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작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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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멀리 떠나기로 결심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그러나 주말이 끝나기 전에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로만 먼 곳으로
가서는 제철 음식을 먹기로 했다 초봄에 어울리는 여리고 어린 쑥과 향기로운 더덕, 살이 오른 어류들, 평소에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많이 먹어 본 적 없는 것들을 너는 떠올렸다
너는 인적 없는 바다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마음을 먹고 있었다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다는 데 놀라며 자연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새삼 감탄하며 기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기쁨은 이렇게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찾아온다
멀리 떠난 너는 죽음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너는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숨을 쉬었다 여전히 두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너는 주말이 끝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갔다
슬픔은 바닥을 뒹구는 깨진 유리병 사이에 앉아 돌아올 너를 상상하고 있었다 |
음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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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고 동네를 거닐다가 이르게 핀 꽃을 보았는데 그것이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 보여 애통하였다 점심에 사촌 내외가 찾아와 함께 식사하였는데 아이가 복통을 일으켜 황급히 병원에 갔다 저녁에는 오래도록 기다려왔으나 사놓고 읽지 못한 책을 읽었는데 결국 다 읽지 않고 그만두기로 하였다
꿈에는 기쁜 얼굴로 웃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것이 누구인지 생각나지 않아 곤란하였다 아침에 눈을 뜨고 동네를 돌다가 전날 본 꽃의 이름이 무엇인지 생각났는데 꽃은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니 치우지 않은 책상이 보여 그것을 정리했다 점심을 거르고 저녁을 배불리 먹었고, 상하기 직전의 키위를 꺼내어 잘라 먹었다
종종 마당에 빛이 내려와 한동안 머물다 떠났다 자주 슬픔을 느꼈으나 까닭이 떠오르지 않았다 |
알리에서 물개 인형을 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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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쓴 사람이 바지를 입은 사람에게
진심이야?
말해버렸고 그렇다고 진심이 확인되지는 않았다
팔을 뻗으면 손에 닿는 것들
불을 켜면 익숙한 거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섰을 때는 너무 어두워서 남의 집에 잘못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에 빠진 사람이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엎드려 빌던 날의 기억
침실에는 내가 사지 않은 인형이 올라와 있었고
그때에야 생각나는 그날의 진심
우산을 쓴 사람이 우산을 쓴 채로 거리를 걷는다 비가 다 그친 줄도 모르고 |
자선시
이미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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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 하나 나무 의자 둘
잠시 찾아와서 내려앉는 빛
이 장면은 폐기되었고
이해하자 좋은 마음으로 그런 거잖아 하나 서양 난 화분이 쓰러진 모양이 둘
너는 그런 걸 어떻게 다 기억하니(다 날아가고 눈 코 입만 남은 사진 그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날들의 기억)
사진관에 모이는 것으로 마음을 남기던 시절의 기억 속으로 내려오는 저녁이 하나 휘어지는 빛이 둘
(이 순간을 어떤 영화에서 본 것만 같다고 잠시 느꼈을 때, 그것이 어떤 시절에만 가능한 착각이라는 점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나서의 부끄러움)
죽은 아름다움 하나 부서진 나무 의자 다섯
자꾸 뭘 기억하려고 그래(여전히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빛) 예전에는 이렇게 많이들 날려서 찍었지?
