모르는 분수의 노래가 좋고

모르는 아이들의 모르는 웃음소리가 좋고

모르는 세상의 모르는 구름이 많이 들어올수록

모르는 나의 미지가 넓어지는 것도 좋아

나는 나도 모르게 비를 맞고 좀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

모르는 새야 모르는 노래를 많이 불러다오

모르는 내일을 모르는 사랑으로 가벼이 받으련다

ㅡ 「여행으로의 초대」 부분

 

“모르는 오리와 더불어 일광욕을 하는 것이 좋다”에 담긴 시인의 유머 감각, “나도 모르게 비를 맞고 좀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에 담긴 상승의 자발적 의지를 함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등단으로부터 지금까지 실추의 체험 속에서도 희망의 의지를 잃은 적이 없다. 내일 알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만나리라는 희망의 의지가 그를 좀 더 나은 사람의 자리로 밀어온 것이다. 그 전의 시집 『희망이 외롭다』(문학동네, 2012. 12.)에는 발터 벤야민의 마지막 삶을 소설로 엮은 제이 파리니의 『벤야민의 마지막 횡단』의 한 구절이 인용되어 있다. “이 세상은 항상 폐허야. 하지만 (중략) 우리가 아주, 아주 열심히 노력한다면, 우리는 선을 상상할 수 있을 거야.” 이 구절처럼 폐허의 낙담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아주 열심히 노력하면 태양 가까이 이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그를 이끈 동력이 된 것이다.

앞에서 “자전을 하면서 공전도 하는 그런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주 도식적으로 단순화하면 이 말은 나도 생각하고 남도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물론 남들과 함께 살아간다. 어떤 때는 남들과 싸우기도 하지만 사랑도 나눈다. 평생 잊지 못할 불멸의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게 사랑에 빠져 함께 살면 함께 죽을 수도 있나? 그러나 같이 죽자는 말은 함부로 발설하지 못할 무서운 말이다. 그 말은 최후의 결단을 내릴 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이 말이 담긴 시를 다시 인용하고 정독해 보겠다.

 

그런 말을 해보았는가

같이 죽자는 말

 

사랑이 없으면 못하는 말

사랑이 있어도 못하는 말

차라리, 라는 검은 말이 깊은 밤 문장의 마차를 몰고 가는 말

 

어찌 하다가 같이 죽자는 말

번개 같이 예쁜, 정신이 번쩍 드는 섬광의 말

그럼에도 언제나 빛은 있다는

검은 바다를 끌고 푸른 나팔꽃을 지나가는 새벽의 말

 

그런 말을 들어보았는가

차라리, 라는 말을 구원하는 것은

오히려, 라는 말이라고

 

꿈과 악몽으로 이루어진 삶의 문턱에서

찢어진 레테강의 물결을 두 손에 뚝뚝 들고서

때로 침몰의 반대편으로 힘껏 가자는

오히려, 라는 그 기적의 말

ㅡ 「같이 죽자는 말」 전문

 

웬만한 사람은 평생 살면서 같이 죽자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할 정도로 극한상황에 몰리는 사람은 소수고 극한상황에 몰렸다 하더라도 같이 죽자는 말을 하는 사람은 더 소수일 것이다. 그것은 시인의 말 그대로 “사랑이 없으면 못하는 말 / 사랑이 있어도 못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을 진심으로 누군가가 하고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면 “번개 같이 예쁜, 정신이 번쩍 드는 섬광의 말”임에 틀림없고 “검은 바다를 끌고 푸른 나팔꽃을 지나가는 새벽의 말”인 것도 분명하다. 그것은 어둠에서 어둠으로 가자는 말이 아니라 어둠에서 빛을 찾자는 긍정의 말이다. 악몽에 휩싸인 침몰의 강둑에서 “침몰의 반대편으로 힘껏 가자는” “기적의 말”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벤야민의 화법을 빌리면, 폐허 속에서 인간을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선한 의지의 말이다. 고통을 넘어서서 함께 살자는 뜻을 “오히려” 같이 죽자고 하는 말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김승희는 예나 지금이나 태양 회귀의 의지를 신념으로 바꾼 사랑 제전의 제사장이다. 과거의 기억도 현재의 경험도 모두 사랑의 힘으로 집약되고 태양의 의지로 귀결된다. 그는 그 의지를 “언제나, 그리고 영원토록” 지킬 것임을 젊은 시절에 선언했다. 그로부터 50년 가까이 그 선언에 충실한 시적 삶을 살았다. 세월이 안겨주는 육체의 변화는 태양을 지향하는 인간이 치러야 할 어쩔 수 없는 대가(代價)다. 그 변화를 운명으로 수용하면서 초심(初心)을 밀고 나가는 것이 태양 성도(聖徒)의 행로다. 그 행로에서 조금도 이탈하지 않았음을 김승희의 최근 시작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숭원 ■ 문학평론가

1986년 《한국문학》 등단. 저서 『탐미의 윤리』 『몰입의 잔상』 『김종삼의 시를 찾아서』 등이 있음. 〈김달진문학상〉 〈편운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등 수상.

 

 

 

 

이달의시인 2021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