(작은 강의실이 젊은 옛날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미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귀를 기울이세요 말하는 사람과 이미지인데 왜 귀를 기울여요 말하는 사람)
웃으세요 친구끼리 왜 그렇게 멀찍이 서 있어요
그 말을 듣고 그냥 웃는 사람의 얼굴이 하나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이 사라짐
그 장면은 경험하지 않은 것으로 하고
빛이 들어가면 다 상하니까 어둡고 서늘한 곳에 보관하세요
불 꺼진 실내에 웅크리고 앉은 빛 |
고요의 풍속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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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봅니다 함께입니다
강을 보는 동안에는 강물이 흘러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진 속에서는 그럴 수 없지요
사진 구석을 잘 보면 가마우지가 하나 부리에 걸려있는 사람의 손이 하나
그런 현실은 없지요
함께 강을 봅니다 강은 한국의 강이고, 남해로 흘러갈 것입니다(사진이라 멈춰 있습니다)
“배고프지 않아?” “응, 안 고파”
한국어의 부정 의문문은 항상 쓰면서도 헷갈리지요 국립박물관은 어둡고 넓습니다 어둠은 물처럼 고이고 또 흘러 흘러
식당 테이블 아래 두 사람의 발 근처에 모입니다
배가 안 고파도 밥을 먹는 것이 현대의 어둠이라는 말은 아닙니다만…… 한 사람은 역사적 유물을 본 따 만든 아치교의 난간에 걸터앉아 있고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을 핸드폰으로 찍고 있습니다
그런 사진을 감상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두 사람은 밥을 먹습니다
밥은 어둠 속으로 넘어가고, 어둠과 물이 함께 흐릅니다 역사도 흐릅니다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강물은 흘러 흘러 남해로 가고 모든 것은 그렇게 사진 속에 고정되어 있고
그래도 강물은 흘러간다고 생각했습니다 |
황인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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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구관조 씻기기』 『희지의 세계』 『사랑을 위한 되풀이』가 있음. |

사랑의 파국
― 황인찬 시인 작품 읽기
이것은 사랑의 파국을 노래한 시다.
위의 문장을 써놓고 단 한 줄도 덧붙이지 못한 상태로 며칠을 흘려보냈다. 사랑을 잃은 자에겐 곁에서 묵묵히 술잔을 기울이는 행위가 최고의 위로이듯, 시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어쩌면 내 몫으로 채워진 슬픔을 비우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며칠 동안, 꽤 오래전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리뷰를 쓰며 스치듯 궁금해 했던, 당시에는 무심코 지나쳤으나 지금은 유의미해진 어떤 기억을 잠깐씩 떠올렸다. 주지하다시피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맨 마지막 장은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무화과 숲」)라는 구절로 끝나고 있다. ‘혼내다’는 매우 심하게 꾸지람을 하거나 벌을 준다는 의미다. 그러나 사랑을 놓고 누가 누구를 혼낼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도 알 만큼 안다고 자부하며 어른이 될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 아닌가? 물론 황인찬 시에서의 ‘사랑’이 수치스러운 죄의식을 강제하고, 그만큼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난 지점에 있음을 몰랐을 때의 일이다.
예의바르지만 은근한 차가움 때문인지 그의 시는 순결하면서 미성숙한 자기애의 성향이 짙다는 편견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다. 그런 기억과 함께 황인찬의 시를 다시 읽는다. 일상이라는 용어가 무색할 정도로 인간적인 목소리가 가득한 그의 시는, 시적인 형태를 깨끗이 지워버림으로써 오히려 낯설면서 정서적 울림이 크다. 이 시대의 예술이 “순수하기보다는 잡종적이고 깨끗하기보다는 타협적이며 명확하기보다는 애매하다.”란 말은 황인찬의 시를 근거로 새롭게 정의 내릴 필요가 있다. 그의 시는 쉽고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매우 애매하다. 분명한 것은 그의 시가 온몸으로 사랑의 파국을 외친다는 사실이다. 이토록 부드러운 절망과 커다란 침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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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멀리 떠나기로 결심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그러나 주말이 끝나기 전에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로만 먼 곳으로
가서는 제철 음식을 먹기로 했다 초봄에 어울리는 여리고 어린 쑥과 향기로운 더덕, 살이 오른 어류들, 평소에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많이 먹어 본 적 없는 것들을 너는 떠올렸다
너는 인적 없는 바다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마음을 먹고 있었다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다는 데 놀라며 자연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새삼 감탄하며 기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기쁨은 이렇게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찾아온다
멀리 떠난 너는 죽음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너는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숨을 쉬었다 여전히 두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너는 주말이 끝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갔다
슬픔은 바닥을 뒹구는 깨진 유리병 사이에 앉아 돌아올 너를 상상하고 있었다 ㅡ 「마음」 전문 |
이 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언어의 사용, 경험에서 우러난 꾸밈없는 화법으로 시의 어구가 느슨하다. 황인찬이기에 가능한 방식이리라. 일반적 시의 덕목인 모호한 분위기나 다의적인 암시도, 회화라든가 음악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시어의 운용이 독자들의 자율적 해석을 불러오는 상상력을 요구하지 않기에 역설적으로 낯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두는 독자가 사랑의 파국을 맞이한 주체의 ‘마음’에 몰입하도록 하는 효과를 낳는다.
사랑은 온힘을 기울여 자신을 그 사람에게 투사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사랑을 상실한 자는 멀리 떠남을 선택한다. 사랑이 그를 배제했기에 그 역시 매일 매일의 삶에 동참하기를 중단하는 것이다. 또한 그 여행에서 ‘너’가 “여전히 두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고백은, “그가 없으면 자신을 만회할 수도 되찾을 수도 없”(롤랑 바르트)지만 자신이 그로부터 영원히 버림받았음을 깨달았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자신할 수는 없다. 이 대목은 ‘이렇게도 또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다. 이를테면 ‘여전히 두 사람’이라는 표현은 사랑의 파국과는 정반대로 사랑의 지속을 의미할 수도, 투사한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회수하기가 불가능해짐으로써 공황 상태에 이른 분열된 주체를 의미할 수도 있다. 마지막 연의 ‘슬픔’이 사랑을 상실한 ‘나’의 마음을 인격화한 것으로도, 혹은 사랑의 대상인 ‘너’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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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고 동네를 거닐다가 이르게 핀 꽃을 보았는데 그것이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 보여 애통하였다 점심에 사촌 내외가 찾아와 함께 식사하였는데 아이가 복통을 일으켜 황급히 병원에 갔다 저녁에는 오래도록 기다려왔으나 사놓고 읽지 못한 책을 읽었는데 결국 다 읽지 않고 그만두기로 하였다
꿈에는 기쁜 얼굴로 웃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것이 누구인지 생각나지 않아 곤란하였다 아침에 눈을 뜨고 동네를 돌다가 전날 본 꽃의 이름이 무엇인지 생각났는데 꽃은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니 치우지 않은 책상이 보여 그것을 정리했다 점심을 거르고 저녁을 배불리 먹었고, 상하기 직전의 키위를 꺼내어 잘라 먹었다
종종 마당에 빛이 내려와 한동안 머물다 떠났다 자주 슬픔을 느꼈으나 까닭이 떠오르지 않았다 ㅡ 「음애」 전문 |
이 시는 이틀 동안에 일어난 일을 병렬적으로 들려준다. 그런 과정에서 화자의 내면세계가 차분하고 섬세한 표정으로 건져 올려진다.
아침은 생명력이 가장 왕성한 시간임에도 화자가 예감하는 것은 생의 소멸이다. “이르게 핀 꽃”이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측은 틀리지 않아서, 이튿날 “전날 본 꽃의 이름이 무엇인지 생각났는데 꽃은 보이지 않”는다. 점심에 찾아온 사촌 내외와의 점심은 아이의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엉망이 되고, 오래도록 기다리던 끝에 읽으려던 책은 “다 읽지 않고 그만두기로”할 만큼 실망스럽다. 어제 본 꽃을 오늘은 찾아볼 수 없듯 삶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상실하는 과정이다. 복통처럼 불운이 찾아오거나 꿈이 현실이 될 수 없는 현실, 기대하던 일에 실망하고 키위가 점점 썩어가는 일상은 자연스럽고 평범하다. 관계와 소망의 잦은 어긋남 속에서 삶은 다만 지속될 따름이다. 혼자 먹기 위해 쌀을 씻어 밥을 하고, 그 밥을 “배불리” 먹는 허기진 삶의 지속. “자주 슬픔을 느꼈으나 까닭이 떠오르지 않”는 이유는 이 모든 슬픔의 배후에 뚜렷한 까닭이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까닭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삶의 본질이 곧 슬픔인 것이다.
햇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낭떠러지나 언덕을 의미하는 ‘음애’, 몹시 슬퍼하고 가슴 아파함의 뜻을 가진 ‘애통’이라는 어휘, 작자의 주관을 배제하고 시간 순서나 일의 발생에 따라 사건을 단순 나열하는 고전 교술적 문체 등은 고답적이라 낯설다. 이러한 낯섦은 시가 “애통하였다”거나 자주 슬픔을 느꼈다며 정서를 직접적으로 드러냄에도 화자가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한 발짝 떨어져 관찰하고 서술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표면적 발화와 겉돌며 마음의 통증을 통감(痛感)하지 못하는 것 같은 화자의 이 같은 무감함은 병후(病後)의 증상과 닮아 있다. 기와 혈이 모두 손상될 정도로 앓고 난 환자가 쇠약해진 몸과 마음으로 세상을 아주 멀게 바라보는 거리감.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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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쓴 사람이 바지를 입은 사람에게
진심이야?
말해버렸고 그렇다고 진심이 확인되지는 않았다
팔을 뻗으면 손에 닿는 것들
불을 켜면 익숙한 거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섰을 때는 너무 어두워서 남의 집에 잘못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에 빠진 사람이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엎드려 빌던 날의 기억
침실에는 내가 사지 않은 인형이 올라와 있었고
그때에야 생각나는 그날의 진심
우산을 쓴 사람이 우산을 쓴 채로 거리를 걷는다 비가 다 그친 줄도 모르고 ㅡ 「알리에서 물개 인형을 샀어」 전문 |
‘알리’는 해외 직구 사이트인 중국의 쇼핑몰이다. 이 시는 알리에서 물개 인형을 직접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우산을 쓴 사람과 바지를 입은 사람, 생각에 빠진 사람과 생각이 없는 사람, 상대의 진심을 묻는 사람과 대답하되 대답하지 않은 사람, 빌던 사람과 지켜보던 사람, 남은 사람과 떠난 사람으로 나뉜다.
거리와 침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짧은 시극은 ‘바지를 입은’ 사람(?)이 남기고 떠난 물개 인형을 비추는 실내 신(S#)과, 비가 멈춘 줄도 모르고 ‘우산을 쓴 사람’이 혼자 거리를 걷는 실외 신으로 분할된다. 시간 순서상으로는 실외에서 벌어진 일이 먼저이고 혼자 돌아온 사람이 침실에서 물개 인형을 발견하는 장면이 나중이다. 이러한 시제의 역순행적 교차는 소극을 입체적으로 만든다. 온라인 구매대행업체 알리에서 샀다는 물개 인형 역시 무대장치로서 훌륭한 미장센(mise en scène)이다. 둘이서 생활하던 ‘낯선’ 집에 돌아와, ‘이제 정말 그가 떠나버렸다’는 실감이 침실에 덩그러니 올라와 있는 물개 인형으로 한층 더 분명해진다.
우리는 이 시의 개별적 사랑을 통해 사랑의 보편적 속성을 읽는다. “팔을 뻗으면 손에 닿는 것들”과 무관하게, 이별을 앞둔 이의 마음은 그리 투명하지 못한 유리창 너머에 머문다. 그것이 사랑의 속성이다. 우리는 상대의 ‘그때’ 진심을 영원히, 제대로 알 수 없다. 다음으로 사랑은 과도한 친밀함으로 우리를 잔인하게 길들인다. 친밀함의 부정성은 사후적으로 확인된다. 이는 “불을 켜면 익숙한 거실”임에도 “너무 어두워서 남의 집에 잘못 들어왔다고 생각”할 만큼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그렇더라도 이별은 무겁지 않다. 이별은 온라인으로 주문한 물개 인형이 도착하듯,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예고 없이 가볍게 다가와 있다.
이 시는 시상의 전개 방식 자체가 가면의 역할을 한다. “침실에는 내가 사지 않은 인형이 올라와 있었”다고 고백하는 ‘나’가 저 두 사람 중 누구인지를 끝끝내 알 수 없도록 시상은 엄밀하게 구성된다. 때문에 “그때에야 생각나는 그날의 진심”이 누구의 진심을 가리키는 건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인물들은 철저히 익명적이고 문맥상 사랑의 실패가 관건이 된다.
랭어(Susanne K. Langer)는 “시는 실제로 일정한 방식으로 삶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시가 삶을 주석한다는 말은 아니다.”라고 적는다. 요컨대 시는 개인적이고 내밀한 사랑을 함구함으로써, 순간적으로 불가피하게 경험적인 자아의 현실에 직면한다. “마당에 빛이 내려와 한동안 머물다 떠”(「음애」)나듯, “잠시 찾아와서 내려앉는 빛”과 같던 사랑은 “시절의 기억 속”에만 남거나 “폐기”되는 현실 말이다. 그러므로 “너는 그런 걸 어떻게 다 기억하니”라고 누가 묻는다면 대답해 주자. “모든 것은 그렇게” 마음의 “사진 속에 고정되어 있고/ 그래도 강물은 여전히”(「이미지 사진」) 흘러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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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조 ■ 문학평론가 2011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등단. |
이달의시인 2021년 2월호
